[아! 대한민국-148] 굴비
[아! 대한민국-148] 굴비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18.03.17 0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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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예부터 서해안에서 나는 조기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생선 중의 하나다. 태조실록에 “새로 난 석수어(石首魚)를 종묘에 천신하였다”(1397년 4월1일자)는 기록이 있다. 조기는 봄철부터 늦여름까지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산란을 했다.

쉽게 상하고 보관이 어려워 고려시대 때부터 소금으로 절여 염건품 형태로 가공하는 방법이 발달해 왔다. 조기의 몸 전체와 아가미에 소금을 뿌린 뒤 항아리에 담아 이틀쯤 절이고, 보에 싸서 하루쯤 눌러놓았다가 뻣뻣해질 때까지 잘 건조하면 맛과 향이 좋은 굴비가 만들어진다.

굴비가 유명해진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고려 인종(1109~1146)때 문신이자 왕의 외척이던 이자겸이 반란을 일으키려다 실패한 사건으로 전남 영광의 법성포로 귀양을 갔다. 거기서 영광굴비를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한 이자겸이 영광굴비를 인종에게 올리면서, 자기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로 ‘굴비(屈非)’라는 글자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이때부터 굴비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라가게 됐고, 따라서 일반 사람들도 즐겨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려말엽의 학자였던 목은 이색의 ‘목은시고’에 “잔 비늘의 물고기 석수어라 하는데/ 맛있는 술은 춘심을 채워주네/ 거품 뜬 술은 향기가 막 풍기고/ 말린 고기는 맛이 절로 깊구나”하는 시구가 있고, 조선 중기 시인 이응희는 ‘석수어’라는 시에서 “비릿한 바람이 바다에 불어오면/ 배가 노란 조기가 어선에 가득하네/ 노릇노릇 구워내면 맛있는 반찬이 되고/ 진하게 탕으로 끓여내도 맛이 좋구나/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지만 고기는 두루두루 쓰인다네/ 좋아라 바짝 말린 후에 밥 먹을 때 가장 먼저 올린다네”라고 읊었다.

조기는 추자도와 영광의 칠산 앞바다를 거쳐 연평도를 지나 평안도 해안지역까지 올라가는데, 조기 떼를 쫓아 모여든 전국의 수많은 어선들이 곳곳의 항구에서 파시(波市)를 이루었는데, 법성포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파시 지역이었다.

‘임하필기’에서 이유원은 이 모습을 그려 “배들이 바다 위에 늘어서는데 영락없이 파리 떼가 벽에 달라붙은 것과 같다”고 했다. 지금은 연평도나 법성포의 조기잡이는 사라졌지만,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굴비가공 기술은 아직도 남아 영광굴비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굴비는 여러 종류의 조기로 만들 수 있지만, 참조기로 만든 것을 제일로 친다. 보리굴비는 1년 이상 해풍에 말린 참조기를 보리쌀이 담긴 항아리에 넣어 숙성시킨 굴비다. 이렇게 하면 굴비가 보리의 향을 흡수해 비린내가 없어지는 것이다.

잘 숙성된 보리굴비는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보자기에 싸서 방망이로 두드린 후 꼬리 부분부터 쭉쭉 찢어 먹어야 맛이 있다. 특히 여름철 차가운 녹차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 살점을 얹어 먹으면 잃었던 입맛이 돌아올 정도로 맛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 유통되는 굴비는 중국산 양식 부세조기를 국내서 가공한 이른바 ‘부세굴비’가 대세다. 국내에서 참조기 생산량은 적은데 굴비 수요는 많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굴비는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A, D가 풍부해 야맹증과 피로해소에 도움이 되고, 지방질이 적고 소화가 잘 돼 노인에게 좋다. 구이, 탕, 조림, 찜 등 다양한 조리가 가능한데, 칼집을 넣은 굴비를 간장 양념에 재운 다음 석쇠에 구운 굴비구이가 유명하다. 굴비 매운탕도 별미인데, 생감즙과 청주로 비린 맛을 잡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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