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46] 한류(韓流)와 공공외교
[유주열의 동북아談說-46] 한류(韓流)와 공공외교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07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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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근무했던 2000년도 초,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중장년 일본 여성들이 한국적 순애보를 내용으로 하는 드라마 ‘겨울연가’에 푹 빠져들었고 주연 배우 배용준을 ‘욘사마’로 부르면서 열광했다. 강원도의 남이섬 등 드라마의 촬영지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밀려들었다.

전문가들은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것은 시나리오가 정해지면 절대 고치지 않는 일본과 달리, 한국 드라마는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수시로 수정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겨울연가’의 인기는 중장년 일본 여성들이 좋아하는 프랑스의 작곡가 폴 모리아의 음악이 흘러나왔다는 분석도 있었다.

일본의 지인은 ‘욘사마’의 모습에서 일본인이 좋아하는 관음보살상이 엿보인 것도 인기를 올리는데 일조했다고도 했다. 일본에서 ‘욘사마’의 인기로 배용준 씨가 하네다 공항에 도착할 때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모여 들었고 한때 한국은 ‘욘사마의 나라’로 불리기도 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고 일본에서는 한류가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일본에서 한류의 성공을 보면서 문화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의 대중문화를 개방한 김대중 대통령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일본 근무를 마치고 중국으로 부임했더니 후난(湖南)위성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던 ‘대장금’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당시 중국의 최고 지도자도 ‘대장금’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퇴근 후 귀가하면 부인이 ‘대장금’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같이 보게 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중국의 지인들은 만날 때마다 드라마 ‘대장금’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겨울연가’ 덕분에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했듯이 중국에서도 ‘대장금’이 한국에 대한 인상을 바꾸었고 한국 음식이 크게 유행했다. 조선족 동포가 경영하는 작은 시골 식당이라도 반드시 이영애 씨의 사진이 든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파란 저고리를 단정히 입고 왼손으로 옷고름을 살포시 잡고 미소 짓는 이영애 씨의 모습이다.

중국에서 한류의 역사는 일본보다 앞섰다. 중국과 수교 이듬해인 1993년부터 한국 드라마 ‘질투’가 방영되었다가 1997년 ‘사랑이 뭐길래’ 가 크게 히트하면서 중국 사람들은 한류 드라마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1999년 중국 언론에서 ‘한류(韓流)’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대장금’ 같은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HOT 같은 아이돌 그룹의 대형 콘서트가 젊은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한류는 드라마에서 K-팝으로 옮아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탄소년단(BTS)의 경우 일본에서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해와 금년에 걸쳐 도쿄, 오사카, 나고야 그리고 후쿠오카 등 일본 4개 대도시 공연에서 모든 티켓이 완판되는 등 38만명의 관객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 해 11월 도쿄돔 콘서트에서는 10만 관객이 운집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한국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최종 판결로 한일관계가 불편했음에도 우려했던 혐한시위 없이 응원에 나선 일본 팬들로 공연장은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지난해 어느 연구기관의 자료에 의하면 방탄소년단의 경제적 가치는 5조6000억 원이었다고 한다.

한류는 문화 콘텐츠로 확대되어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자리 매김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전 세계 문화 콘텐츠 시장 규모는 2700조원 규모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120조원으로, 시장 점유율 2.6%, 규모로는 세계 7위의 수준이라고 한다. 문화 콘텐츠 산업은 감성, 상상력, 창의력 그리고 정보통신기술이 있는 우리로서는 얼마든지 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는 분야이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이지만 역사와 영토 문제로 서로 다투기도 한다. 중국과는 사드배치문제로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고 일본과는 현재 역사 통상 그리고 안보문제까지 얽혀 과거 보지 못했던 복합적 다중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정치와 경제관계의 갈등이 깊어도 중국과 일본은 한류 등 우리 문화 콘텐츠의 큰 소비국가로 중요한 나라이다. 외교관의 경험으로 문화는 교류할수록 시너지 효과가 커지는 플러스 섬이 형성되어 문화교류만이 갈등을 푸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한다. 유네스코도 문화교류를 통해 세계평화가 증진된다면서 ‘평화문화(peace culture)'를 강조하고 있다.

문화교류는 문화 예술을 통해 상대국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신뢰를 얻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다. 공공외교로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산다면 국민들 사이에 상호 협력이 용이해지게 된다. 한중양국은 협력을 통하여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 발생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원천 봉쇄할 수도 있다. 현재 수교 이래 가장 어렵다는 한일관계도 문화교류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열고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한다면 많은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본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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