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소소한 일상에서 얻는 기쁨
[해외기고] 소소한 일상에서 얻는 기쁨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09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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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은 늘 느긋하고 기분 좋은 날이 되어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좋고 한가로운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오늘처럼 가볍게 비가 흩날리는 날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가까운 보타닉 공원으로 봄맞이 산책하러 나가기도 한다. 강물 위에 떨어지며 물결무늬를 만드는 빗물의 흐름을 눈으로 따라가며 강기슭에서 풍기는 나뭇잎들의 신선한 내음을 깊이 들여 마신다. 한 주일 동안 내 안에 쌓여있었던 먼지들을 걸러내고 몸과 마음이 정결해지는 느낌이다. 아열대 나무들이 우거진 작은 숲길로 접어들며 빗물을 머금은 초록 나뭇잎들의 싱그러움을 눈에 담아보고,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향내를 가득히 들이마셔 본다.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온몸으로 깨닫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특별한 것도 많지만 특별하지 않아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나날들이다.

하이스쿨 12학년들은 지금 마지막 시험을 치며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늘길이 막혀서 자녀들의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는 유학생 부모들은 애틋한 마음을 이메일에 담아서 보내온다. 나는 부모들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크리스는 이제 작은 어른이 되어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첫 계단을 밟게 됩니다. 졸업 후에도 당분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건강하고 밝게 지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세요. 제가 부모님을 대신해서 지난 몇 년간 애썼다고 어깨를 토닥여주겠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냈다. 졸업을 축하하며 내 마음을 다해서 한 명씩 껴안아 주고 싶지만,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 하는 얄궂은 세상에 살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진다. 언제쯤 이 답답한 우울증을 훠얼~~~ 훨 날려 보낼 수 있으려나.

지난주에 주니어 학생들이 운동장 양편으로 늘어서서 12학년 졸업반 선배들이 퍼레이드를 하는데 큰 박수와 환호로 격려해주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울컥해졌다. 학생들은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십 대 시절을 보낸 학교를 떠나며 시원섭섭한 감정이 먼저 들게 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나보내는 선생님들에게는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그 속마음을 알면 좋을 텐데. 유학생회장을 맡았던 J 군이 이메일을 보냈다. “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한국 선생님이 항상 제 곁에 계셔서 큰 힘이 되었고 유학 생활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시간을 내서 선생님 꼭 찾아뵙겠습니다.”

내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환하게 번져나간다. 공립학교의 국제부서에서 십여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참으로 많은 일을 경험했다. 가슴 아린 아픔도 웃음도 번갈아서 주는 아이들이지만 여전히 어린 십 대 청소년들이기에 깊은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제아를 만났을 때는 회초리를 들고 싶을 만큼 격한 감정이 일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일조차도 결국은 내 몫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학생들에게서 받는 활력과 가르치는 즐거움이 한데 어울려서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에너지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올 한해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모가 많았던 날들이라 여겨진다. 불안감을 끌어안고 살았으며 사람과의 만남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어색한 분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가족과 나를 염려해주는 지인들이 있다는 게 고맙고, 신선한 공기와 햇살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세상을 뒤엎어버린 무서운 역병이 아직도 떠돌아다니지만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현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R U OK? 괜찮으세요?” 하며 내 이웃을 돌아보는 연대감을 가져야 할 변화의 시점에 서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제목이 <늘 괜찮다고 말하는 당신에게>(정여울 지음)이다. 프로이트나 칼 융의 심리학을 밑바탕에 깔아놓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을 말하고 있다. 저자도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받은 상처를 솔직하게 밝히며 삼십 대의 성인이 되어서야 어머니와 화해를 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늘 괜찮다”라고 말하다 보면 스스로가 내면의 상처를 입게 되고 내 안의 무언가가 치유돼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눈물을 흘리고 싶으면 울도록 내버려 두고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내 안의 힘을 스스로 길러야 한다는 충고도 해주고 있다. 작은 일상에서 상처받는 나를 안으로 움츠러들게 내버려 두지 말고 바깥으로 끌어내서 제대로 돌봐주며 치유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달해준다. 그래야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를 구원해주는 기쁨을 느끼며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니까.

“행복이 뭐 별거인가요?”라는 말처럼 내 옆에서 잠을 자는 북극곰 같은 예쁜 에스키모(사모예드 종)를 끌어안으면서 정말 편안한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준다고 생각하며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게 된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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