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고대 역병과 인간 윤리
[대림칼럼] 고대 역병과 인간 윤리
  • 전월매 천진사범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3.1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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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의 확산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고대 중국은 전염병을 어떻게 기재했을까?

고대에는 전염병을 역병(疫病), 온역(瘟疫)이라 했다. ‘역’은 ‘돌림병’이라는 의미이고 ‘온’은 체온이 올라가서 열이 난다는 뜻이다. 역병은 일찍이 중국 고대 사료인 <주례(周礼)>나 <여씨춘추(吕氏春秋)> 등에 ‘사계절에 발생하고 백성이 시달리는 질병’으로, <황제내경>에도 ‘모두에게 전염되고 증상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질병’으로, 청나라 <청역록(清疫录)>에는 ‘의로운 병(义病)’으로 기재돼 있다. 역병은 빈부격차,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고 증상이 같다는 것이다.

역병은 고대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저승사자였고 심지어 한 국가를 망하게 하는 원흉이었다. 중국의 경우, 유행성 감기, 기침, 폐렴, 결핵, 말라리아(疟疾,학질), 페스트(鼠疫), 장티푸스(傷寒), 콜레라(霍乱), 천연두(天花, 홍역), 나병(麻风病, 문둥병) 등의 전염병은 시대마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했다. 한나라 시기에는 페스트가, 남북조시기에는 천연두가, 당나라 시기에는 말라리아와 나병이, 명나라 시기에는 페스트가, 청나라 시기에는 페스트와 콜레라가 유행했다.

삼국시기 위나라 문학가이자 조조의 넷째 아들인 조식은 <역병을 말하다(談疫氣)>에서 “건안 22년, 역병이 돌았는데 집집마다 죽는 이가 생기는 아픔을 겪고 방마다 애통의 흐느낌이 울렸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혹은 멸족하여 사망했다”고 참상을 적고 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崇禎) 시기에는 지지리도 추운 겨울에 발생한 페스트가 전국에 퍼져 백성들은 무더기로 죽어 나가고 외부로는 반란군의 침입을 받아 더 회생할 여력이 없어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고 기재돼 있다.

고대는 과학지식과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대부분 사람은 전염원을 귀신의 농간으로 여겼다. 중국에서 의원은 춘추전국시기 후부터 있었다 하지만 많은 백성은 신에게 제를 지내며 치료하려 했다. 남북조시기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집집마다 “두신상(痘神像)”을 만들어 제를 지내 빌었는데 그 두신상 얼굴은 곰보자국이었다. 고전소설 <홍루몽>에도 왕희봉의 딸 대저가 홍역을 치르게 되면서 왕희봉이 두창여신을 모셔다가 치성을 올리게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고대인들은 역병이 인간의 윤리와 관련이 있다고 인식했다. 개개인의 도덕 수양이 부족하면 질병이 몸을 덮칠 수 있고 그것은 자식에게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군자라면 질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고 걸리더라도 자신의 도덕 수양에 의하여 치료되고 완쾌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 수양은 질병의 치유에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지괴소설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서진(西晉) 시기 한 동자가 말라리아에 걸린 부친의 약을 구하고자 바깥에 나갔는데 어떤 사람이 “품격이 고매한 군자가 어찌 그런 역병에 걸리느냐?”고 비아냥거렸다는 대목이 있다. 지괴소설 <선험기(宣驗記)>에는 국주씨에게 태어날 때부터 말 못 하는 질병을 앓는 아들 셋이 있는데 그는 이것이 자신이 유년 시절에 저지른 살생 행위에 대한 징벌과 경계라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진심으로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뉘우치면 아이들의 병이 나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고대인들의 인식 속에는 도덕·윤리가 지상의 것이었고 그에 따른 인과보응의 사상이 뿌리내려 있었다. 이는 통치계급의 이데올로기, 통치수단, 고대인들의 무지 등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다른 한편, 인간의 인성교육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점은 무시할 수 없다. 고대인들은 자신의 인격 수양을 쌓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고 자아에 대한 성찰과 반성, 더불어 타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베풀 줄 알았다. 신라 시기, 한국의 주술적 성격을 띤 향가 <처용가>도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처용이 자신의 아내 미모를 흠모하여 사람의 형상을 꾸며 밤에 몰래 들어와 동침하는 역신(疫神, 전염병을 옮기는 신)을 다툼이나 싸움이 아닌 노래로서 감화시켜 물리친 것, 역신이 물러간 것은 처용의 군자 품격과 인간의 행위를 초월하는 도덕 윤리에 감화해서였을 것이다.

그 외에도 전염병에 대한 선진적이고 독창적인 인식들을 볼 수 있었다. 조식은 <역병을 말하다>에서 사람들은 “역병이 귀신이 농간하여 벌인 일이라 여기는데”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밝히면서 귀신과 미신을 반대하고 있다.

명나라 말기, 의술가인 오우가(吳又可)는 <온역론(溫疫論)>에서 “역병이라는 것은 바람, 추위, 열, 습도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늘과 땅 사이의 어떤 기운, 공기에 의해 전염된다”, “한약이 온역 치료에 유효하다”는 당시로는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역병의 참상을 목격하고 선인들의 논저를 기초로 역병에 관해 치밀하고 깊이 있는 관찰과 논증을 거쳐 중국에서 역병 전문 저서 <온역론>을 저술했다. 중국영화 <천하대전(大明劫)>(2013)에는 망해가는 명말(明末) 숭정황제 집권시기, 전쟁과 온역으로 인한 백성과 병사들의 참상과 떠돌이 의사인 오우가가 그 참상을 목격하고 역병을 연구하고 퇴치하기 위한 격리, 한약 복용 등의 실천 과정이 리얼하게 재현돼 있다.

<홍루몽>에도 보면 왕희봉은 딸의 홍역 치료를 위해 두창 여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외에도 남편인 가련을 다른 별채인 서재에 보내 격리하고 의원을 청해 한약을 짓고 복용을 시킨다. 환자는 점차 부스럼이 떨어지고 고비를 넘겨 병이 나아 완쾌한다. 반면 아버지인 가련은 서재에서 격리하는 동안 취사원 마누라와 바람이 나 있었다. 관례적인 고대인의 인식으로 볼 때 딸이 홍역을 치르는 기간 재계를 해야 할 부친이 그러지 아니하고 죄를 짓고 있으니 그 죄가 딸의 죽음으로 묘사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에서 격리와 한약의 치료 등의 과학적 의료기술의 힘을 제시하는 데 여기에서 대가인 조설근의 질병에 대한 선진적인 인식을 볼 수 있다.

역병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한 나라를 멸망시키고 한 문명을 멸망시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생활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기도 했다. 고대인들에게 제일로 여겨지는 인간의 윤리 도덕과 끊임없는 인격 수양 쌓기는 모든 것이 물질과 이익이 우선시되는 우리 현대인들이 되찾아야 할 부분이 아닌지 심사숙고하게 한다.

필자소개
전월매 천진사범대학교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학박사, 동북아신문 편집/기자,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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