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物語-32] 기해(己亥)년의 돼지 이야기
[유주열의 동북아物語-32] 기해(己亥)년의 돼지 이야기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0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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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돈(화폐)'의 어원이 돼지(?)...북핵문제도 풀리는 해 되길
유주열 외교칼럼니스트
유주열 외교칼럼니스트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돼지해다. 양력으로 기해년이 된 지는 1개월이 되었지만 진짜 돼지해는 설날이 되어야 열린다.

일본에서는 돼지해를 맞이하면 돼지는 야생 멧돼지(猪)로 바뀐다. 멧돼지는 이름 그대로 저돌적(猪突的)이라, 일본에서는 돼지해에 태어 난 사람은 성격이 공격적이고 배려가 없다고 한다.

전 세계 10억 마리의 돼지 중 5억 마리가 자라고 있는 중국에서 돼지가 가축이 된 시기는 8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한자의 집(家)은 지붕 아래 돼지(豕)가 들어 있는 모습이다. 돼지가 있어야 집안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돼지도 중국처럼 집돼지가 중심이다. 그렇다고 멧돼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멧돼지가 늘어나 먹을 것이 없어 농가로 내려 와 피해를 입히고 있다.

한중 두 나라의 돼지가 복과 재물의 상징이 되는 것은 돼지가 식성이 좋아 아무 것이나 잘 먹고 새끼를 많이 낳아 농가 소득원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화폐를 '돈'이라고 부르는 것은 복과 재물을 가져다주는 돼지가 돈(豚)이고 돈을 돼지로 보았던 것과 관련이 있는지 모른다. 돼지저금통과 돼지꿈은 돈을 부르기 때문에 좋아했던 것 같다.

한반도에서 건너 간 야요이인(弥生人)에 의한 논농사가 들어오기 전 일본 열도에는 남방 아시아계의 죠몬인(繩文人)이 살고 있었다. 그들의 수렵대상은 멧돼지였다. 멧돼지는 고기뿐만이 아니라 가죽 기름 털 등 버릴 것이 없었다. 일본이 백제 성왕으로부터 불교를 도입한 이래 675년 텐무(天武) 시절 육식금지령으로 1200년간 집돼지는 사라지고 멧돼지만 남았다.

명치유신(1868년)이후 폐불훼석(廢佛毁釋)정책과 함께 육식이 허용되자 집돼지를 키우게 되었다. 집돼지는 멧돼지(猪, 이노시시)와 구분하여 '돈'(豚)으로 표기하고 ‘부타’로 불렀다. 돼지의 울음소리가 '부-이츠'하고 들려서 ‘부타’ 라는 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돈(豚)은 돼지(豕)라는 글자에 고기 육(肉=月)자를 붙여 식용돼지라는 의미다. 일본 요리의 하나인 돈가스(pork cutlet)는 돈(豚, pork)을 얇게 저민(cutlet) 요리다.

돼지해를 영어권에서는 'year of the boar'라고 표현한다. 일본의 ‘이노시시’가 ‘보어(boar 멧돼지)’로 번역된 것이라고 한다. 보어라고 부르는 유럽의 멧돼지는 산에서 구할 수 있는 도토리나 작은 동물이 먹이가 되었다. 북 유럽에서는 기후 관계로 곡물사료가 없어 산림 속에 돼지를 방목하였다.

멧돼지는 시각은 좋지 않으나 후각이 예민하여 땅속에 숨어 있는 것을 잘 찾아낸다. 유럽에서 식탁의 왕이라고 하는 트라플(truffle, 송로버섯)도 멧돼지가 찾아낸다.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후 감자 옥수수 등 사료가 보급되면서 유럽의 멧돼지는 가축화 되어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유라시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돼지는 그 품종이 1000여종이 된다고 한다. 고대 원시인들에게 돼지는 고기와 함께 추위를 막아주는 라드(lard)라는 기름을 제공하였다. 라드는 다른 동물의 기름보다 녹는점이 낮고 부드럽다.

돼지는 생후 8개월이 되면 짝을 짓고 임신기간은 4개월이다. 한번에 8마리 정도 새끼를 낳는 다산 동물이다. 돼지는 일반 상식과 다르게 지능이 높아 거울(鏡)의 존재를 인지하는 몇 안 되는 고등 동물이라고 한다. 돼지를 애완동물(페트)로 키우는 사람도 많다. 돼지는 생체 구조상 인간의 장기와 유사하여 앞으로 인간을 위한 장기 이식용으로 연구되고 있다.

돼지에 대해 더럽다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돼지는 청결을 좋아한다. 우리 속에서도 잠자리나 먹이통에서 떨어진 곳에 배설장소를 정해 놓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다만 땀샘이 적어 몸을 식히기 위해 시원한 진흙탕에 몸을 뒹굴거나 체내의 열을 빼기 위해 소변이 잦아 불결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아랍사람들이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있는데 돼지고기가 더운 날씨에 쉽게 부패하여 집단 식중독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중국인에게도 과거 여름철 돼지고기는 진흙(泥土)보다 가치가 없었다. 쉽게 부패하는 돼지고기 요리를 개발한 사람이 있었다.

북송의 시인이자 행정가인 소동파(蘇東坡 1037-1101)가 항저우의 자사로 근무할 때 값싼 돼지고기 요리법을 개발하였다. 돼지고기의 삼겹살을 뚝뚝 잘라 간장과 설탕 등 양념을 넣어 물은 적게 붓고(少著水), 장시간 조리(慢著火)하였다. 일종의 돼지고기 졸임으로 색깔이 붉게 변하여 사람들은 홍사오러우(紅燒肉)라고 부르기도 하고 소동파의 이름을 따서 동파육(둥퍼러우, 東坡肉)으로도 불렀다.

동파육은 돼지고기에 조림 간장을 넣어 푹 고와서 만들기 때문에 영양분이 풍부한 훌륭한 밥반찬이 된다. 인기 있는 동파육은 전국에 보급되어 지방마다 조리법이 조금씩 다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항일투쟁 중 값싼 돼지고기 삼겹살에 무청이나 배춧잎을 말린 시래기를 넣어 푹 삶아 조리하는 고향 후난(湖南)의 동파육을 좋아했다고 한다. 6000km의 대장정과 신 중국 건설에 대한 에너지와 열정은 여기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중국에서는 고기(肉)하면 돼지고기를 말할 정도로 지금도 중국인의 식탁에는 돼지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과거 소(牛)는 농경에 필요한 동물이므로 농업생산을 위해 살생을 금하였다. 따라서 먹을 수 있는 소고기(牛肉)는 나이 들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폐우(廢牛)였으므로, 맛에 있어서는 돼지고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돼지해는 중국에서 전래된 12지(支)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은 글자를 모르는 서민이 알 수 있도록 가축 등 인간에 가까운 12개의 동물로 12지를 만들어 연도 방향 시간 등을 정했다. 12지의 시작은 자(子 쥐)이며 끝은 해(亥 돼지)이다. 자에서 해로 끝나는 것은 만물이 발아하여 태양과 물의 도움으로 자라서 마지막으로 열매를 맺어 씨(核)가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따라서 해(亥)는 다음 발아를 위한 포용과 준비를 의미하기도 한다. 돼지해에 태어 난 사람들은 포용과 준비 그리고 긍정(돼!)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금년 황금돼지해는 마음먹은 대로 뜻하는 대로 '돼(되)'는 해다. 3대에 걸쳐 만들어진 북한의 핵(核)은 재앙의 씨앗(核)이 되어 북한 주민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곧 있을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민 손을 확실히 잡아 북핵을 해체하는 ”비핵화(非核化)가 돼요(yes)!“ 라고 약속해야 한다.

핵(核)을 해체(破字)해 보면 나무(木)와 함께 돼지(亥)가 나온다. 해(亥)는 돈(豚)이고 돈은 경제다. 북한의 핵이 해체되어 제재가 풀리면 경제는 발전한다. 황금돼지해의 금년이 북한의 경제부흥 원년이 '돼지!' 라고 말하고 싶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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