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공짜 평화는 없다
[해외기고] 공짜 평화는 없다
  • 서상태 중앙아프리카공화국한인회장
  • 승인 2020.07.10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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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발발 70주기를 기념하기도 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생활’에서도 벗어날 겸 한국전쟁 격전지를 찾아보았다. 철의 삼각지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철원의 백마고지를 시작으로 동해의 통일전망대까지 둘러본 2박 3일의 여정이었다. 중동부 전선의 산과 계곡 곳곳엔 녹이 슨 대포와 전차 그리고 박격포 소총 등이 남아 있었다. 그 많은 전쟁기록 중 마음 깊이 와닿는 몇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철원의 백마고지는 중부 전선 철원-김화-평강을 잇는 삼각 지역(철의 삼각지) 전투의 중심지다. 1952년 10월 휴전을 앞두고 남북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뺏으려고 395m의 고지를 사이에 두고 10일 동안 전투를 벌였는데, 이 지역의 주인이 무려 7번이나 바뀌었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다.

백마고지를 지켜냄으로써 기름진 철원평야와 화천발전소를 확보하게 됐지만, 이 전투에서 아군 3,500명과 중공군 14,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코로나19 때문에 폐쇄된 제2 땅굴 평화전망대 등을 보지 못하고 화천 파로호 상류 지역 전쟁터로 이동했다. 북한강 상류 휴전선 가까이에 있는 비목공원에서 우리들의 애창 가곡 비목의 유래를 읽었다. 알고 계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1960년대 중반 한명희라는 초급장교가 북한강 상류 백암산 기슭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중 잡초가 우거진 계곡에서 무명 용사의 녹슨 철모와 조그마한 돌무덤 하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한명희는 그 돌무덤의 주인이 전쟁 당시 자기 또래의 젊은이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처연한 기분이 들어 그 무덤 앞을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고. 제대한 후 TBC방송국(옛 동양TV)에 근무하면서 그 돌무덤을 잊을 수가 없어 시를 쓰고 작곡가 장일남씨에게 부탁해 만든 곡이 우리의 애창곡 비목이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 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나는 이 시를 돌무덤 현장에서 읽던 중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라는 대목에서 콧물을 훔쳐야 했다.

향로봉 기슭 건봉사의 출정사. 해발 1,292m의 향로봉 기슭,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건봉사 빈터에서 조영암 시인의 출정사를 발견했다. 건봉사는 거찰이었으나 전쟁으로 불타고 지금은 불이문만 외롭게 옛 대로 남아 있었다. 이 시를 읊으면서 기어이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아야 했다. 살아 올 기약이 없는 전쟁터로 나가는 젊은 영혼이 부르는 마지막 유언 같았다. 향로봉 깊은 계곡에서도 예외 없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전쟁은 수 없는 젊은 피를 앗아 간 것이다. 책에서 읽는 시와 그들이 목숨을 바친 전쟁터에서 읽는 시는 전혀 시감이 달랐다.

복사꽃 붉은 볼이 너무도 젊어
사랑도 하나 없이 싸움터로 달린다
나라와 겨레 위해 몸이 슬어도
천년 후 백골은 웃어주리니
흐려오는 안정에 얼비치는 사람아
흰눈벌 촉루 위에 입맞추어 달라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전장에서 싸우다 사라진 젊은이들 덕에 대한민국이 번영하게 되었고 기름진 철원평야와 설악산 속초 의상대 화진포 등 아름다운 동해를 수복할 수 있었다. 이번 6.25 격전지를 찾아보면서 많은 외형적인 전쟁기록보다 현장에 세워진 두 편의 시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공짜 평화는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70년 전 천지를 진동하는 포성 속에 시산혈해를 이루었던 그 날의 아픔을 다 잊은 듯, 우리나라 산과 계곡은 고요하고 아름답기만 했다. 나의 아둔한 글로는 내 나라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노산 이은상의 시 한 줄로 대신해 본다.

산 첩첩 물 겹겹 아름답다 내 나라여
자유 정의 사랑 위에 오래거라 내 역사여
손 모아 비는 말씀 이 겨레 잘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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