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순혈주의(純血主義)
[선비촌만필] 순혈주의(純血主義)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20.08.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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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실은 골품(骨品) 순혈주의에 따라 성골 내의 근친혼(近親婚)을 고집했다. 근친혼이 지속되면서 왕위계승 질서도 문란해졌다. 열성(劣性) 유전자의 출현으로 국정이 난맥에 빠져 신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왕가의 정신병이나 주걱턱 같은 악성 유전병에다 왕위계승 문제로 분열한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도 순혈주의에 집착해 근친혼을 지속하다 왕조가 소멸하고 말았다고 인류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인류사에서 보면 왕가나 특권층을 중심으로 혈통의 순수성(純血)을 보전하고자 폐쇄적 족내혼, 근친혼을 고집한 경우가 많았다. 고려 전기 왕족이나 중세 일본의 혼인풍속, 18세기 이후 세계금융지배 가문(家門)인 로스차일드家 등이 잘 알려진 근친혼 사례다. 타 가문으로 재산이나 기득권의 이탈(離脫)을 막기 위해 근친혼을 유언했다고 한다.

300명 내외의 소수 인구가 섬에 고립되어 수백 년 족내혼으로 살아온 남대서양에 있는 트리스탄다쿠냐섬 주민들도 악성 유전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반면에 수천 년간 전 세계로 유랑해온 유대족은 현지인들과의 이종교배(異種交配)-혼혈을 일상화했기에 오히려 잡종강세 이론에 따라 유대족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키워 왔다고 한다. 영향력 있는 세계적 유명인사에 유대 족이 많은 것이 이런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원시사회에서는 족내혼이나 근친혼이 일반적이었다. 근친혼의 해악을 경험하고서야 문명사회에서 근친혼은 금기(禁忌) 중의 금기가 됐다. 1866년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과학적 우성(優性)과 열성(劣性) 유전자론과 잡종강세(雜種强勢)이론 등이 세상에 알려졌다. 

‘생물학적 순혈주의’에 집착한 우생학적 비극을 경험한 많은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순혈주의’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종교가 세상의 모든 가치를 지배하던 중세를 ‘암흑기’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인간이성(人間理性)에 눈뜨지 못했던 시대에 ‘르네상스’라는 ‘이성혁명(理性革命)’이 일어나고 18세기 이후 시민혁명,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인간 사고의 지평이 확장되자 가치의 다양성(多樣性)을 존중하게 됐다. 

인간이성의 힘이 인간의 존엄이나 자유, 정의, 평등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확립, 공유했고 공정을 추구한다. 학자들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전제에서 상호 충돌하는 가치나 이상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제도와 과정 즉 ‘가치의 이종교배’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도 내가 하면 옳고 네가 하면 틀렸다는 독선과 위선, 상대방의 반대나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른바 ‘선택적 정의’도 사고(思考)의 순혈주의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진영(陣營)의 폐쇄적 울타리 안에서 같은 목적이나 이념을 공유하는 구성원끼리 사고(思考)의 동종교배(同種交配)가 지속되면 편견과 자기 확신만 키워가게 되고 새로운 발상이나 인식의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진영 간에 대화와 타협은 단절되고 동지(同志)와 적(適)만이 남게 된다. 적은 토벌과 괴멸의 대상일 뿐이다. 

이렇게 이념의 열성 유전자가 증폭되면 다양성은 말살되고 집단의 자기 교정력(矯正力)은 퇴화하며 각 진영 간의 ‘확증편향(確證偏向)’이라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親朴이니 親文이니 하는 극렬지지집단들 내부에서 반복해온 이념의 동종교배가 우리 사회의 변태적 갈등 구조를 증폭시켜 오지 않았는가! 

조선의 성리학 근본주의나 대원군의 쇄국정책, 또 나치스의 아리안족 우월주의 같은 유일사상이 지배하는 ‘사상의 순혈주의’는 다른 생각이나 가치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척결의 대상이 몰았다. 이런 것들이 사회적 순혈주의가 낳은 폐해였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사상,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과 같이 다양성 속에서 발현된 우성(優性)인자가 문명의 진화를 촉진했던 것이다.

결국 단세포적인 사상의 순혈주의로 치달은 국가나 집단은 퇴화하거나 퇴출당할 수밖에 없었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호 소통, 교류해온 ‘이종교배’ 집단은 잡종강세 이론에 따라 진화에 성공했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사회적 순혈주의에 사로잡힌 사고의 동종교배는 이렇게도 위험하다. 우리 모두가 ‘확증편향’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지 않은지 주변을 살피며 성찰해야 할 시간이다.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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