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사자성어] 영어지락(泳漁之樂)
[미학의 사자성어] 영어지락(泳漁之樂)
  • 하영균(상도록 작가)
  • 승인 2019.11.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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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지락(泳漁之樂)

뜻을 풀이하면 헤엄치는 물고기의 즐거움이란 뜻이다. 이런 즐거움을 옛날 선비들은 부러워했다. 이 말은 장자에 나오는 말이다. 장자가 “헤엄치는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하고 혜자에게 물어보니 혜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 “당신이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고 하는가?”

이 말에서 장자가 자연에 속한 인간의 심상을 이야기했다면, 혜자는 “타자가 어떻게 자아의 의미를 파악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서로가 다르게 말한 것이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혜자와 장자의 논쟁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미학적으로는 바로 헤엄치는 물고기의 즐거움이다. 헤엄치는 물고기가 왜 즐거운가 하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장자가 왜 그 물음을 던졌는지도 알 수가 있다.

헤엄치는 물고기는 3가지 측면에서 아름다움을 논하고 있다. 첫째는 유영(游泳)이다. 한가롭게 물속에서 서서히 헤엄치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거칠 것 없는 자유를 의미한다. 물속에서는 물고기는 자유롭다.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면 안 되지만 물속에 있다면 자유로운 것이다. 선비들은 이런 물고기를 부러워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벗어나듯 선비들이 학문의 세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런 자유를 원한다. 미학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을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거칠 것 없이 만들어 주는 자유로움을 주는 것이 이 또한 유영의 미학이다.

둘째로는 물화(物化)이다. 물화란 자연에 담긴다는 뜻이다. 이것도 장자에서 나오는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를 싫어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리 달리고 도망을 쳐도 그림자가 따라오는 것이다. 결국, 실패해서 지쳐서 죽고 말았다. 장자는 이 사람의 어리석음을 목표를 쫓아서 끊임없이 헤매고 다니는 사람을 비유한 한 것이다. 장자가 다시 물어본 것은 “왜 커다란 나무 밑에 들어가 쉬지 못하는가? 커다란 나무 아래라면 그림자가 없어지지 않는가?”라고 물은 것이다. 물화란 의미는 바로 나무 밑에 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연에 속하면 자연에서 그 아름다움을 얻을 수가 있다.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오히려 자연 속에 있다면 충분히 자연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을 말해 준다. 아름다움은 자연에 있을수록 더 깊이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로는 혼돈(混沌)이다. 이것도 장자에 나오는 말이다. 북해의 천제인 홀(忽)과 남해의 왕 숙(熟)이 혼돈에게 대접을 받고 나서 칠공(七孔)을 뚫어 주었더니 혼돈은 죽고 천지가 창조됐다고 했다. 여기서 칠공이란 두 눈, 두 개의 콧구멍, 두 개의 귓구멍, 그리고 입을 말한다. 이것은 오감을 체험하는 통로이다. 이런 오감을 분석하고 체험하고 인식한다면 논리와 인식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혼돈의 끝에 논리와 인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즉 혼돈이 없는 것이 지금으로 보면 정상이다. 하지만 장자는 다르게 생각했다. 미(美)란 논리가 아니다. 인식이 아니다. 즉 자연이 어떻게 아름다운가 따지기 시작하면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없다. 아름다움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느낌이다. 즉 아름다움을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그저 그 아름다움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장자가 혼돈의 비유로 던져주는 것이다.

영어지락(泳漁之樂)의 즐거움이란 바로 자연 속에 느끼는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다니는 아름다움을 즐거워했기에 옛날 선비들은 연못을 만들고 그 속에 물고기가 놀게 했다. 그런 즐거움을 학문 속에서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칠 것 없이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면서 자신도 학문의 바다에 거칠 것 없이 헤엄치고 싶었던 것이다. 영어지락의 예술은 선비들의 시나위 가락에 비유할 수 있다. 거칠 것 없이 장단의 시작도 끝도 없이 끝없이 이어지며 만들어 가는 음악 속에 영어지락의 미학이 숨어 있는 것이다.

선비들이 벚꽃이 활짝 피는 봄날, 봄놀이를 가서 이렇게 시나위를 연주하고 있으면 그건 물고기들이 물에서 노니듯이 자연스럽다. 그 속에는 논리도 없고 자연에 동화되어 있으며, 가락의 높낮이 장단에 구애됨이 없이 마치 봄바람이 불어 꽃잎이 날아가듯이 흘러가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 시나위가 있었다면 아마도 현대에는 재즈일 것이다. 재즈의 미학은 시나위의 미학과 닮았다. 다만 재즈가 산업사회의 산물이라면 시나위는 자연의 산물이다. 하지만 정신은 같다.

바로 유영, 물화 그리고 혼돈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음악들은 그 속에 푹 빠지지 않으면 맞출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다. 하지만 푹 빠진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편안한 음악도 없는 것이다. 봄날의 재즈 아니 시나위 꽃잎이 휘날리는 계곡 양지에 막걸리와 함께하면 좋은 날이다. 봄날은 그렇게 간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 졸업,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마케팅 전공 수료, 가치투자 전문 사이트인 아이투자 산업 분석 칼럼 연재(돈 버는 업종분석), 동서대학교 전 겸임교수(신발공학과 신제품 마케팅 전략 담당), 영산대학교 전 겸임교수(신제품 연구소 전담 교수), 부산 정책과제-글로벌 신발 브랜드 M&A 조사 보고서 작성 책임연구원, 2017년 상도록 출판, 2018년 대화 독법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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