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쓴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말했다. 좀 더 직역하면 ‘죽음에 대한 준비가 곧 인생 그 자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얼마나 준비되고 있을까? 고희를 앞둔 나로서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최근에 와서는 조금씩이나마 준비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마감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두렵다.
젊었을 때야 그 준비가 되지 못한들 무슨 문제가 있으랴. 그러나 나이 들어 팔다리에 근육이 빠져나가고,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함께 지내던 사람들마저 하나 둘 내 곁을 떠날 때까지도 전혀 준비되지 못한다면 이일을 어찌하랴?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오로지 더 많은 것을 내 손에 넣기 위해 살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인생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하다. 행복 또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래의 더 큰 성취만을 위해 지금의 소소한 즐거움을 포기한다면 내일에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현재가 모인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니던가?
인생의 아주 큰 과오는 우리의 삶이 엄청 길다는 착각에서 온다고 했다. 세월이 빠르다는 사실도 나이가 든 후에야 자각하게 된다. 산을 오를 때는 험로에 벅차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하산에 가까워서야 남은 여정이 짧다는 것을 알게 되는 원리와 같다.
오로지 정상정복만이 등산의 목적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몇 세까지 살겠다는 목표를 미리 정해놓고 이를 달성하기에만 골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산을 오르는 과정에 길섶의 예쁜 꽃도 감상하고, 맑은 공기와 대 자연의 아름다움도 만끽해야한다. 그리고 다 오르고 나면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헬런 켈러는 ‘내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라는 글에서 ‘아름다운 꽃들과 빛나는 저녁노을, 밤하늘에 영롱한 별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이토록 절절한 소망을 우리는 일상으로 누리고 있다. 끝없는 욕망만 갈구할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이룬 것에 대해 만족할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과연 얼마나 준비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제2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고심이 깊었던 탓인지 우울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 유서까지 쓸 정도의 위기였다. 수필에 입문하면서 평정을 찾았다. 지금의 내 삶이 꿈만 같으며 만족한다. 내 육신이 허용하는 한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쓸 작정이다. 이 또한 키케로가 말한 그 무엇에 대한 준비가 아닐까 싶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