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통일골든벨 후기] “양반다리로 문제 푸는 전통 땜에 내 고관절은 비명!”
[해외 통일골든벨 후기] “양반다리로 문제 푸는 전통 땜에 내 고관절은 비명!”
  • 황승수(영구 제2고중 2학년)
  • 승인 2018.05.3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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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2일 대련에서 열린 통일골든벨 참가
5월12일 대련에서 열린 2018 통일골든벨 대회에 참가했다. 사진 오른쪽이 황승수 학생.
5월12일 대련에서 열린 2018 통일골든벨 대회에 참가했다. 사진 오른쪽이 황승수 학생.

4년 전인가? 통일골든벨 대회에 참가한 기억이 난다. 그 당시 4문제 만에 절반 이상이 탈락했고 나도 그중 한명이었다. 패자부활전만 5번 할 정도로 참가자들이 못했다.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통일 골든벨!” 웃긴 일이지만 문제가 남아서 결국 참가자 중 한 명을 억지로 골라내 1등을 만들어 냈다. 장기자랑도 마이크 소리가 안 나는 등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모든 게 처음은 힘들고 동북3성 통일골든벨도 그랬다. 이후엔 통일골든벨에 대한 흥미가 없었고 나는 더 이상 참가하지 않았다.

이번엔 왜 참가했지? 곧 있으면 성인이라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졸업고사가 끝나서 홀가분해서일까? 아니면 친구 예본이가 작년에 우승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생각 없이 참가 신청을 했다.

주최 측이 준 문제집을 받았다. 유치원 한글교과서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과하게 화사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문제로 나뉘어져 있는데 어차피 중·고등학생 다 같이 참가하는데 왜 문제를 나눠 놓은 건지 모르겠다. 중학생 고등학생 문제가 서로 중복되는 게 많아서 외우는데 지장은 없었다. 문제집을 만든 사람들도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오타가 수두룩했다. ‘조선’이 ‘조산’으로 표기되고, ‘이승만 정부’에서 ‘정’이 빠졌다.

평상시에는 신경을 안 써서 몰랐는데 역사를 다시 공부하다보니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혼돈의 도가니와도 같다. 잘 살아 보려다가 일본에게 저지당하고, 독립하려다 실패하고, 힘들게 독립했는데 남북으로 갈라지고, 갈라지고 싸우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TV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한을 방문하는 모습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가졌고 판문점 선언을 낭독했다.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워 보이는 문 대통령과 달리 김 위원장은 잔뜩 긴장한 듯했다. 두 정상은 도보다리에서 기자들을 모두 접근금지 시키고 둘만의 회담을 가졌다. 분명히 문제로 나올 것 같아서 평화의 집, 도보다리 회담 등 중요해 보이는 걸 책에 적어 놓았다.

미국이 북한에게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요구하다 폼페이오가 갑자기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대량살상무기 폐기)로 말을 바꿨다. 이것도 문제로 나올 것 같아서 적어 놓았다.

본선 참가 전에 다른 참가자들과 예비시험을 봤다. 문제집에 나오지 않은 문제가 6개 있었는데 1개 문제만 맞았다. 뉴스를 더욱 많이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5월12일 골든벨 대회 당일에도 버스에서 복습을 했지만 움직이는 차 안에서 책을 보는 것은 정말 고통이었다. 멀미나서 나중에 집중을 못할 것 같아서 이어폰을 꽂고 눈을 붙였다. 처음 골든벨에 참가했을 때도 대련이었는데 이번에도 대련에 오니까 기분이 묘했다. 황 씨라서 참가번호는 거의 끝번인 141번이다. 등과 가슴팍에 번호표를 붙였다. 그리고 참가자들만 모아놓고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번호와 이름이 붙은 모자를 나누어 줬다.

모자는 지역별로 디자인과 색이 다른데 패션에 관심도 없고 모자도 잘 안 쓰는 내 눈에도 우리지역 모자는 진짜 예쁘지 않았다.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의 하늘보다 더 화창해 보이는 하늘색이고 영어로 뭐라 적혀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는걸 보니 내 뇌가 기억하기를 거부하나 보다.

시작시간이 되었고 참가자들은 번호대로 줄을 맞춰 시험장인 강당으로 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폭죽과 박수가 쏟아지고 주변에 스텝들이 힘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1회 대회 땐 참가자들이 알아서 자기 자리 찾아 앉았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전쟁영웅 대접 받듯이 입장을 했다. 확실히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

난 양반다리를 못한다. 원래 몸이 고목처럼 뻣뻣한데다 중국에선 의자에서만 앉지 바닥에 앉을 일은 없어서 양반다리를 못하는데 골든벨에선 바닥에 매트 깔고 앉는 게 전통이다. 나 혼자 요가매트에서 요가 하는 기분이다. 빨리 끝내고 일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퀴즈가 아니라 장기자랑 먼저 한단다. 어차피 고통 받을 거 그냥 즐기기로 했다. 첫 번째 장기자랑은 탈춤이라고 한다. 대련 팀이라고 한 것 같은데. 한복을 입은 학생들이 악기를 들고 들어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연주를 했다. 보는 나도 양반다리로 앉았고 고관절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악기를 힘껏 두드리다가 소리꾼이 나타났다.

국악은 잘 몰라서 정확한 역할명은 모르지만 우렁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갑자기 사자를 불렀다. 그리자 사자가 나타났다! 학생 두 명이 사자인형 탈 안에서 한명은 상반신, 한명은 하반신을 담당했다. 둘의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저 사자가 혓바닥을 내밀면 진짜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인형 입에서 혀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핥았다. 오른손에 팔꿈치까지 오는 분홍색 장갑을 낀 거였다. 무대와 관중석을 휘젓는 사자 덕분에 장내 분위기가 환해졌다. 퇴장하면서까지 사자는 멈추지 않고 촐싹대며 뛰어다녔다.

드디어 퀴즈가 시작됐다. 초반엔 정말 쉬웠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문제집 그대로 출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탈락한걸 보면 다들 별로 참가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아니면 정말로 머리가 나쁘던가.

퀴즈 중간 중간 다른 지역 장기자랑 공연이 열렸는데 어느 지역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위안부를 주제로 뮤지컬을 했는데 다들 하나같이 노래를 잘 부르고 여주인공의 연기 실력도 출중했다. 탈춤과 위안부 말고 다른 공연은 생각도 안날 정도로 두 팀이 압도적으로 잘했다. 나중에 두 팀이 장기자랑 1등 2등상을 받았다. 제1회 통일 골든벨 때 장기자랑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때는 정말 엉망이었다.

패자부활전은 그냥 거저 주는 문제였다. 마지막 패자부활전은 통일골든벨의 유서 깊은 전통인 제기차기였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은 제기를 정말 못 찬다. 한국은 제기 5번만 차도 잘한다는 소리 듣는데 중국인은 기본 20개를 차고 뒤로 돌아 발바닥으로 차는 등 서커스가 따로 없다. 다시 골든벨로 돌아와서, 마지막 패자부활전 규칙은 일단 탈락자를 3그룹으로 나눈다.

지역별로 어른을 6명 선출하고 둘둘 씩 묶어서 3팀을 나눈다. 2명이 찬 제기 수가 10개를 넘으면 그 2명이 대표하는 탈락자 그룹이 부활한다. 영구 대표로 제기를 찰 사람은 운동을 잘하기로 유명한 분이시다. 혼자 50개도 찰 사람이라 혼자 10개를 찬 게 놀랍지가 않았다. 우르르 나갔다가 우르르 다시 돌아오는 참가자들이 마치 밀물과 썰물 같았다.

흐르는 물에 모래 바구니를 흔들면 사금만 남듯이 남은 참가자는 아무리 문제를 내도 떨어지지 않았다. 31번 문제부터는 문제집에 나오지 않은 문제다. 31번 문제가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짜”였다. 내 기억 속에 날짜는 문제집에 나온 1953.7.27인데 문제집에 안 나온 문제라고 해서 자포자기식으로 답을 썼다. 근데 맞췄다. 문제집에 없다더니. 출제자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뒤로 문제집에 나온 문제가 3개 더 나왔고 다른 문제들도 내가 예상한 것들이었다. 또 어떤 문제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비핵화 요구가 무엇인가 쓰라고 해서 PVID라고 썼는데 답이 CVID였다. 아는 문제라 당당하게 썼는데 문제를 다시 보니 ‘영구적인’이 아니라 ‘완벽한’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신중하지 않았다. 왜 폼페이오는 갑자기 말을 바꿔서 사람 헷갈리게 할까. 패자부활전 한번 없이 계속 앉아 있다가 이제 탈락하니 패자부활전도 없다.

탈락하고 난 뒤에 문제는 전부 아는 문제였다. 뉴스에서 하도 시끄러우니 듣기 싫어도 들었던 내용들 이었다.

결국에 예본이가 또 1등을 했지만 별로 놀랍지도 않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데 내가 아는 천재들은 전부 노력하고 즐긴다. 자신이 잘 하는 거라 재미있고 더 잘하고 싶어 노력하는 건지, 재미있어서 열심히하다보니 잘하게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떨어진 이유만큼은 명확하다. 상대보다 덜 노력했고, 즐거워서가 아니라 다른 감정에 휩싸였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내가 참가할 기회는 이제 내년 한번뿐이다. 다음번엔 꼭 1등을 해서 효도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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