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유일한 소망
[이영승의 붓을 따라] 유일한 소망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9.02.14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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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세월이 참으로 빠른 것 같다. 그 세월 따라 내 나이도 어언 일흔이 되었다. 봄에 풀잎이 돋을 때의 세월은 더디지만 가을 낙엽 질 때의 세월은 일순간이라 하더니 요즘은 이를 실감하는 듯하다.

아들의 나이 금년 서른아홉에 접어든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결혼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중대사에 대해 아들과 마주 앉아 진지하게 얘기 나누고 싶다. 그러나 아들은 말을 붙일 분위기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이일을 어찌하면 좋으랴! 고심 끝에 애타는 심정을 몇 줄의 글월로 전해보려고 편지를 쓴다. 이 심정 겪어보지 않은 자 어찌 알리요. 

인간의 일생을 크게 세 등분하면 자식으로 1/3, 부부로 1/3, 부모로 1/3을 산다고 한다. 그렇고 보면 인생 70%가 결혼 이후의 삶인 것이다. 그러니 결혼을 해보지 않은 자가 어찌 인생을 논할 수 있으며, 온전한 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들이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세상 사람들은 독신자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남들의 이러한 이목보다 더 염려 되는 것은 독신으로는 인생의 의미와 진면목을 제대로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여건이 되지 못해 결혼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도 많다. 하지만 모든 여건을 다 갖추고도 결혼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를 납득하겠는가? 

한세상 살아본 사람이면 결혼 상대자로 인물이 전부가 아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외모보다는 건강과 성격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도 많은 젊은이들은 외모에 치우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겪는 시행착오임이 분명하다. 아들은 자기는 외모나 조건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는 반론하지 않는다. 대화로는 효과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은 내가 미혼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들이 새롭게 기억난다. 스물아홉이 되자 총각으로 늙을까봐 안달하며 하시던 말씀이다. “살아보면 별사람 없느니라. 부족함은 누구나 다 있으며,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어찌 다 만족하는 사람을 찾으려 하느냐? 외모는 남들에게 섞일 정도면 된다. 60%만 만족하면 무조건 응낙해라”고 수시로 말씀하셨다. “혼사에 요모조모 너무 따지고 재다보면 종국에는 가장 못한 사람 만나게 된다”는 말씀도 하신 것 같다. 현실을 살면서 터득한 절절한 진리인 듯하다.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나는 이 말들을 간략히 정리해서 전달했다. 편지를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작심하고 몇 줄 더 보탰다. ‘대를 잇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엄마아빠가 그동안 알뜰살뜰 산 것이 어찌 우리 둘만을 위해서였겠는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도 남은 생을 손주들을 위해 기여하며 남들처럼 행복을 누리고 싶다. 네가 짝을 지어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지켜보고 싶다. 결혼하지 않으면 직장 있는 몸으로 네 한 입 못살 리 없을 터, 부모 유산은 일절 관심두지 마라.’ 압박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나 솔직한 심경이다. 

마지막으로 호소했다. ‘부모의 죄 중에서 가장 큰 죄가 자식 출가시키지 못한 죄라 하였다. 부디 노심초사 부모마음 헤아려주기 바란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이다.’ 편지를 다 쓰고 나니 무겁던 마음이 다소나마 평온해졌다. 문제는 이 편지를 전달 할 것인가이다. 기해년 정월 초하루.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회원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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