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대림칼럼]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 류경자 동서대학교 조교수
  • 승인 2020.09.15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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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 등장하는 70대 노인 김병수는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다.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는 김병수는 무서운 건 악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한다. 아무도 시간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와 같다. 점차 조여오는 시간의 압박에 김병수는 조바심이 나면서 잃어가는 기억을 붙잡고자 노트에 기록하거나 녹음을 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기억을 재구성한다.

치매에 걸린 사람은 가까운 기억부터 사라진다고 한다. 연쇄살인범 박주태에게서 딸을 지키고 싶은 김병수에게 최근 기억부터 사라지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그는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록하고 녹음한다. 그러나 소설이 후반부로 갈수록 독자들은 그 기록과 녹음 자체의 사실성을 의심하게 된다. 치매에 걸린 ‘나’(김병수)의 시선으로 서술된 이 소설을 따라 읽다 보면 그 기록들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김병수는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줍는다. 그리고 매번 기록이나 녹음을 다시 꺼낼 때마다 기억의 파편들을 짜깁기하면서 하나의 서사를 만들고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조작한다. 독자로서는 김병수의 기록과 녹음을 통한 기억이 진실한 것인가를 확인할 길이 없다. 자신이 편집한 기억을 다시 기록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5일의 마중>이 떠올랐다. 여러 번 본 영화지만 볼 때마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는 달리 이 영화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펑완위가 아닌 주변 인물인 딸 단단과 남편 루옌스의 시선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중국어 영화 제목은 ‘귀래(归来)’인데 한국어로 ‘5일의 마중’이라고 번역했다. 제목의 번역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귀래’는 말하자면 돌아온다는 뜻으로 시제를 보면 미래, 현재, 과거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한국어 번역에서 사용된 ‘마중’이라는 단어에는 돌아오기 전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그 상태를 암시한다. 그러나 마중을 가서 만나게 됐는지에 대한 그 결과는 제목에서는 알 길이 없다.

이 영화에서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아내를 위해 문화대혁명 시기 잡혀갔다가 풀려난 루옌스는 돌아온 후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에 대한 아내의 기억을 복원하고자 한다. 펑완위는 남편의 피아노 연주와 그의 뒷모습, 남편이 쓴 편지, 과거 젊었을 때의 남편 사진 등 모든 걸 기억하지만 유독 현재 남편의 얼굴만은 기억하지 못한다. 선택적 기억상실인 것이다.

펑완위가 앓고 있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은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경험이나 기억들에 대해서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나타난 증상이다. 치매는 뇌의 손상으로 인해 기억을 잃어가지만, 해리성 기억상실증은 뇌의 이상 없이 심리적 원인에서 발생하는 기억상실증이다. 해리성 기억상실증은 지식이나 비개인적인 정보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고,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는 능력도 남아 있다. 특정 기억만 잃어버린 것이다.

김병수는 딸을 지키기 위해 애써 자신의 기억을 소환하고 조작하지만, 루옌스는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는 능력이 남아 있는 아내를 위해 아내에게 새로운 기억을 주입하면서 그녀의 기억을 조작하고 편집한다. 5일 남편이 돌아온다는 편지를 받고 펑완위는 매월 5일 남편을 마중하러 간다. 그러나 그녀는 매번 남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마중이 실패로 돌아간 채 집으로 돌아온다. 결국은 재회를 못 한 채 ‘기다림’ 그 자체만 남게 되고 관객들은 끝까지 펑완위와 함께 루옌스를 마중하러 가는 루옌스를 보게 된다. 이렇게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만, 남편은 아내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고대한다.

김병수에 비해 펑완위는 ‘5일의 기다림’이라는 시간의 순환 속에 갇힌 죄수다. 그녀의 기억은 영원히 ‘5일의 마중’이라는 ‘기다림’ 속에 갇혀 있다.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기다림 속의 남편’이자 기다려야만 하는 남편인 것이다.

김병수와 펑완위의 기억 속에 똑같이 그토록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들이 있다. 김병수에게는 자신과 같은 연쇄살인범으로 추정되는 박주태의 얼굴이고, 펑완위에게는 평생 사랑했지만 돌아올 수 없는 남편의 얼굴이다. 왜 그들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할까?

김병수는 살인을 그만둔 후 아무도 해치지 않고 살아온 25년의 삶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에게 ‘진부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의 사람을 죽이는 일에 몰입했던 시간과는 전혀 비교가 안 되는 일상이다. 그는 과거 살인의 과정에서 엄청난 즐거움을 얻었다. 그가 연쇄살인을 계속하게 된 데는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살인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계속 살인을 저질렀는데 그 희망이 사라지자 살인을 멈추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김병수는 아직까지도 살인의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살인할 때의 감정이 그만큼 강렬했던 것이다.

이와 달리 펑완위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딱 두 가지다.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의 얼굴과 자신을 괴롭혔던 팡 아저씨의 얼굴이다. 그래서 펑완위는 루옌스의 얼굴에서 가끔 팡 아저씨의 얼굴을 본다. 그녀가 잊지 못하면서 또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은 바로 행복했던 기억과 괴로웠던 기억이다.

김병수가 잃어버린 기억은 무엇인가? 평범한 일상이다. 행복하지도 괴롭지도 않았던 기억이다. 그럼 펑완위가 잃어버린 기억은 무엇인가? 반대로 가장 평범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녀에게는 두 가지가 공존한다. 잊지 말아야 할 일과 잊어야 할 일. 남편과의 행복했던 기억, 그리고 재회하지 못하는 괴로운 기억이 펑완위에게는 공존한다. 팡 아저씨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남편을 빼내기 위해 기대에 부풀어 그를 찾아갔던 기억과 이를 빌미로 자신을 괴롭혔던 기억. 이 두 사람은 가장 잊지 못할 존재이지만 또 가장 잊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영원히 남편을 만날 수 없다는 두려움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루옌스가 나타났을 때 남편의 얼굴에 자신을 괴롭혔던 팡 아저씨의 얼굴이 겹치면서 수시로 그녀의 기억으로 소환된다. 그래서 펑완위의 시선에 비친 남편 루옌스는 항상 낯선 사람이면서 또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펑완위는 가장 기억해야 할 것을 잊기로 택한 것이다. 이때 해리성 기억상실은 위험한 자극, 불안한 기억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어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남편에 대한 기약 없는 기다림, 남편을 빼내기 위하여 팡 아저씨를 찾아가 그토록 노력했지만 결국은 그것을 빌미로 자신을 괴롭힌 사실. 끝끝내 희망을 보지 못한 펑완위는 해리성 기억상실이라는 기제를 통해 자신의 마음속에 남편이 결국은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심어놓은 것이다. ‘마음 속의 기다림’, 그로 인해 오히려 현실 세계에서 남편이 돌아오자 그 희망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실제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것은 기억 속에 가둬놓은 남편을 잃을까 걱정이 되어 겹겹의 보호장치를 만들어놓은 것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잊지 못하고 항상 기억하고 있는 것 또한 감정이다. 가끔 정지된 기억 속의 화면을 떠올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기쁘고 슬프고 두렵고 부끄러운 여러 감정이 그 기억 속에 섞여있다. 항상 기억에 남는 건 나의 의식을 강력하게 강타했던 일이다. 수치스러웠던 순간, 상처받았던 순간, 끝끝내 이루지 못하고 아쉬움으로 남았던 일들. 그러면서도 뇌는 그 기억들을 조금씩 조작한다. 하나의 완벽한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기억은 어디까지가 믿을 수 있는 것인가?

필자소개
류경자 동서대학교 조교수, 한국체육대학교 강사
연변대학교 중문과 학사·석사, 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
역서 『디지털기술과 신사회질서의 형성』
논문 「루쉰의 탈경계적 상상력과 치유의 글쓰기」, 「장용학 소설의 역사인식 연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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