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한국의 서원, 세계문화유산이 되다!
[선비촌만필] 한국의 서원, 세계문화유산이 되다!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19.07.22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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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紹修書院)
소수서원(紹修書院)

영주시 순흥에 있는 소수서원(紹修書院), 그 뒤에 조선시대 양반 선비들이 살던 전통마을을 예스럽게 복원해 놓은 테마공원이 ‘선비촌’이다.

2004년에 완공된 이곳은 소수서원과 연계하여 전통 민속마을을 꾸며놓고 ‘선비촌’이라 이름 하였다. 그런데 필자가 쓰고 있는 이 칼럼의 제목 또한 ‘선비촌 만필’이 아닌가!

누가 이 칼럼의 이름을 ‘선비촌 만필’로 하였는지 잘 모르지만 추측컨대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관람했던 월드코리안신문 관계자들이 나의 서원(書院)특강(?)을 듣고 본 칼럼의 제목으로 삼지 않았나 생각하니 한편 쑥스럽기도 하다.

옛 선비들의 학문공간 서원과 생활공간인 전통 양반마을이 테마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소수서원의 명성에 힘입어 선비촌도 방문객이 넘치는 전국적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서원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교문화 인프라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이런 한국의 서원이 지난 7월6일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결정됐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이참에 조선시대 서원이 어떤 곳 이였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한국의 서원은 입지와 경관이 탁월하다. 사찰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강가의 산자락이나 언덕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소박하고도 절제된 건축물들이 유교적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을 구현하며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서원의 분위기가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느낄 수 있어 청아하기 그지없다. 번잡한 생활주변을 벗어나 자연을 품고 있는 서원엘 들어서면 나도 몰래 조상의 사당을 참배하는 듯 경건하고 편안해진다.

또 조선에서의 성리학은 학문이자 종교이고 권력이었다.

조선의 성리학은 윤리학이자 철학이고 치세(治世)의 핵심이론으로 조선왕조 통치 이데올로기였기에 이를 가르치고 보급하는 역할을 수행한 서원이나 향교는 조선 사림(士林)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며 권력기관화 되어갔다.

서원은 선비들의 학문과 인성을 수련하는 사설(私設) 강학(講學)공간이었고 도학자(道學者)나 선현(先賢)을 배향(配享)하고 제사 지내는 제향(祭享)공간이었다.

이렇게 서원은 조선의 정치, 사회, 교육, 의례(儀禮)를 주도했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1543년에 세운 조선 최초의 영주 순흥 백운동서원(현 소수서원)을 시작으로 조선후기엔 700여 곳이 넘는 서원이 난립하며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건국과 통치이념이 성리학인 나라 조선에서 성리학적 질서를 구현하기 위한 교육, 교화수요를 관학인 성균관과 향교로는 감당 할 수 없자 서원설립이 대세를 이루었던 것이다.

사액서원(賜額書院)을 중심으로 강학 및 제향기능을 담당하던 초기의 서원이 당쟁(黨爭)이 격화되면서 지역 유림들의 세 과시용 ‘사림서원’이 난립하면서 강학중심에서 제향(祭享)중심으로 운영되기도 하였다. 또 유력 가문들도 경쟁적으로 ‘문중서원’세우기에 나서면서 서원 남설(灆設)의 폐해는 19세기까지 지속 되었다.

이렇게 사림(士林)세력이 정국을 주도하던 16세기 후반이후 서원을 중심으로 사림세력이 성장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서원이 당쟁의 동력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한편 서원이 면세(免稅), 면역(免役)을 비롯한 각종 특권을 누리며 18세기 이후에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당쟁과 더불어 조선왕조의 폐단으로 지목된 서원의 특권과 횡포가 결국 흥선대원군 집권기를 맞아 훼철(毁撤)되는 운명을 맞았던 것이다. 서원을 철폐하는 대원군에 백성들은 환호했으나 서원을 거점으로 특권을 누리던 사림세력들은 완강하게 저항했다.

대원군이 다른 실정失政과 함께 결국 유림세력과 서원권력의 탄핵으로 실각하기에 이른다.

파당(派黨)의 근거지이자 당쟁의 진원지로 전락한 서원의 횡포는 많은 일화도 남겼다.

1850년대 어느 날. 파락호시절 흥선군 이하응은 당시 집권 노론세력의 성지(聖地) 화양서원(華陽書院)을 찾았다. 말을 타고 온 흥선군이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고 서원의 노비들이 흥선군을 말에서 끌어내 망신을 준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또 화양서원에서는 화양묵패(華陽墨牌)를 발부하고 지방 수령이나 재력가들을 겁박하며 재물을 착취하는 등 치외법권적 횡포를 자행하다 1865년 대원군에 의해 최초이자 본보기로 훼철된 서원이라는 오명을 남겼다는 비사(祕史)도 전해진다.

이렇게 1871년까지 대부분의 서원이 철폐되고 오직 47개소의 서원만이 살아남았다.

당시 생존 서원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영남지방에 소재한 서원과 문묘에 배향된 인물을 배향한 서원이 많이 살아남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조선후기 사림정치의 중심 이였던 조선의 서원 같은 제도나 시설이 중국을 비롯한 베트남, 일본 등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도 아예 없었거나 있었어도 그 기능이 사라진지 오래라고 한다. 오늘날 그 원형과 제향 의식(儀式)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는 한국의 서원이 탁월하고도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인류 문명사를 연구하고 전승할 문화유산을 지켜가기 위해 세계유산을 심사, 등재하는 세계유산위원회는 2018년 6월30일 부석사 등 한국의 7대 산지승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데 이어 이번에 한국의 9대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함으로서 한국의 서원이 유교문화 인프라로서의 소중한 가치를 공인받았다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이로서 지금까지 총 50건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은 동양에서 중국 다음의 문화유산 보유국이 되었다.(기록유산은 16건으로 동양최다)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그 건립정신을 오롯이 되살려 현대인들의 심신수양의 문화공간으로, 또 수기(修己)에 정진하던 선비정신의 참뜻을 되새겨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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