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시대의 봄꿈
[대림칼럼] 시대의 봄꿈
  • 리위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 승인 2020.04.0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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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산 중턱에는 푸르른 나무들이 우두커니 줄지어 서 있다. 가지 위에서는 철새와 까치 소리가 한창이고 그 아래에서는 만개한 진달래가 말없이 연분홍을 띄우고 있다.

여느 봄처럼 생기가 넘치고 화사한 계절만은 아니다. 봄소식이 오기도 전에 우리 사회는 이미 코로나19에 관한 뉴스와 확진자의 동선공개 메시지에 휩싸여 있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적 향유의 시간을 누리고 싶은 우리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어 ‘밖’으로 안내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한 갈망과 기다림 속에서 사람마다 가슴 속에 색다른 꿈들을 품어가고 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한 꿈, 백신 개발을 위한 꿈, 교실 수업을 위한 꿈, 봄나들이를 위한 꿈 등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기 그지없다. 어찌 보면 그 핵심은 만남에 있다. 이 모든 것은 심적으로 단절된 소통을 영상이 아닌 직접적인 만남으로 잇기 위한 소박하고도 절실한 봄날의 꿈이다.

지난 100여 일간 세계는 분노와 슬픔과 감동과 기쁨의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 겨울철의 선구자인 리원량의 용기와 죽음이 있었고, 최전선에 몸을 던진 백의천사들이 있었으며, 완치된 환자 수가 늘어나는 희소식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국가 간의 의료용품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정부를 비롯한 시민단체, 유학생 단체 및 한 개인의 ‘사랑 전달 릴레이’가 국민 사이의 두터운 정에 힘입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작가들은 이러한 순간들을 다양한 문학 장르와 가사에 담아 삶에 생기를 더해주고 있다. 특히 우리의 영혼과 맘을 움직이는 시와 노래는 아픈 자의 마음에 필요한 영적인 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연약한 마음을 보듬어주고 치유해 주었다. 이와 함께 아파트 단지들에서는 새로운 풍경이 연출됐는데, 무기력하고 막막하고 갑갑한 시간을 물리치고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각자의 리듬에 맞춰 노래와 함께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핸드폰의 가상세계에 빠져있던 주민들이 생활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웃을 향해 창문과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기적이고도 부도덕한 행위들이 잇따라 발생하기도 했다. 사재기했던 마스크를 고가에 팔거나 일반 마스크를 기능성 보건용으로 속여서 대량으로 유통한 업자들이 있는가 하면 특정 약품을 ‘백신’마냥 홍보해서 이익을 챙기는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결국엔 미(微)신은 미(迷)신으로 돼버렸고 명백한 진실마저 가짜 소식과 뉴스에 희석된 채 바이러스보다 신속히 퍼지기도 했다. 이처럼 바이러스의 본질을 파악한 의학기술이 없는 한 인간의 시도는 맹목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확진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아격리는커녕 공공장소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자들, 대규모 집회와 모임을 일방적으로 행하려는 자들, 주민의 대문에 못을 박는 자들도 있다. 생명과 안전을 위해 서로 지켜왔던 기존의 사회 질서가 이토록 무너져가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전 세계는 또다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축제의 분위기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생명과 시간과 사건들이 망각 속으로 고요히 침전돼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인류가 범했던 오류를 사회 질서의 회복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이 무겁긴 하지만 톨스토이는 일찍이 동명 소설을 통해 그 답을 제시한 바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미하일이 깨달은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즉 사람은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인류 공동체 속에 다양한 형식으로 고착돼 온 이 사랑도 일정한 범주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은 원초적인 사랑에 대해 “원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는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본연의 사랑이 인간 사회의 발전에 따라 그 대상이 인간관계로 초점화되면서 한정된 의미로 작용하게 됐다. 무엇보다 사랑은 활동적인 것이며 참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인식 전환의 과도기에 놓여있는 인류는 인간 사회 자체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와의 비틀어진 관계 설정을 새롭게 조정하면서 사랑 전파의 태도를 함양해야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변함없는 질서이지만 그 ‘조화’를 깨뜨린 인류는 여전히 자아 중심주의 사고 패턴으로 생활하고 있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만 높이 치켜들고 자연의 질서를 도외시한다면 머지않아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인류가 그동안 겪어온 지진, 쓰나미, 홍수, 산불, 바이러스 질병 등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자각해 왔고 삶에 가장 소중하고 고결한 것이 인간 생명임을 뼈저리게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 속의 만물이 생명을 갖고 있다. 그리고 꿈 역시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저 산속의 나무와 새와 진달래도 인간 못지않은 꿈을 잉태하고 있다. 

이 시각 ‘그들’도 갖은 질병과 아픔에 시달리면서 인간과 유사한 꿈을 그려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인간은 오늘날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현상을 수십 년 전부터 예상해왔다. 다름 아닌 영화 속의 담론과 사건들이 현실 세계에서 일일이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 기저에 인간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이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인간의 마음가짐과 상상력이 미래를 예견하는 것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사건을 염두에 둔 과학적인 대책 마련에도 미리 작용해야 할 것이다. 

‘포스트 휴먼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인류는 꿈을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하나씩 실현해 나가야 한다. 또한, 자연과의 유기적인 질서를 회복하는 가운데 건강한 생태계의 환원을 위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사랑의 확장에 앞장서야 한다. 그날이 다가오면 비로소 만해 한용운의 시처럼 세계가 잃어버린 ‘한 봄’도 더 남겨둘 수 있을 것이다.

春夢(춘몽)
夢似落花花似夢(꿈은 떨어지는 꽃 같고 꽃은 꿈 같은데)
人何胡蝶蝶何人(사람은 어찌 나비가 되고 나비는 어찌 사람 되는가)
蝶花人夢同心事(나비 꽃 사람 꿈이 모두 마음의 일이니)
往訴東君留一春(봄의 신에게 하소연해 한 봄만 더 남기라자)

필자소개
리위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 출생. 중국 연변대학교 조선언어문학 석사 졸업. 한국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한국어(문학)교육 박사과정 수료. 시, 수필, 논문 다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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