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64] 칠궁(七宮)
[아! 대한민국-164] 칠궁(七宮)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19.03.02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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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오랜 세월, 금단의 문화유산이었던 서울 종로구 궁정동의 사적149호 ‘칠궁’이 2018년 6월1일 첫 일반개방을 시작했다. 전체 면적 2만4187㎡.조선후기 왕이나 추존왕의 생모이면서도 왕비가 아니었던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신 곳이며 궁정동(宮井洞)의 ‘궁’자가 여기서 유래한 유서 깊은 장소다. 청와대 서남쪽 영빈관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그동안 청와대 특별 관람객에게만 문을 열었던 곳이다.

이곳은 원래 조선 제21대 영조의 친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모신 사당이었다. 그러다 1909년부터 1929년까지 이곳에 6개 사당이 이사를 오면서 총 7개 사당이 모였기 때문에 ‘칠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육상궁(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사당), 연호궁(추존왕진종의 어머니 정빈 이씨 사당), 저경궁(추존왕 원종의 어머니 인빈 김씨 사당), 대빈궁(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 사당), 선희궁(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사당), 경우궁(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 사당), 덕안궁(영친왕의 어머니 순언귀비 엄씨 사당)등이 바로 그것이다.

1688년 조선 제19대 숙종의 사랑을 받던 소의 장씨가 왕자를 생산했다. 왕자가 없던 숙종은 크게 기뻐하며 아기를 원자(세자에 아직 책봉되지 않은 맏아들)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대신들은 아직 중전(왕비)이 젊은데 후궁이 낳은 왕자를 원자로 삼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숙종은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1689년, 장씨가 낳은 왕자 윤을 원자로 삼고 장씨를 정1품 ‘희빈’으로 높였다. 친정 아버지가 서인세력에 속했던 인현왕후는 왕비 자리에서 쫓겨났고 희빈 장씨가 새 왕비로 책봉되었다. 이른바 기사환국이 바로 이것이다.

1692년 숙종이 궁궐을 거닐다 한 무수리(청소를 도맡던 궁녀)가 자기 방에서 음식을 차려 놓고 무엇인가 간절히 비는 모습을 보고 그 까닭을 물으니 내일이 쫓겨난 인현왕후의 생신이라 상을 차려 놓고 왕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숙종의 희빈 장씨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고 그 무수리를 가까이하기 시작, 1694년 이들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가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이다. 무수리는 숙빈 최씨가 된다. 그해에 갑술환국이 일어나 희빈 장씨는 ‘빈’으로 강등되고 인현왕후는 궁궐로 돌아왔다. 숙종은 희빈 장씨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길 것을 염려해 ‘후궁은 왕비에 오를 수 없다’고 선언하며 유력가문의 딸을 새 왕비(인원왕후 김씨)로 맞았다.

1720년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희빈 장씨가 낳은 맏아들 이윤이 왕위(조선 제20대 경종)에 올랐지만 세자를 두지 못한 채 1724년 세상을 떠나자 숙빈 최씨의 아들이었던 연잉군이 왕(영조)이 되었다. 영조는 숙빈 최씨를 위해 사당을 짓고 ‘숙빈묘’라 부르게 하더니 1753년 이를 육상궁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16대 인조의 아버지 원종(추존왕)을 기리는 저경궁을 비롯,왕의 생모들을 기리는 사당이 속속 이전하면서 이를 ‘6궁’이라 불렀다. 그러다 1929년 26대 고종의 일곱번째 아들인 영친왕의 생모를 기리는 덕안궁까지 옮겨와 ‘칠궁’이 되었다.

왕들의 사모곡이 만들어낸 이곳 ‘칠궁’은 아취서린 고즈넉한 정원과 화사한 단청을 하고 있는 단아한 건물들이 보는 이의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어머니의 재실 앞에서는 임금도 말에서 내렸다는 하마석(下馬石), 냉천정에 걸린 순조의 차분한 글씨, 격조 높은 원기둥으로 세웠다는 희빈 장씨의 사당 등은 새로운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또 왕비가 아니었던 어머니에 대해 평생 애틋한 정을 지닌 채 살아야 했던 왕들의 사모곡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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