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사자성어] 소인유운(騷人遺韵)
[미학의 사자성어] 소인유운(騷人遺韵)
  • 하영균(상도록 작가)
  • 승인 2020.07.2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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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의 뜻은 시인은 시의 운을 남긴다는 말이다. 소인(騷人)이라는 말은 중국 초나라의 시인이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부(離騷賦)에서 유래한 말이다. 글을 쓰는 사람 풍류를 즐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시인이나 문객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시인은 시의 운을 남긴다는 말은 바로 한시의 운율에 맞추어서 시를 남긴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소인은 상징적 의미로는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즉 굴원(屈原)이 시를 남긴다는 뜻이 된다. 시인이 시를 남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굴원(屈原)의 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왜 그런지는 굴원(屈原)의 살아간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직도 중국에서는 굴원을 추모하는 날이 오늘 단오라고 하는 데 그 상징적 의미로 굴원(屈原)이 먹었다는 대나무 껍질로 싼 종자(粽子) 음식은 먹는다고 한다. 종자(粽子)는 일명 각서(角黍)라고도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강에 투신한 굴원을 기리기 위해 먹는다고 한다.

사기에 나와 있는 굴원(屈原)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굴원은 춘추 시기 초회왕(楚懷王)의 대신으로 있었다. 굴원은 현자를 천거하고 능력 있는 자에게 관직을 주며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성하게 하며 강력히 제나라와 연합하고 진나라에 저항하는 정책을 제창해 왔는데 귀족 자란(子蘭) 등 사람들의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굴원은 모략을 받고 관직을 내려놓고도 성에서 쫓겨나 원(沅), 상(湘) 일대로 유배되었다. 유배 기간 그는 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걱정하는 이소(離騷), 천문(天問), 구가(九歌) 등 불후의 시를 써냈다. 그가 쓴 이런 시들은 풍격이 독특해 그 영향력이 아주 컸다. 기원전 278년, 진(秦)나라는 초(楚) 나라 수도를 공략했다. 자기의 조국이 침략을 받는 것을 본 굴원(屈原)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고 조국이 침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하여 음력 5월5일에 인생의 마지막 작품 회사(懷沙)를 써놓고 돌을 안고 멱라강(汨羅江)에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굴원이 죽기 전에 남긴 어부와의 대화를 漁父辭(어부사)로 남겼다.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다.

굴원이 이윽고 쫓겨나 강과 물가에서 노닐며 연못 둔덕에서 시나 읊조리고 다니는데 안색은 초췌하고 모습이 수척하였다. 어부가 그를 보고 물어 말하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굴원이 말하기를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그래서 추방을 당했소”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과 함께 변하여 따라간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왜 진흙탕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거든 왜 술지게미를 먹고 박주를 마시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스스로 쫓겨남을 당하게 하십니까?”

굴원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했소. 어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에 가서 물고기 배 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희고 깨끗한 몸으로 세속의 먼지와 티끌을 뒤집어쓸 수 있겠소?”

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뱃전을 두드리고 가면서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 마침내 떠나가 다시 함께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 대화는 굴원(屈原)의 마지막 대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부가 누구인지 후대 사람이 생각한 것은 바로 굴원(屈原)의 다른 모습 즉 세상과 타협하고 살고자 했던 굴원(屈原)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굴원은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죽었다.

굴원은 자신의 역정을 인생의 허망함을 보여주었다. 봄을 아무리 아쉬워해도 봄을 잡을 수 없고 가을이 아무리 높아도 북풍이 몰아치는 겨울을 피할 수 없다. 굴원이 느꼈던 그 애타는 심정 즉 길이 있는데 가지 못하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은 가야 하는 운명에 대해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사자성어가 바로 소인유운(騷人遺韵)이다. 시인은 시로 자신의 운명을 말한 것이다.

굴원(屈原)이 남긴 원유(遠遊)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下崢嶸而無地兮(하쟁영이무지혜): 아래는 깊어서 땅이 없고
上寥廓而無天(상요곽이무천): 위에는 넓어서 하늘이 없어라.

굴원(屈原)의 막막함은 사실 그 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지식인들은 똑같은 고민을 했다. 길이 있는데 아무도 가지 못하니 그 길로 외로이 가야 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굴원(屈原)이 결국 멱라강에 몸을 던지는 것도 바로 지식인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자신을 내 던졌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정치 권력에는 등을 돌리고는 때로는 죽림에 숨기도 하고 때로는 술에 취해 세상을 보내기도 했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이런 비애감이 가득한 이런 예술은 우리 주변에 많이 볼 수 있다. 유행가 속에도 보이고 영화 속에도 보인다. 가장 많이 느끼는 부문은 어쩌면 연극일 것이다. 연극을 보고 나면 언제나 느꼈던 그런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바로 이런 비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연극의 출발이 시인들의 낭송에서 출발했다고 한다면 소인유운(騷人遺韵)의 사자성어는 다르지 않다. 시인은 시로 노래하지만, 그 깊은 속은 바로 인생의 허망함이다.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허망함 그리고 아무리 큰 뜻을 세워도 그 뜻을 이룰 수 없는 지식인의 고뇌가 예술로 남았다. 항상 이럴 때면 머릿속은 마치 레코드판이 리플레이 되듯이 유행가가 떠다닌다. 봄날은 간다. 그리고 인생도 간다. 그 맹세들은 꽃잎처럼 떨어지고 봄날은 비에 떨어져 지나간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 졸업,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마케팅 전공 수료, 가치투자 전문 사이트인 아이투자 산업 분석 칼럼 연재(돈 버는 업종분석), 동서대학교 전 겸임교수(신발공학과 신제품 마케팅 전략 담당), 영산대학교 전 겸임교수(신제품 연구소 전담 교수), 부산 정책과제-글로벌 신발 브랜드 M&A 조사 보고서 작성 책임연구원, 2017년 상도록 출판, 2018년 대화 독법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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