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나는 이렇게 해외특파원이 됐다–2
[해외기고] 나는 이렇게 해외특파원이 됐다–2
  • 송광호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 승인 2020.09.17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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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동포 기자의 이민 40년 취재증언(證言)

지난 80년대 중반 내 욕심으로 한때 경제적 위기에 봉착한 적이 있다. 캐나다은행에서 빌린 3만달러 대출금 때문이다. 그때 은행 돈을 1년도 안 돼 잃은 것이다. 당시 청과 업계를 주름잡던 절친한 지인이 있었다. 그의 도·소매업체에 투자하면 곧 대박이 난다는 청사진을 믿은 것이다. 그 업계에선 제1 전문가로 인정받던 인물이다. 그에게 대출금 전부를 전달했는데 사업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는 끝내 수습이 안 되자 사업체 문을 닫고 미국으로 가버렸다. “미안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막연한 한마디를 남기고서. 그리곤 얼마 안 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참 황당했다. 결국, 나는 은행 빚과 이자를 고스란히 껴안게 됐다. 주변 지인들이 돈 번 것을 보고, 옆으로 쉽게 다른 소득을 꿈꾸다 벌어진 결과다. 내 과욕으로 빚은 실수이니 누구를 탓하랴. 이대로 영세직장의 교포 기자직을 계속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 신문사 사주와도 심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일단 신문사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그즈음 일간지 동아일보가 토론토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를 창간한 김성수씨 막내(7남)로 미 시민권자인 故 김상석 사장이 캐나다지사 개설을 준비 중이었다. 김 사장은 LA로 나를 불렀다. “곧 일간 동아일보와 동아문화센터를 오픈하는데, 문화센터부터 먼저 도와 달라”고 했다. “상당량의 한국서적들을 선적했는데, 교포사회보급을 책임져 달라”는 부탁이다. 동아일보 후원 차원에서 대량 한국 전집류 책을 보냈다는 것이다.

2. 1986년 브리타니카 영문백과사전 최고실적 수상 사진
1986년 브리타니카 영문백과사전 최고실적 수상 사진

같은 시기 우연히 토론토 시내에서 브리태니커(영문백과사전) 부사장인 마이크 리(Mike Lee)를 만났다. 내 또래의 마이크는 토론토대학 졸업 후 백과사전회사에 입사해 수석부사장이 된 패기만만한 중국인이다. 내 팔을 잡더니 부근 커피숍에 데려갔다. “지금 쉬고 있다니, 웬만하면 나 좀 도와다오. 너는 한인사회를 잘 알고, 성격도 aggressive(공격적/진취적) 하지.” “기자가 하루아침에 책 장사하라고?” “소득만 높으면 되지. 뭐를 따지나.” 그의 말을 단번에 거절 못 했다. “좀 생각해 보자.” “어쨌든 지역(district) 매니저에게 네 얘길 해 놓을 테니 언제 만나봐.” 그는 헤어지며 덧붙였다. “너는 판매훈련도 필요 없을 거야. 나중 식사나 함께하자.”

며칠 궁리 끝에 결국 책 판매 영업으로 마음을 굳혔다. 무슨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한국서적이든 영문 백과든 뭐든 부딪쳐나가기로 작정했다. 온타리오 주내 한인교회와 단체주소록, 각종 협회 등 교포명단을 수집했다. 교포신문에 전면광고를 게재하고 적극 책 선전에 나섰다. 갑자기 책 장사로 변신한 나를 두고 뒷말들이 있긴 했다. 한 선배는 면전에서 “뒷 다마(당구 용어)를 친다”며 씁쓸해했다. 이미 한인 판매원 10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업으로 파트타임 판매원들이 많았다. 내 경우 아예 풀타임 본업으로 승부를 걸었다. 퀘벡주 등 판매구역을 넓혀 밤낮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해 나는 캐나다 전역 10개주에서 최고 판매실적 1위를 차지한다. 캐나다 전국 1천여 명 세일즈맨 중 압도적 1위였다. 그해의 신인상, 최고실적 상, 각종 여행, 상품들을 몽땅 휩쓸면서 독보적 인물로 부상됐다. 한쪽에선 “레전드(전설)”라고 불렀다. 캐나다 브리태니커 역대판매 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평가받았다. 어느 한 주엔 22세트를 판매한 적도 있었다. 한 해 동안 번 돈이 한국 책 포함해 20만 달러가 넘었다. 은행 빚과 이자를 모두 청산하고 현재의 집 마련에 보탰다. 어찌 보면 역경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2. 모스크바특파원 당시 사회 환경 1993년
모스크바특파원 당시 사회 환경 1993년

책 세일즈맨을 정리하고 기자 생활로 돌아왔다. 약 1년 6개월 만이다. 조선일보 본사에서 신문을 들여와 주간지 ‘캐나다조선’을 창간했다. 교포기자는 실상 수습훈련과정이 힘들다. 기사 작성부터 스스로 깨우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매일 주요사설과 전문기사 정독 습관도 도움을 준다. 신문사 발행(겸 편집)인으로 일하면서 한편 한국 언론에도 관여했다. 수년 뒤 창설된 한국 SBS 방송통신원과 강원일보엔 수년간 ‘세계 속의 강원인’ 기획기사를 연재했다. 나중에 이 강원일보와의 인연이 모스크바 첫 해외공동특파원으로 선발되는 계기가 될 줄이야.

전두환 정권 때 언론 통폐합으로 지방(도)에 한 개 신문사만이 존재했다. 지난 1992년 한국 지방 5개 신문사(강원, 광주, 대구 매일, 대전, 부산일보)는 세계 주요 5개 도시에 공동특파원파견을 결정했다. 워싱턴DC(부산일보), 도쿄(대전일보), 파리(광주일보), 북경(대구매일신문), 모스크바(강원일보) 등 5개 도시다. 초대 간사는 대구매일신문으로 정했다. 모스크바를 맡게 된 강원일보는 사내 선발이 여의치 못했는지 나를 추천했다며 긴급히 의향을 물어왔다.

당시 나는 교포신문 일에 무척 지쳐있을 때였다. 취재와 편집, 광고, 우체국발송까지 늘 일이 쌓여있었고, 주말엔 한국식품점과 한인교회 등지에 신문 배달도 했다. 인건비 절약 때문에 남을 시킬 수 없었다. 더 나를 실망하게 하고 피곤케 한 건 교포사회 분열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인 단체는 건뜻 하면 감투싸움, 고소 건이 터졌다. 이런 사태가 빈번하니 교포취재 자체에 대한 자괴감과 회의감이 심화돼 갔다. 언론 일에 보람은커녕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2. 조선일보에서 1991년 발행해준 책
조선일보에서 1991년 발행해준 책

토론토신문일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한국 지방언론사로부턴 1992년 정식 모스크바 공동특파원발령을 받았다. 소속은 강원일보 사회2부 차장. 1981년 초 교포기자 시작 이래 11년 만에 한국기자로 변모한 것이다. 조선일보본사는 지난 91년 ‘캐나다 이민 20년, 한국인은 뛰고 있다’는 제목으로 내 책을 발행해줬다. 토론토에선 캐나다조선, 동아일보가 문을 닫고 중앙일보가 새로 등장했다.

홀로 러시아로 떠나며 맘이 착잡했다. 만 17년 전 무작정 토론토 이민행이, 이번엔 준비도 못 한 채 어설픈 모스크바행이 된 셈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토론토 교포사회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이후 북미특파원 생활이 지속적으로 이어진 이유도 있다.

1991년 12월 말 소련 붕괴 후 탄생한 러시아는 모든 사회 환경이 최악이었다. 러시아 마피아가 등장하고, 불안한 치안과 흉흉한 분위기 속에 늘 전전긍긍했다. 더욱이 언어 소통이 잘 안 되다 보니 스트레스가 날로 쌓여갔다. 인터넷도 없던 시기라 기사 송고는 팩스를 이용했다. 국제전화도 엄청나게 회선이 부족해 어느 기자든 원고송고에 무척 애를 먹던 시절이었다.

애꿎은 담배만 늘었다. 어느새 하루 1갑이 넘었다. 끽연이 계속되니 목 안이 뜨끔거리고 쉬 낫지를 않았다. 병원에선 당장 금연 않으면 암에 걸린다고 엄중 경고다. 금연을 결심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피우고 끊기를 거듭하며 약 8개월 뒤 드디어 담배로부터 해방됐다. 담배꽁초를 찾아 방 쓰레기통까지 뒤진 적도 있다. 죽기 살기 싸움에서 겨우 살아남은 것이다. 주변에선 줄담배를 피우던 내 금연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담배를 끊으면서 ‘독종’ 소리까지 들었다. 역시 고난 속의 전화위복된 결과였다.

필자소개
(사)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전 대표
(사)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현재)
(사)대한언론인회 국제교류위원회 간사(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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