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석칼럼] 마이삭(Maysak) 태풍과 자식(子息)
[박대석칼럼] 마이삭(Maysak) 태풍과 자식(子息)
  • 박대석 칼럼니스트, (주)예술통신 금융부문대표
  • 승인 2020.09.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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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병가, 표창장, 상속에서 누가 자유로울까?

송(宋)나라는 학문과 문화는 크게 발달했지만, 국방에 취약했다. 당시 북방에 있던 여진족이 크게 일어나 금(金)나라를 세우고 남쪽으로 압박해 들어오자, 이에 용감히 맞선 영웅이 바로 악비(岳飛)이다.

악비는 유년 시절에 집안이 가난해 많은 고생을 겪었지만, 악비의 모친은 자식에 대한 교육을 포기하지 않고 온갖 역경을 겪어내며 문무(文武)를 겸비한 훌륭한 인재로 키워냈다.

특히 금나라의 침략 앞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와 나라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고뇌하던 악비가 조금이라도 흔들릴까 염려한 모친은 아들의 등에 ‘정충보국(精忠報國 나라에 충성을 다한다)’이란 네 글자를 먹으로 새겨 악비가 충성을 다할 수 있게 가르쳤다. 자식에게 누구보다 엄격했던 악비(岳飛)의 모친이었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엄격했다. 그는 유배지에서 자주 편지를 보내 자식들에게 교육에 대하여 독려하고 때로는 혹독하게 질책하였다.

“백번 생각해보아도 집에서 공부할 의향이 없다면 온갖 일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내려와서 공부하자. 이는 단연코 결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첫째로 네 마음씨가 날로 무너지고 행동거지가 날이 갈수록 비루해지니 이곳에 와서 내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겠다.

둘째로 안목이 좁고 다급해지며 뜻과 기상이 막히고 잃어가니 이곳에 와서 내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겠다. 셋째로는 경전 공부의 수준이 거칠고 재주와 식견이 공소해졌기에 이곳에 와서 내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으리라. 조그만 사정이야 돌아보거나 아까워해서는 안 되리라”면서 큰아들을 유배지에 불러서 공부하라고 일렀다.

스티브 잡스는 리드라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졸업 파티를 위하여 호텔을 잡으려고 아르바이트 등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 또 애인과 데이트 할 정소를 물색하려 하여 애쓰는 것을 보고 스티브 잡스가 도와주려 하자 단칼에 아들은 거절한다. 자신의 인생에 아버지가 불필요하게 끼어드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한다. 영국군은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가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한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다. 그러나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섯 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된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다. 그 유래로 유럽의 귀족 자녀들은 자원하여 치열한 전투에 참여하여 많은 목숨을 잃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자식에 대하여 피해도 될 상황에 빠지게 하여 힘들게 하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남보다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교육, 좋은 직장을 누리도록 하고 싶고 위험한 군대도 피하게 하고 싶으며, 어떻게 하든지 자신들의 재산을 세금을 적게 내고 물려주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본능에 가까운 생각, 즉 인지상정(人之常情) 이다.

특히 한국은 국방의 의무에 대해서는 엄격한 나라이다.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는 2002년 아들 군대 문제로 확실시되는 당선을 놓치기도 하였다. 이른바 김대업 병풍(兵風) 사건은 김대업의 말을 인용,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에 대한 허위 주장을 보도하여 당시 지지율 1위이던 이회창 후보에 치명상을 입히고 지지율을 대폭 떨어뜨려 근소한 표 차이로 낙선하게 만든 사건이다.

법무부 장관의 아들의 군대 시절 휴가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필자 같은 범부도 수사권이 있다면 일주일이면 능히 밝힐 수 있는 정도의 일을 8개월씩이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검찰에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한편, TV 화면에 비치는 정의를 다루는 주무장관(Minister of Justice) 이전에 엄마로서의 모습을 보노라면 같은 부모로서 안타까운 심정 역시 만만치 않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재판 중인 전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식과 관련한 표창장 등 문제 역시 마찬가지로 자식에 관한 높은 교육사랑(?)의 문제가 핵심이다. 누구나 그런 위치에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나는 아니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한국경제의 주춧돌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삼성그룹은 금년 8월 기준 시가총액이 전 세계 16위이다. 자산총액이 약 880조원이고, 1년 매출액이 약 400조원에 이르며 삼성이라는 브랜드 가치만 약 104조원에 달하고 임직원이 약 31만 명이다. 이건희 회장은 긴 투병 중에 있으며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현재 경영을 맡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1일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 정거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필부들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과는 규모가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역시 자식 대물림의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군대 병가, 표창장, 상속 등 요즘 연일 방송을 뜨겁게 하는 세 사건 모두 결국 자식에 관한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우리나라도 자리 잡아야 좀 나아질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마이삭(Maysak, 캄보디아 나무) 태풍이 올라 오나보다. 창문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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