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코리안] 15년 전의 방북기
[비바 코리안] 15년 전의 방북기
  • 정길화(방송인, 본지 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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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방송인 토론회 및 방송영상물 소개모임’ 후일담

유홍준 교수는 1998년 7월 방북취재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갔다가 북한 땅으로 해서 백두산을 등정했다. 당시 그는 북한의 국내선 비행기로 삼지연 공항에 내려 천지까지 찻길로 이동한 후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삼지연에서 천지까지 가는 40km 어간의 길은 원시목과 야생화가 어우러지는 고원 풍경이다. 이때의 소회를 그는 후일 한 칼럼에서 “처음에는 장중하고 느린 선율의 그레고리안 찬트를 눈으로 보는 듯했다. 그러다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와 들꽃의 처연한 아름다움에서는 바흐의 칸타타를 듣는 기분이었다”고 그렸다. 과연 그다운 안목이자 묘사다.

역사적인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의 날이다. 문득 15년 전에 방북을 해 평양과 백두산을 답사했던 기억이 나면서 유홍준을 소환해 본다. 당시 방북의 계기는 2003년 10월 ‘남북 방송인 토론회 및 방송영상물 소개모임’이라는 행사였다. 이 행사는 2000년 6.15 공동선언의 후속조치의 하나로 추진된 것으로 남측 방송위원회와 북측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공동개최로 이루어졌다. 남측 방북단은 방송위원회(노성대 위원장)의 인솔 하에 지상파, 위성방송, 케이블 등 현업 제작진 130여명으로 구성됐다. 방북단은 2003년 10월 1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전세기편으로 서해직항로를 통해 평양에 도착해 19일까지의 활동에 들어갔다.

현지 일정으로는 백두산 답사 등이 먼저 진행됐고 이후에 본격적인 교류행사가 실시됐다. 18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양측 방송인 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토론회 전체회의와 분야별 토론회를 열고 방송교류 확대방안을 논의했다. 분야별 토론회에서 △편성제작 △방송언어 △방송기술 등 남북 방송계가 장차 교류협력을 할 때 요구되는 현안을 주로 다루었다. 필자는 당시 MBC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분야별 토론회에서 남북의 방송교류사를 모색기와 접촉기 그리고 실천기로 구분하여 남북 공동제작과 인적교류의 확대 등을 주제로 발표를 했다.

발제의 요지는 “모름지기 교류는 일방통행이 아니고 쌍방통행이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측도 남측에 취재를 오는 것이 필요하다. 또 그 결과물도 상호간에 편성되어 양측의 시청자가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 방송 소재면에서도 남과 북이 공유할 만한 것들이 많다. 역사, 문화, 풍속, 스포츠 물 등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역사물만 해도 가령 고구려 시기라면 남과 북이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소재가 많다. 고대사는 물론 현대사에도 있을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토론회는 진지했고 다들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지난 자료를 다시 보니 기억이 아련하다.

이어서 남측 방송위와 북측 조선중앙방송위는 △역사스페셜 대고구려 △!느낌표 △방귀대장 뿡뿡이 △여인천하(이상 남측 프로그램)와, △유구한 력사로 빛나는 조선 △햇빛 속에 만발하는 재능 △호랑이를 이긴 고슴도치 △종달새(이상 북측 프로그램)등 4편씩을 소개하는 시사회를 열었다. 이때 ‘쌀집 아저씨’ MBC 김영희PD가 소개하려 한 <느낌표>는 북측의 사정으로 축소 상영됐다. 이 자리에서는 남북이 상호 프로그램을 교차 구매하는 등의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결제 및 각측 채널에서의 방영 등 후속조치까지 모두 완료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 행사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방송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회와 방송영상물 소개모임’을 개최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다. 남측은 상호방문, 지속적인 교류 등을 제안했으나 북측은 원론적인 답변을 주로 했다. 방송교류는 남북관계의 전체적인 상황에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행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방송위 차원의 남북 방송인 토론회는 2005년 금강산에서 열린 2차 토론회 이후 중단됐다. 향후 남북 방송교류는 재개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15년간의 남북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요철기복이 극심했다. 결국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필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평양행이 되고 있다. 당시에도 유홍준 교수와 같은 루트로 해서 백두산을 올랐다. 중국 연변을 통해 ‘장백산’을 오르는 것은 흔한 일이 된지라 북한 루트로 정상을 오른 것은 의미가 각별하다. 10월 중순인데 백두산은 이미 눈으로 덮여 있었고 천지는 장엄했다. 유홍준은 “마침내 해발 2750미터, 백두산 상상봉(장군봉)을 곁에 두고 400미터 발아래로 펼쳐지는 천지를 내려다보는 환상적인 풍광이 펼쳐진 순간 그것은 여지없는 베토벤의 영웅교향곡이었고 환희의 합창”이라고 토로했다. 2003년 10월 빙설(氷雪)에서 보는 천지는 또 다른 감흥을 주기에 충분했다.

당시에는 핸드폰 카메라의 성능이 좋지 않았다. 디카로 많은 사진을 찍고 노트북에 오래도록 저장해 놓았다. 그런데 10년 뒤인 2013년 3월 20일에 한국을 강타한 해킹 사태 때에 다 날아가 버리고 필자에겐 3장의 사진만이 간신히 살아남았다. 첨부 사진은 백두산 가는 길 점심 무렵에 도시락을 먹으며 쉬었던 이깔나무숲, 삼지연 호수 부근에서의 낙조 장면 그리고 10월 중순에 이미 눈덮인 백두산에서 천지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장차 이 풍경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4.27 남북정상회담의 날이 밝았다.

1999년 판문점 JSA 방문 사진
1999년 판문점 JSA 방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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