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칼럼] 조선후기 비석에 보이는 ‘유명(有明)조선’...반청(反淸) 의지의 산물로 봐야
[이종환칼럼] 조선후기 비석에 보이는 ‘유명(有明)조선’...반청(反淸) 의지의 산물로 봐야
  •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대표
  • 승인 2021.01.0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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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시절 ‘유청(有淸)’ 쓰지 않고 ‘유명(有明)’ 써...임진왜란에 원병 보낸 후 청나라에 망한데 대한 의리

최근 조선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묘역 안에는 유인석을 기리는 의암기념관이 있다. 묘역 내 석물 하나가 눈에 띈다. 비석이다. 분묘 왼쪽 비석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有明朝鮮毅庵柳先生之墓·유명조선의암유선생지묘’. ‘명나라 속국 조선의 의암 유선생의 묘’라는 뜻이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서인(西人), 그 가운데 주로 노론(老論) 명망가 묘소 앞 비석에서 흔히 보이는 문구다.”

조선일보에서 연재물로 싣는 ‘박종인의 땅의 역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글의 '유명(有明)'이란 부분을 보면서 본지가 월드코리안장학생들과 함께 만주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을 갔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만주 신빈현에 있는 유인석 기념원을 방문하고 이어 관전현으로 갔을 때 ‘유명조선국’이라고 쓴 또다른 비석을 만났던 것이다. 이진룡장군의 부인인 우씨부인의 비석으로, ‘유명조선국열부유인우씨지묘(有明朝鮮國烈婦孺人禹氏之墓)’라고 적은 것을 떠올린 것이다.

“비문에 ‘유명조선국’이라고 쓴 것을 만주땅에서 보다니.... 한국에는 많이 있는데, 중국에서 이런 비석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당시 함께 간 김도 세계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는 이렇게 말하면서, “유명조선국이란 명나라 제후국 조선국이라는 뜻”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조선 후기에 세운 한국의 비석들에 이렇게 쓴 것들이 많다”면서, “청나라도 망한 뒤인 1917년에 조선도 아니고 만주에 세운 우씨부인 열녀비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니 놀랍다”고 소개했다.

중국 인터넷을 찾아보면, 중국 왕조 가운데 ‘유(有)’자를 붙이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위(魏)나 오(吳), 북한(北漢), 남당(南唐)과 같은 나라는 유(有)자를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유(有)자를 붙이는 나라는 중국 천하를 통일한 왕조에만 붙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에만 붙이지, 다른 왕조에는 붙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도 유(有)자를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왕조 존속기간이 너무 짧은 게 이유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有)자를 붙이는 게 유교 전통에 의한 것이라고 보면, 진나라는 유학 관련 서적들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생매장하는 등 분서갱유를 한 탓으로 유(有)자를 붙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나 몽골족이 세운 원(元)나라도 유(有)자를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중국보다 더 큰 지역을 통일했으나 이민족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청나라는 유(有)자를 붙이는데, 만주족은 오랑캐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유학을 숭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왜 청나라 말기이자 대한제국 시기에 세운 무덤 비석에도 유청(有淸)이라고 쓰지 않고 유명(有明)이라고 했을까?

한국이 사대에 충실했다면, 왜 청나라 시절 세운 비석들에는 유청(有淸)이라고 새기는 게 당연했을 텐데, 없어진 명나라를 들먹이며 유명(有明)조선국이라고 했을까?

사실 조선에서 ‘유명(有明)’을 강조한 것은 명나라가 임진왜란에 원병을 보낸 것을 계기로 해서 명나라가 망해버린 것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명나라가 무리해서 원병을 파견해 조선을 돕다보니 국력이 낭비돼 나라가 망해버린 것이다.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으로서는 명나라의 은혜가 뼈에 사무쳤고, 명나라를 기억하는 게 의리였다는 해석이다.

게다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조선은 병자호란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청나라를 오랑캐로 멸시해온 조선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치욕이자 수모였다. 그후 조선 사대부들은 청에 대한 분개의 뜻도 담아, 망한 명나라를 추모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후기 비석들에 보이는 '유명조선국'이 글귀는 ‘명나라의 속국 조선’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조선을 돕다가 망해버린 명나라에 성리학적 의리와 조선을 침략했던 청나라에 대한 반청(反淸)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조선은 청나라 속국이 아니다'는 뜻을 담았다는 것이다.

중국 인터넷 바이두에 나온 해석
중국 인터넷 바이두에 나온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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