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대한항공007 격추사건 재조명
[해외기고] 대한항공007 격추사건 재조명
  • 송광호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 승인 2020.08.31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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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소련 보프코프 KGB 부의장 “KAL은 미 첩보촉매 역할” 주장

9월1일은 KAL007편(보잉747) 여객기가 격추된 지 만 37년째가 되는 날이다. 그날 새벽 발생한 비극적 사건 관련 당시 소련 고위정보책임자였던 필립 보프코프 KGB(소련국가 보안 기관) 제 1부의장 견해를 소개, 당시 사건을 재조명한다.

지난 1983년 9월1일 앵커리지(뉴욕발)에서 이륙한 민간항공 KAL007(보잉747) 기는 사할린 상공에서 구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당했다. 그때 269명(승객 240, 승무원 29명) 탑승객들 전원 사망했다. KAL007편 민항기가 정상 항로를 벗어나 소련영공에 진입했다 격추된 이 끔찍한 참사는 당시 소련은 유리 안드로포프가 최고 권력자인 서기장 및 주석(미국은 레이건 대통령)일 때 발생했다.

필립 보프코프(1925년 생)는 당시 KGB(소련 국가안보 기관) 제1 부의장을 맡고 있었으며, KGB에서 만45년 간 몸담은 정보 전문 최고위급 간부였다.(소련 1986년 KGB 대장/러시아 1992년 러시아 국방부 고문/국회의원)

지난 1991년 12월 말 소련이 붕괴된 후 나는 러시아 특파원으로 92년부터 모스크바에 상주할 때 95년 지인 소개로 보프코프 씨를 만났다. 그때 그가 펴낸 회고록 <KGB와 권력(KGB 비화)>을 입수, 부산일보와 첫 외국출판계약을 맺었다. 그해 9월 말 내 소속사였던 부산일보는 보프코프와 그의 변호사 페트병 로브 스키(영어통역) 등 2명을 초청, 부산일보 강당에서 200여명을 모아놓고 초청강연회를 가졌다.

맨 오른쪽이 필립 보프코프 전 소련 KGB 제1부의장.
맨 오른쪽이 필립 보프코프 전 소련 KGB 제1부의장.

사실 초청 방한 시 그가 KGB 고위시절 겪은 소련 정보책임자로서 당시 KAL 격추상황 의견을 직접 듣고자 했으나, 요청을 거부해 진전이 없었다. 보프코프는 방한을 끝내고 모스크바로 돌아온 후 얼마 안 돼 내게 장문의 KAL 격추 관련 글을 보냈다. 그를 만나 KAL 격추 당시 설명을 다시 취재했다.

보프코프의 주요 핵심내용은 “KAL007편 항공기가 미 첩보행위와 관련됐으며, 당시 미 인공위성 촉매역할을 했다”는 그의 확신적 주장이다. 부산일보는 보프코프 회고록 ‘KGB 비화’ 연재를 시작했고, 그의 주장은 다시 게재 기회를 갖기로 했으나 별도 취급한 기억이 없다.

타 한국언론 등에서는 나중 KAL 격추 취재 시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소련 조종사에게 초점을 맞춰 조종사 집(러시아 땅)까지 찾아가 당시 격추상황을 재확인한 취재 글을 읽었다. 이러한 기사는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소련 조종사 언급대로 첩보기라면 보잉 민항기로 위장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격추된 KAL007은 점 열 등 외에는 항공기 일체 내부불빛이나 꼬리 등도 켜있지 않아 식별이 어렵다고 밝혀져 있다. 또 KAL기에 접근해 소형 조명탄을 4발 쏘았으나 무반응으로 일관해 결국 지시대로 미사일 두 발로 격추했다는 것이다. 당시 시대 상황은 미-소 첩보전이 한창 치열할 때라 매일 미 정찰기들이 캄차카반도와 사할린 부근지역에 출몰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1992년 옐친 러 대통령이 방한 시 전달한 KAL 블랙박스로 사건 실마리를 풀 수 없었다. KAL 천병인(38년생) 기장이 관성항법장치(INS)가 아닌 수동인 나침방위 보드로 비행한 것이 재확인됐을 뿐이다. 관성항법(유도)장치로 가면 항로이탈이 결코 없는데, 원시적인 수동비행을 택했으니 항로를 수백 km 이상 이탈한 것이다. 도대체 왜 천병인 기장이 관성유도 항법 아닌 상식에 벗어난 원시적(수동) 방법을 택했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당시 기내엔 천 기장 외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도 있었다.

천 기장은 엘리트 조종사 중에도 최고 엘리트였고, 공군조정간부후보생과정을 수석으로 수료했다. 곡예비행단 블루세이버 팀원과 공군예편 후 대통령 전용기 기장까지 한 베테랑 조종사다. 그가 손쉬운 항법장치가 아닌 나침반 수동비행을 한 것 에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특히 그날 국제항로(R-20)에는 뉴욕발 KAL007편 외에 앵커리지(LA발)에서 서울행 KAL015편(기장 박용만)과 미 RC-135 정찰기도 주위에 있었다. 보프코프에 따르면 ‘미 RC-135는 KAL기와 유사한 형태의 보잉기로 신형 무선연락체제를 갖춘 정찰기’였으며, 주요사실은 ‘우주에 미 인공위성 페레트 D가 있었다’는 점이다.

우주에선 같은 위치의 미 인공위성이 소련 방공체계의 레이더 반응을 조사하는 행위를 했다. 미 정찰 목표가 바로 소련 군사기지의 전파탐지기(레이더망)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KAL007기는 “소련 전파 탐지기망의 촉매제역할을 위한 미 측의 첩보이용에 희생된 셈”이라고 주장했다.

즉 KAL007편, KAL015편, 미 RC-135 정찰기 등 모두 3대 보잉 비행기가 비슷한 시간대 비행 중, KAL007기만이 국제항로를 벗어나 2번이나 캄차카 및 사할린의 소련 지하 군사기지가 위치한 곳으로 진입한 점, 또 그때마다 비행궤도를 맞춘 미 인공위성이 나타난 점, KAL007 천병인 기장이 지상으로부터 음향측정이나 자기전파탐지기를 맞추어 놓지 않은 점 등 여러 사실로 미루어, 보프코프는 “KAL007기가 정찰업무에 관련돼 있다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 그는 “KAL007기가 앵커리지 공항에서 이유 없이 40분간이나 이륙 시간을 늦췄다”며 “이는 단지 미 인공위성의 비행궤도 시간대와 맞추기 위해서였다”고 풀이하고 “실지로 미 인공위성 비행궤도가 3번이나 KAL 비행지구를 지나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미 위성의 첫 번째 비행은 KAL이 캄차카반도에 채 닿기 전이었고, 두 번째는 소련영공에 진입해 캄차카와 오호츠크해 상공을 날고 있을 때, 세 번째는 사할린 상공을 날고 있을 때였다”며 “KAL이 소련 영공 통과 시 소련 레이더가 갑자기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 미 위성에 노출됐다”고 말했다.

보프코프는 “당시 미-소 양국은 이 레이더 전자 망이 최대의 국가관심사였으며, 83년 9월14일 일본 타임즈에 게재된 이 전자전문가 글 ‘레이더 전자전(戰)에서는 인공위성과 정찰기가 그 도구로 돼있다. 소련 전파탐지기 기지들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야 할 필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러할 때 상대방은 소련전파탐지기들을 레이더 방해로 무력화시키고, 그 레이더 전자 벽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실지로 이라크와의 사막의 폭풍 전이 그러했다. 이러한 설명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결국 불행한 격추사건이 일어난 착각을 야기하게 만든 것은 당시 상황과 KAL007편 기장의 이해 못 할 행위 때문으로 KAL007 기가 미 정찰에 이용됐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이 KAL 격추사건에 대해 러시아는 알고 있는 사실을 숨김없이 공개했고, 블랙박스까지 내주었다고 본다. KAL이 우연히 소련영공에 실수로 진입했다는 가정을 믿는 사람들은 당시 정치 환경과 상황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KAL 사건전모를 은폐하려는 움직임도 느꼈다. 이 참극에 관한 자초지종은 미국이 비밀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송광호특파원)

당시 보낸 장문의 글(러시아어/첨부) 내용을 줄여 소개한다.

부산에서 가졌던 기자회견을 비롯해 초대행사에서 만난 분들이 KAL007편 여객기 격추사건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언어장벽으로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 어려웠다. 혹시나 내 생각이 잘못 와전될 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일반적인 평가로 답변을 제한해 왔다. 하지만 오늘 나는 아는 한도 내에서 미국 정보기관이 조직한 첩보 여행에 대해 한층 세부적으로 답변하도록 노력하겠다.

당시 구소련과 미국 간 냉전이 첨예화되고 있던 시절이다. 미 레이건 대통령과 미 군수업체는 소련의 위협을 내세우며 최신형 군사무기 제작 예산증강에 힘쓰던 시절이다. 러시아 군사기지와 전략부대가 배치된 극동지역은 특히 미군의 주요 관심지역이 돼 왔다. 극동지역 정찰을 통해 소련의 미사일방어체계를 비롯한 주요 군사무기 소재를 파악하게 될 경우 군사적 위협에 대비와 함께 선제공격도 가능하다.

이라크 걸프전 ‘사막의 폭풍’ 작전이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걸프전쟁에서 이라크는 혹독하게 이 일을 경험했다. 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한 지식은 ‘사막의 폭풍작전’을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실질적으로 이라크를 공격한 미군의 손실을 크게 막았다.

이 미-소 첩보전은 양국 진영 팽팽한 긴장감 아래 모두 적극적으로 전개됐다. 1983년 9월14일 일본 타임지가 출판한 이 분야 전문가 데이비드 킨(David Keane)은 “인공위성과 정찰항공기가 전자전(電子戰)에서 무기역할을 한다”며 소련의 레이더 기지 확보에 대한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 정보가 확보되면 소련 레이더 포착 망을 벗어나 무선간섭의 ‘벽’을 통과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잉747 격추사건에 대해 간략히 짚어보자. 당시 항공기 보잉747기는 앵커리지에서 출발해 경로를 벗어난 후 소련영공에 두 차례 진입했다. 처음에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포함해 주요 군 시설물이 집중돼 있는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러시아 캄차카반도 남동부도시) 북쪽에 위치한 캄차카반도 상공에 진입한 후 군사적 정보력에서 주요한 사할린 남부지역 상공을 통과했다.

당시 상황 배경을 보면 9월1일로 넘어가는 새벽 앵커리지공항에서 007편 여객기 R-20 국제항로를 따라 이륙했다. 6분 뒤 LA발 서울행 015편도 뒤따라 이륙했다. 015편은 뒤쪽에서 경로에 벗어나지 않은 채 지상 관제탑과 통신을 유지했다. 한편 보잉 747기 007항공편이 일정보다 40분 늦게 앵커리지 공항에서 출발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3년 9월20일 소련 키르사노프 공군사령관은 “KAL007편이 40분 늦게 출발한 상황이 캄차카반도와 사할린 지역에 인공위성(Ferret-D)과 보잉747 여객기가 동시에 ‘출현’하는 절묘한 ‘타이밍’을 연출했다고 말했다.

첫 번째 교차 비행은 여객기가 캄차카 상공진입 직전에, 두 번째는 캄차카 영공진입 뒤 오호츠크해 상공을 통과할 때, 세 번째는 사할린영공을 통과할 때였으며 이때 인공위성 전자 시스템은 소련 미사일 방어시스템 움직임과 여객기 관제소 전체를 촬영할 수 있었다. 보잉747기는 촉매 역할을 한 것이다.

여기 한 가지 배경이 더 있다. 캄차카 공항으로 한국 여객기가 접근할 때 보잉기와 유사한 형태의 정찰기(RC-135)가 소련군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RC-135기는 최첨단 통신시스템이 장착되어 정찰데이터를 즉석에서 작전본부로 전송할 수 있다. 보잉747 비행노선 근처에 위치해 있어 의문이 제기됐다. 동시에 한국 여객기 선실에 불이 꺼져있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충분했다.

여행기 자체 식별도 못 했다. 지상 관제탑에 답하지 않았고, 소련 요격기 경고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당시 007기 천병인 기장은 어떤 이유에선지 내장된 3중 복제 레이더망을 설정하지 않았다. 비행 자체가 정찰목적을 띠고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객기 승무원과 지상 관제소 간 대화 내용 녹음파일이 ‘없다’는 정황으로 볼 때 운항 관련 ‘데이터’ 노출이 통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사 당일 일본주재 미 첩보국이 접수한 관제탑과 승무원 사이 마지막 오갔던 대화 내용이 무척 궁금하다. 이에 대해 당시 조지 슈츠 국무장관이 부분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과거를 학습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실수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학습 과정에서 치유된 상처를 끄집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소개
강원도민일보 북미특파원,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관훈클럽 국제보도상 수상, 한국신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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