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39] 메이궈(美國) vs 차이나
[유주열의 동북아談說-39] 메이궈(美國) vs 차이나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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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마지막으로 개최된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되고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가 빈손으로 걸어 나왔다. 미중 갈등이 무역 분쟁을 넘어 산업 기술 분야로 확대되고 중국의 통신업체 화웨이(華爲)에 대한 제재를 계기로 이른바 ‘디지털 철의 장막’이 쳐지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브로맨스 관계는 깨지고 테크 발 미중 신 냉전이 펼쳐지고 있어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양국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어 마지막으로 실낱같은 기대를 해 본다.

미중간의 무역은 차(茶)를 구입하는 자유무역에서 시작됐다. 지금부터 230여년 전인 1784년 8월 중국(淸)의 유일한 대외 창구였던 광저우에 신생 독립국 미국의 ‘중국 황후호(The Empress of China)’라는 무역선이 입항했다. 이 범선은 미국이 독립전쟁을 끝낸 직후 중국차를 직수입하기 위해 뉴욕을 출항하여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고 인도양을 거쳐 6개월에 걸쳐 중국으로 온 것이다.

영국 식민지하의 미국인(식민지 주민)들은 중국에서 가져온 차를 독점적으로 팔고 있는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 분노했다. 1773년 12월 그들은 인디언으로 분장하여 보스턴에 정박 중인 차 무역선에 잠입해 배에 실려 있던 홍차 상자를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다. ‘보스턴 티 파티’로 부르는 이 사건이 미국 독립전쟁의 불씨가 됐다. 중국차가 미국의 독립을 견인한 것이다.

‘황후호’가 광저우에 입항한 때로부터 약 80년 후 미국의 외교관 안손 벌링게임(Anson Burlingame 1820ㅡ1870) 주 중국(淸)공사가 베이징에 부임했다. 제2차 아편전쟁에 패배에 의한 텐진 조약으로 베이징에 외국 공관 설치가 허락됐다. 1861년 중국 공사로 임명된 벌링게임(중국명 蒲安臣)도 부임했다.

벌링게임 공사는 링컨 대통령의 친구로 하원의원을 지낸 유력 정치인 출신이었다. 링컨 대통령과 공동으로 미국의 양대 정당의 하나인 공화당을 창당한 벌링게임 의원은 링컨 대통령의 요청으로 당시 미국의 대 아시아 외교를 위해 주 중국(淸)공사로 부임한 것이다.

벌링게임 공사는 부임 후 기회 있을 때마다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은 중국에 대해 무력보다는 공정한 외교를 통하여 중국을 대할 것을 강조했다. 당시 서구 열강은 종이호랑이 같은 중국에 대해 스스로 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패배시키고 그 배상으로 영토를 할양받았다.

미국은 벌링게임 공사의 건의로 중국을 최혜국 지위를 허용하고 중국 시장을 모든 국가에게 공정하게 개방할 것을 요구하는 ‘오픈 도어(Open Door)’ 정책을 취했다. 미국은 진정한 중국의 친구(中國的 朋友)로 인식됐다. 중국에서는 미국을 ‘아메리카’의 ‘메이’ 발음에 착안 ‘메이’의 나라(메이國)로 불렀는데 감사의 마음으로 메이(美)를 사용 ‘메이궈(美國 아름다운 나라)’라고 표기했다고 한다.

벌링게임 공사는 6년의 임기를 끝내고 귀국하여 본연의 정치인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 무렵 중국 정부는 서구 열강과 불평등 조약의 개정을 위해 사절단을 파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친중적인 벌링게임으로 하여금 사절단 단장을 맡아 줄 것으로 요청했다. 벌링게임은 중국을 위해서 스스로 사절단장을 맡아 각국을 순회 중국과의 불평등조약을 폐기하고 공정한 조약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868년 2월 벌링게임 단장은 중국 사절단과 함께 상하이에서 코스타리카 호에 승선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대륙을 횡단 수도 워싱턴에 도착해 윌리암 수어드 국무장관과 앤드루 존슨 대통령을 만나 중국 정부의 국서를 봉정했다. 존슨 대통령은 링컨대통령 암살당시 부통령으로서 17대 대통령으로 승계했다.

벌링게임은 아편전쟁 직후 마카오 교외의 왕시아(望厦)에서 체결한 미중간의 불평등 조약을 폐기하고 대등한 조약으로 대체했다. 새로운 조약은 미중 양국민의 자유로운 왕래를 인정하고 미국은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했다.

‘벌링게임 조약’으로도 불리는 미중 간 새로운 조약으로 미중 양국 간의 자유로운 무역이 보장되고 중국인의 미국에서 취업이 가능해져 미국의 대륙횡단 철도 건설에 중국 노동자가 투입될 수 있게 됐다.

벌링게임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사절단은 미국 방문을 마치고 9월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영국에서는 윈저성으로 빅토리아 여왕을 알현하고 중국과 영국 사이의 불평등 조약을 대등한 조약으로 다시 체결할 것을 건의했다. 다음해 1869년 프랑스 파리에 도착 나폴레옹 3세를 알현했고 프로이센에서는 비스마르크 재상을 면담하는 등 중국을 위한 외교활동을 이어 나갔다.

1870년 2월 벌링게임이 이끄는 사절단의 마지막 행선지가 러시아였다. 사절단 일행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 알렉산더 2세를 알현했으나 벌링게임 단장은 피로가 겹쳐 러시아의 추위에 급성 폐렴에 걸렸다. 벌링게임 단장은 중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국 폐렴으로 러시아에서 사망했다. 50세의 나이였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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