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코리안] 파주에서 파로호까지
[비바 코리안] 파주에서 파로호까지
  • 정길화(방송인, 본지 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8.2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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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미군 유해 송환에 생각해 본다
이름에 역사가 담긴 파로호[사진=양구군]
이름에 역사가 담긴 파로호[사진=양구군]

지난 달, 한국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서 숨진 미군의 유해 중 55구가 북측에 의해 미국으로 송환됐다. 정전 65년 만에 그것도 정확하게 협정이 체결된 날짜인 7월27일에 이루어진 일이다.

기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성사된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문을 보면 제4항에서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 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했다. 이후 양국의 밀당 끝에 미군 유해의 일부가 비로소 송환된 것이다.

이날 미국 백악관은 샌더스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유해 송환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이번 조치는 많은 미군 가족에게 위대한 순간이 될 것”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웹사이트를 보면 유해가 수습되지 않은 한국전쟁 참전 미군은 거의 8천명에 달하며, 현재 북한 내의 최소 19 지역에 5,300여명의 미군유해가 산재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미국의 소리(VOA)는 전했다. 전투지역 중 미군 전사자의 유해가 가장 많이 묻혀 있을 것으로 미 국방부가 지목한 곳은 평안북도 운산군과 청천강 주변 그리고 장진호 일원이라고 VOA는 보도했다.

목하 북한의 비핵화와 대북 제재와 관련한 북미협상은 길고 긴 도정에 올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종전선언과 김정은과 트럼프의 2차 회담 등이 순조롭게 이어진다면 한반도의 정세는 안정적인 평화 국면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미군 유해 송환은 현시점에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의 표시이면서 트럼프에게는 미국 내의 지지를 견인하는 성과적 조치가 될 수 있다. 이념과 체제를 넘어서, 망자의 유해에 대한 존중은 살아있는 자들의 상호 공존과 평화 정착에 대한 뜻을 공고히 할 것이다.

6.12 북미정상회담 4항에 대한 양국의 관심과 실천은 또 다른 연쇄 반응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7.27 송환이 북한 내의 한국군 전사자 유해 그리고 한국 내의 북한군 및 중국군 유해 환송에 대한 상호조치로 발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남측 지역에도 북한과 중국군의 6.25 당시 유해가 곳곳에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일전에 보도된 화천군 간동면의 파로호(破虜湖)다. 파로호는 ‘오랑캐를 깨뜨린 호수’ 즉 6.25 당시에 ‘중공군’을 물리쳤다는 뜻이다. 한국전쟁 시기 화천 저수지인 이곳에 중국군 2만4천여 명이 수장(水葬)됐다고 한다.

역사적인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의 국면에서 이제는 이들의 유해(遺骸)를 중국 측에 송환해야 할 때가 됐다고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다(한겨레, 연합뉴스 등). 이는 6.25 98주년을 맞는 날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미 제9군단 지휘보고서’를 통해 파로호 전투 내역을 공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제 남측에서도 ‘멧도적 오랑캐’(‘6.25의 노래’ 가사 중)의 유해를 송환하자는 조치가 공론화될 수 있을 것인가.

중국군 유해 송환에 대한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2년 전인 1996년 6월 25일에 MBC PD수첩에서 방송한 <98인의 유해(遺骸)>에서 파주 적성면의 ‘적군묘지’를 통해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이때는 YS정권 시절이었는데 파주에 조성된 ‘적군묘지’를 취재하고,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적군’ 즉 북한군과 중국군의 전사자 유해 송환을 주도할 필요가 있음을 환기했다. 당시에 이 묘역에 수습되어 있던 유해는 98인이었다. 다른 날도 아닌 6.25 당일에 남북교류 및 화해에 대한 의제를 선도한 PD수첩 ‘98인의 유해’는 그해 언노련, 기자협회, PD연합회 등 언론 3단체에서 주관하는 통일언론상을 수상했다.

파주의 ‘적군묘지’는 ‘북한군·중국군 묘지’로 이름이 바뀌었고 전국 각지에서 수습된 유해의 수도 늘어났다. 이 묘역의 의의는 박근혜 정권에 이르러 새롭게 조망됐다. 2013년 6월중국을 방문한 박대통령이 당시 정전 60주년을 맞아 중국군 유해를 송환하겠다는 제안을 중국 측에 했고 중국은 이를 환영했다. 사드 배치 이전의 한중 관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후 한중 양국의 합의대로 중국의 청명절 이전인 2014년 3월22일, 파주에 안장돼 있던 중국군 유해 437구가 종전 61년 만에 중국으로 직접 송환됐다.

다시 파로호다. “파로호에 수장된 수많은 중공군 전사자 유해를 발굴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송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길이자 냉전체제 마지막 매듭을 푸는 일입니다.” 파로호에 수장된 중국군의 유해발굴·송환 주장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허장환 한중국제우호연락평화촉진회 공동대표의 말이다(연합뉴스). 북미의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남북, 미중 등 동북아 정세를 잘 관리하는 것은 비상한 과제다. 파로호 중국군 유해 발굴 및 송환 논의는 한반도 평화를 제고하는 새로운 의제가 될 수 있다. 향후 중국군, 북한군 유해 송환과 미군, 한국군 유해 송환의 ‘병진(竝進)’을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방송인, 언론학 박사,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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