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詩가 있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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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대 시인
  • 승인 2011.04.2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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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중국 연태시 롱쿠에서>

이용대 시인

 

형제가 그리우면

앞산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

아리랑 고개를 억 만 번 넘으면서

>

누이가 보고 싶으면

마당가에서 술래잡기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모국 땅을 그리며
>
봉오리마다 머금은 망향의 이슬 적셔

불어오는 해풍에

날려 띠운 이파리들
>
조국 소식은 언제나

베갯머리를 뒤척이고

이국의 빈 하늘이 서러워 울음할 때

깨금발로 기다려온 귀국선의 고동소리
>
한마디 무어라고 달리 말은 못해도

롱쿠龍口에서 마주한 청백색의 꽃잎마다

동족의 붉은 실핏줄을

나타내 보이였다.

<황토에서 만난 국화國花>
                                                               
나라마다 그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國旗와 국화國花가 있다. 민족의 장래가 극도로 혼미했을 때 목숨을 걸고 활동했던 수많은 독립 열사들이 그토록 그려보던 꽃이 국화인 무궁화였다.

흙먼지 날리는 중국 땅에서, 풍천노숙의 사할린에서나 낮 설고 물 선 유럽, 미국 등지에서 말할 수 없는 천대를 받으면서도 늘 가슴에 품고 피워보던 꽃이 그것이었다.

이렇듯 나라꽃에 대하여는 어릴 때부터 각별한 경건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모든 국민들의 공통된 정서중의 하나이다.

중국 연태시 옆에 있는 롱쿠龍口 지방에 급한 일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7월말경이라 그곳도 뜨겁기는 매 마찬가지였다. 중국회사의 배려로 롱쿠시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는 유명한 황금 모래해변金沙海邊을 보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려 가야하는 어슬픈 길이었다. 20여 km 중 대부분은 초원을 헤집고 가는 거친 황톳길이기도 하였다. 허허 벌판의 낮선 풍경만이 이어지는 초행길이란 경이롭기도 하고 또 멀게만 느껴졌다. 검푸른 수림 지역을 벗어나서 풀들이 제 멋대로 자라나고 있는 넓디넓은 벌판을 막 지날 때였다.

눈에 무척 익은 듯한 나무 한 그루와 환하게 핀 꽃송이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다시 한 번 더 정확히 확인해 보려고 나는 제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 나무는 무궁화였고 피어있는 꽃은 무궁화였다. 척박하고 메마른 황사 속의 풍상을 뚫고 때맞추어  연청백색의 40-50송이쯤 꽃을 피우고 있었다. 순간 무엔가 울컥하고 치미는 감동이 목줄로 넘어왔다. 정수리가 타는 것 같은 폭염 속이었지만 차를 세우고 그 꽃 있는 곳으로 천천히 갔다.

그 나무 외엔 무궁화나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여기 홀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일까. 아무도 보아주지 않았을 그 무궁화 꽃이 그 순간의 나를 기다리고 있은 듯했다.

물을 뿌린 듯이 줄 줄 흘러내리는 땀방울들을 개의치 않은 체 아련히 떨려오는 손길로 그 나무를 어루만져 보았다.  모든 것이 두메산골 내 고향집 울타리에서 언제나 피고 있는 그 무궁화들과 분명히 똑 같았다.

말라버린 밑 부분의 필요 없을 가지들을 정성껏 골고루 제거해 주었다. 주변의 잡초들을 모두 다 뽑아 버리는 동안 마치 동포를 만난 듯한 그러한 흥분이 자꾸만 사무처 왔다. 그것은 물과 햇볕으로 흙에다 뿌리내리고 자라난 단순한 나무중의 하나가 결코 아니었다.

풍랑 거친 어느 날 가족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혼자 배를 타고 황해 바다에 나갔다가  해풍에 밀려 이곳까지 와 버린 한국인 해난사고자의 넋이었을까. 느닷없는 태풍이 무섭게 휘 몰아치는 날 어쩌다가 하늘로 말려 올라가 버린 아주 작은 무궁화 씨 하나가 먹구름 광풍만이 가득한 허공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 불현듯 내려와 다다른 곳이 이곳이 였을까.

그리하여 고향 땅 인줄 알고 있다가 소롯이 스며오는 물기에 자기도 몰래 싹을 틔우고 움을 내 보내 자라버린 곳이 이곳이었을까. 아니면 밝혀지지 않은 어느 한국백성이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이곳까지 건너와 살다가 끝내는 귀국하지 못하고 그 망향의 눈물처럼 땅속에 심고 숨을 거둔 것이 이 나무 한 포기였었나.

무궁화는 비록 나무였지만 한 사람의 외로운 동포였다. 그리고 조국의 무관심 속에서 오래 동안 버려져 있던 슬픈 교민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변의 돌들을 주워 모아 빙 둘러 보호석을 만들어 준 후 다시 한 번 더 꽃과 나무줄기와 나뭇잎을 손으로 가만히 만져 보았다. 그 얼마나 무서운 위협의 밤을 감수하고 조상의 나라를 그리워하며 지새웠던가. 너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화인 무궁화이다. 대한민국의 영원한 꽃이요 후손이다.

내 돌아가면 필히 너의 소식을 전해 주리라. 이제 너는 외롭지 않다. 그러나 언제 다시 찾아 와 볼 수 있을 것인지는 실로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달리는 차창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외로운 무궁화나무를 뒤로하면서 마음은 내내 그 곳에 머물렀다.

다른 길로 돌아온 후, 깊은 밤 폭우 내리는 호텔 창가에 서서 오래도록 그 나무를 그려보았다. 어두운 초원에서 애처롭게 고개를 떨군 채 비정한 밤비를 고스란히 맞고만 서 있을 무궁화의 모습을.

[필자 소개]

 
호 : 가촌,강원도 삼척 가곡출생
월간 조선문학으로 등단/ 삼척 문협/ 서울 양천, 강서문협 사무국장 역임/ 문화센터 시창작 강사/ 청소년 아카데미 강사/ 월간 한올문학 사무국장 및 편집위원/ 한국기독시협 기획위원/ 한국문협 중앙위원/ 한국문협 회원.

수상 : T.S.엘리엇 현대시부문 최우수상/ 강서문학상/ 한국기독시문학 작품상.
시집 : '처음만난 그날처럼' '가곡천의 여울물소리' '바위도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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