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전염병, 역사를 바꾸다
[선비촌만필] 전염병, 역사를 바꾸다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20.02.10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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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인류만은 이 준엄한 자연의 법칙을 알고 있기에 온갖 지혜를 동원해 건강하고 축복받는 출생과 보람 있는 삶을 통해 존경받는 노후를,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준비된 죽음(존엄사)을 맞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오늘 같은 문명사회를 이룩했다.

현대의학이 치명적인 질병을 극복하고 나면 또 다른 신종 질병이 우리를 위협한다. 질병정복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그로벌 제조업 허브인 우한에서 발생, 확산되며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번 우한 폐렴 사태가 감염 공포 못지않게 생산과 물류 시스템을 마비시켜 국제 산업 생태계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초기대응 실패와 정보통제에 따른 국민 불신과 민심이반으로 중국의 통치체제는 물론 중국몽이나 일대일로 등 중국의 그로벌 패권전략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China chance’를 구가하던 관련국들이 이제는 ‘China risk’로 극복할 대안 마련이 시급해졌다. 그로벌 시대에 전염병 하나가 국제경제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가공할 수준이다.

지금까지 인류를 위협했던 전염병이 그 시대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쓴 흑사병(페스트)은 단 5년 사이에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에 이르게 한 대 재앙이었다. 흑사병의 후유증으로 신성 로마제국의 지배 체제가 뿌리째 흔들렸는가 하면 신성(神聖)과 세속(世俗)을 지배하던 종교(카톨릭)가 그 권위를 상실했으며 봉건 영주들의 지배 시스템이 붕괴됨으로서 중세 봉건시대가 종말을 고하는 계기가 될 줄 당시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신의 대리자인 성직자들조차도 흑사병에 힘없이 죽어갔고 수도원이 초토화되는 것을 바라본 사람들은 신의저주가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며 종말 공포에 떨어야 했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의 집단광기(狂氣)를 표출할, 혼란에 휩싸인 시민들의 시선을 돌릴 제3의 표적도 필요했다. ‘유대인이 흑사병을 퍼트린다’ 는 유언비어가 바로 그것 이였다. 적개심의 대상이 된 유대인들의 거주지엔 흑사병 감염자가 비교적 적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도들에 뿌리 깊은 반시오니즘(Antizionism)이 흑사병 공포를 더욱 가중시켰다. 흑사병이 어느 정도 진정됐을 때엔 이미 시대를 주도하던 종교는 권위를 잃었고 봉건 영주들도 지배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렇게 14세기 후반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사상이 태동하면서 인간 이성과 창의력에 눈뜨는 계기가 됐고 이어서 16세기에 촉발된 종교개혁의 원인(遠因)을 제공하기도 했다. 흑사병이라는 치명적 전염병이 유럽 중세역사 흐름을 바꿔버린 것이다.

* 신대륙 발견한 16세기, 유럽인들은 천연두와 홍역을 전파해 면역력이 전무全無했던 신대륙 원주민 90%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이로 인해 잉카, 아즈텍 등 토착문명을 괴멸됐다. 전염병을 정복전쟁의 수단으로 악용한 사례도 놀랍다. 아예 그 지역 고대문명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 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 여름, 미군 병영에서 발생했다는 스페인 독감은 2년 동안에 5천만 명이 희생됐다. 전쟁 중 전사한 병사보다 더 많은 세계인이 전염병으로 죽어간 것이다. 전시(戰時)라는 이유로 참전국들이 전염력과 치사율 최강의 독감정보를 통제하는 사이 무고한 시민들과 병사들이 무방비로 이 독감에 노출됐기 때문이었다. 100년 전 한반도에서만 14만 명이 이 독감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참전국이 아니었던 스페인만 언론을 통해 독감 사태를 대서특필 하면서 ‘스페인 독감’이란 별명(?)을 얻게 됐다는 해프닝에 스페인은 황당하지 않았을까?

중앙아시아 전장에서 흑사병 사망자의 시신(屍身)을 무기로 사용하고 이에 감염된 병사가 이태리로 귀국하며 유럽을 초토화시킨 흑사병 재앙이나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정복하면서 천연두와 홍역을 무기화해 원주민과 토착문명을 괴멸시킨 것도, 20세기 국가권력이 치사율 강한 독감정보를 통제함으로서 무고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역사에 기록된 전염병 잔혹사(殘酷史)다.

19세기 과학혁명과 현대의학의 발달로 많은 질병이 극복됐다. 위생환경이 개선되고 예방의학도 발달하면서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현대 첨단의학을 비웃듯 5천여 종이 넘는 신종 바이러스가 전염력이 강해지며 변종을 거듭하고 있어 백신 개발의 틈을 주지 않고 있으니 인류의 질병 공포는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만 명이 국경을 넘나드는 단일 생활권의 지구촌에서 어느 나라 어디에서 발생한 전염병도 단시간에 전 세계를 감염시키는 세상이 됐다.

전염병 발생 국가의 효과적인 초기 대응은 물론 관련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공개함으로서 지역사회나 국제사회 모두가 효과적인 방역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신종 병원체에는 방역 시스템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방법 밖에 없다. 국가 공동체의 대응 능력은 방역체계와 대응 매뉴얼에 따른 훈련으로, 신속,정확한 정보 공개를 통한 국민들의 협조체제 구축과 국제사회의 원활한 공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사스나 메르스 사태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이 모든 것의 전제는 관련 당국에 대한 신뢰다. 정부나 관련 기관에 대한 불신이 누적되면 국민들의 협조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질병의 역사를 기록한 맥 네일은 그의 저서 「Plagues and Peoples」에서 인간에 기생하는 병원균으로 ‘미시기생(微視奇生)’과 인간을 착취하는 권력으로 ‘거시기생(巨視奇生)’이 상호작용하는 것이 질병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인류사는 질병이나 군림하는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갈구해 온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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