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청첩(請牒)
[이영승의 붓을 따라] 청첩(請牒)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20.04.11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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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도 애타게 고대하던 딸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서른여덟을 넘기지 않으려고 연말에 급히 날을 잡았다. 자식 결혼식에는 안부모만 바쁘다던 말이 실감났다. 아내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정신이 없는데 나는 할 일이 별로 없어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청첩업무를 전담하게 맡게 되었다.

지인들의 주소를 정리하여 청첩장을 보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청첩장을 보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청첩장을 받아 보니 ‘나라면 보내지 않았을 텐데’하는 사람으로부터 종종 청첩장이 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나를 기억하고 보냈는데 싶어 부조를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어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러한 심적 부담을 나도 남에게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미리 혼사를 치러본 몇몇 지인들의 고언이 있었다. “해도 욕먹고 하지 않아도 욕먹는 것이 자식 혼사의 청첩이다. 애매한 곳은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일단 보내라. 청첩은 이쪽의 도리요 축의 여부는 상대가 판단할 몫이다.”라고 했다. 먼저 겪은 경험담이라 참고는 되었지만 확신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재직 시절 몇 번 부조를 했던 선배 분들이라 해도 은퇴하고 나이 드신 분들께는 도저히 청첩장을 보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연락도 하지 않더니 고지서를 보냈네?’ 하고 생각지나 않으실까 걱정되었다. 과거에 내가 한 축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니 나의 혼사가 늦은 탓으로 돌리고 최대한 자제를 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지나고 보니 연락이 없는 몇몇 분은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반대로 마땅히 알렸어야 할 사람인데도 미처 챙기지 못해 누락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그분들 중에 몇 분은 어떻게 알았는지 결혼식장에 모습을 나타냈으며, 축하 전화와 함께 축의금을 보내온 분도 있었다. 어떤 분은 한참 지난 후에 전화하여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질책한 후 축의금을 보내기도 했다. 참으로 많은 감동을 받았다. 

누구나 ‘그 사람은 내 혼사에 반드시 참석하리라’기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와의 지나 온 인간관계가 그럴만하기 때문이리라.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 청첩을 했음에도 아무 소식이 없는 사람도 있었으며, 최근에 내가 축의를 한 사람도 몇몇 있었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으로 한동안 마음이 편치 못했다. 모빌 청첩장으로 보내 수신을 확인한 사람들이기에 송달 착오도 아니다. 그렇다고 연락해 물어볼 수도 없다. 애경사를 겪어봐야 인간관계가 정리 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모두가 나의 부족함 탓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자녀 결혼은 현직에 있을 때 시키라는 말이 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말도 수차 들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시키는 것만도 축복받을 일이라 생각하며 나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하객 식사 인원을 부족하게 예측했다. 500명을 예약했는데 180명이나 초과된 것이다. 다행히 식당이 호텔과 연계된 업체라 음식 공급에는 차질이 없었다. 화환도 몇 개나 들어올까 은근히 걱정했는데 기대이상으로 16개나 들어왔다. 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당신 인생 잘 살았네요!”라는 아내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을 피로가 일시에 녹아내렸다. 

그간 지인들의 결혼식에 축의금만 보내고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개혼도 하지 못했는데 십년 이상 후배들의 혼사가 줄을 잇고 있으니 어찌 참석하여 축하할 기분이 났겠는가? 이제부터는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찾아다니려 한다. 형편상 참석하지 못할 경우에는 축의금과 함께 진정성 있는 축하 문자도 보낼 것이다. 이번에 그런 문자 받아보고 깊이 느꼈다. 

결혼 시즌이 되면 청첩장이 봇물을 이룬다. 청첩장을 남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마음이 불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각자 생애 최대의 경사일 것이다. 솔직히 겪어 보지 않은 나는 청첩의 심경을 제대로 다 알지 못했다. 자식 혼사를 시켜보기 전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가? 칠십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이제 사 나도 어른이 된 기분이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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