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문화유산 수난사
[선비촌만필] 문화유산 수난사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19.03.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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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이 3.8선을 돌파하던 1950년 10월, 낙오한 인민군들은 유격전을 전개하여 합천 해인사를 점령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던 법보사찰 해인사가 인민군의 지휘부가 되자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은 즉각 폭격을 명령했다.

당시 폭격기를 조종하던 김영환 소령은 이 명령을 거부했다. 해인사를 폭격하면 인민군은 소탕될지 몰라도 소중한 보물 팔만대장경이 영원히 사라질 위기를 맞아 자신의 처벌을 각오하고 폭격 명령을 거부했던 것이다.

1248년 법력(法力)을 빌려 몽골 침략을 퇴치하고자 판각했던 팔만대장경은 중국과 일본, 프랑스 등 열강들이 대여를 빙자한 약탈을 시도했다. 임진란 때는 물론 일제 강점기 때에도 끊임없이 대장경의 반출을 기도했으나 승려들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그런 팔만대장경이 6.25 전란 속에 폭격 위기에서 조종사의 기지로 무사했으니 대장경을 판각한 고려인들의 호국 불심의 법력을 보는 것 같다.

1592년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한다는 소식을 접한 전주사고(全州史庫) 참봉 오희길은 손홍록, 안의 등 태인의 유생들과 스님 등을 급히 불러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태조 어진등 서적들을 내장산 깊숙이 옮겨 놓아 위기를 모면했다.

다른 4대사고의 실록들은 이미 병화를 피하지 못하고 소실되고 말았으니 이들의 희생과 기지가 없었다면 조선 최고의 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후 이괄의 난, 병자호란 같은 국난에 춘추관 본은 불타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으나 분산된 다른 사고 본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1913년,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찌는 군 출신인 자신의 인문 콤플렉스 때문인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본을 동경제국대학에 선물(?)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이 실록이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는 비운을 겪게 된다. 국가의 위기가 곧 문화재 수난의 역사인 것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조선왕조실록이 1997년 유네스코에 최초로 훈민정음과 함께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6.25 전후 지리산 빨치산 소탕에 토벌대 연대장이던 차일혁 총경도 지리산 일대 사찰, 암자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빨치산 은신처를 제거하기 위해 사찰을 소각하게 되면 사라질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안타까이 여겨 처형을 각오하고 이 명령을 거부했다. 이후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한 공로로 처벌은 면했으나 경찰에서 한직으로 전전했다고 한다. 이런 희생적 문화재 지킴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국보 67호 화엄사 각황전 같은 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각황전을 관람하면서 그 우람한 건축미도 장관이지만 차일혁 경무관 같은 선각자들의 문화재 애호정신에 고개가 숙여진다. 지금 구례 화엄사에는 차일혁 경무관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40년 여름이었다. 고문서 시장에 귀한 책자가 나타나자 일인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확보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장안의 거부 간송 전형필선생은 거금을 주고훈민정음 해례본을 구입했다고 한다. 이때까지 한글은 세종이 창제했다는 것 이외의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때였으며 더욱이 조선총독부는 조선어 사용조차 금지하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이렇게 확보한 훈민정음 해례본이 국보는 물론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 문화인들에 경탄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함에 함락된 강화도 외규장각에는 조선왕실 의궤를 비롯한 천여 종 6천 권의 귀중한 왕실 도서가 소장되어 있었다. 당시 프랑스 군함에는 문화재 약탈을 위해 문화재 전문가가 항상 승선하고 있었다고 한다. 외규장각 도서는 지질, 색감, 제본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탁월함에 놀라 문화대국 조선에 겁을 먹고 곧바로 철수 했다는 속설이 전할 정도였다. 이때 약탈해간 왕실 의궤 등 귀중한 기록유산들을 최근에 임대 형식으로 국내로 들여왔을 뿐 프랑스 정부는 지금까지도 소유권 반환은 거부하고 있다.

5천년 문화민족을 자랑하는 우리는 수많은 국가적 위기를 헤치고 문화강국으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동안 고귀한 문화재는 온갖 재난에 소실, 훼손되거나 약탈당하고 말았으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문화재 소재(素材)가 대부분이 목재이거나 종이류이고 동산 문화재인지라 보관 관리에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국난을 만나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약탈되어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의 수량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찍이 우리 문화재에 눈독을 들이던 일본의 권력자나 수집가들은 일제강점기에 한반도를 누비며 문화재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 일본인 손에 넘어간 동산(動産) 문화재가 수만 점으로 지금까지 그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식민지 국가의 문화재 운명이 이러했다.

이런 수난 가운데 현존하는 문화재 중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류문화유산으로 평가받은 수량이 2018년 현재 총 48건으로 동양권에서는 최상위 그룹에 속한다. 특히 기록유산은 세계4위, 동양 최다인 16건이 등재되어 있다.

과연 조선은 기록문화 대국이었던 것이다. 고난의 역사로 점철된 한민족이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디지털 문명을 선도하며 k-pop을 비롯한 한류 문화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런 문화 민족의 저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 조상들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일구어 온 문화의 힘과 온갖 재난에도 문화재를 지켜낸 전설적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문화창달은 물론문화재를 지켜내고 후세에게 올바른 문화재 애호정신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요즈음은 소프트 파워 시대라고 한다. 물리적, 가시적 파워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도덕적 힘, 즉 소프트 파워가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힘을 모아 문화의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한글을 비롯한 세계가 부러워하는 k-culture의 힘을 키워 문화강국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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