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時論] 부산고 3.24시위를 재조명한다
[전대열時論] 부산고 3.24시위를 재조명한다
  • 전대열(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 승인 2021.03.2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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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전대열(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자유 민주 정의는 민주주의 국가의 상징이다. 겉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국호에 아예 민주주의를 못 박아 놓은 나라도 있다. 얼마나 민주주의에 목말랐으면 나라 이름에 민주주의를 집어넣었을까 연민의 정이 우러나지만 그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를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지 여부는 정확하게 따져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게 북한이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긴 국호를 사용한다. 이름으로만 보면 그렇게 훌륭할 수가 없다.

백성이 주인이 되고 왕이 아닌 인민이 통치하는 국가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했으니 이름으로서야 더할 나위 없이 멋지다. 겉으로는 그럴듯한데 속도 그럴까. 우리는 북한의 실상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들은 1948년 9월9일 김일성에 의해서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울린 이후 지금까지 아들 손자에 이르는 3대 세습으로 70년이 넘도록 김씨 왕국을 구축하고 있다. 형식상 인민회의라는 국회(?)도 존재하고 투표도 하지만 흑백투표함으로 오직 찬반만 묻는다. 반대표는 죽으러 가는 길이니 누가 감히 어깃장을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한 대부분의 나라가 빈곤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집권자의 독재와 부패에 시달리고 있지만 국호에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는 많지 않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에 ‘민주공화국’이라고 만방에 외치고 있어 북한과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집권자 이승만은 국부(國父)를 자처하며 초장부터 권위주의로 국민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와는 아예 담을 쌓았다. 정치파동, 사사오입 개헌, 3선개헌 등 영구집권을 위한 초석을 깔아놓고 노골적으로 부정선거에 돌입하여 국민들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 없는 권력놀음에 흠뻑 빠졌다. 그것이 3.15부정선거다.

그에 앞서 3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후보 신익희가 전주유세에 나섰다가 호남선 열차에서 심장마비로 서거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러나 장면이 자유당 이기붕을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하여 한 가닥 희망을 남겼다. 4년 후 다시 선거가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도 야당 조병옥 후보가 암으로 서거하여 이승만의 당선은 확정되었지만 부통령선거에 모든 힘이 쏟아졌다.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승계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자유당은 치밀한 부정선거 기획으로 이기붕당선을 위하여 온갖 못된 짓을 다 꾸몄으며 국민의 저항은 커져만 갔다. 당시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그리고 월간 사상계는 꾸준히 자유당의 만행과 부정부패를 규탄하였으며 경향신문은 폐간되어 문을 닫았다. 이러한 행패에 가장 민감하게 저항한 것은 고교생들이었다. 1960년 2월28일 야당유세가 열릴 예정인 대구에서는 일요일임에도 등교령이 내려졌다. 유세장 참석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대구의 다수고교생들은 이에 맞서 감연히 시위에 나섰으며 수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전국의 고교들이 들먹거렸다. 3월8일 대전에서 고교데모가 일어났다. 3월15일은 문제의 부정선거 날이다. 전국의 민주당집회가 일제히 조직적으로 열렸다. 마산의 궐기는 그 규모면에서 타지를 압도했다. 고등학생들이 앞장선 마산시위는 걷잡을 수 없게끔 커지면서 경찰의 발포로 7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부상자가 생겼다. 광주에서도 고교생들이 합세한 시위가 벌어졌고 전주 청주 충주등지에서도 산발적인 학생 시민데모가 일어났다. 3월17일에는 서울 성남고교생들이 시위를 주동했다.

부산고교 학생들도 3월17일에 간부 9명이 초량동 신성범의 집에서 데모하기로 합의하고 다른 학교와 제휴할 방법을 찾았다. 학생회장 김승은 중앙연락책임을 맡고 호소문은 이의남, 동성고 부산상고 부산공고는 계호일, 경공 부사는김종벽, 남성 경여고 경남고는 박현용, 해동은 신성범, 동아는 박영작, 경상 부산여고는 변종우가 연락책임을 나눠 맡았다. 이들은 타교생들과 함께 몇 차례 더 회합을 갖고 거사날짜를 3월25일로 잡았다가 경찰정보를 염려하여 하루 앞당겨 24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학교가 떨어져나가는 진통도 겪었다. 24일 디데이는 열렸다. 교실에서 결의문을 낭독한 후 세 갈래로 데모대는 시위에 돌입했다. 제1진은 부산진역전에서 경찰의 제지를 받았고, 제2진은 경남여고 방면으로, 제3진은 서면 쪽으로 전진했다. 타교생들은 학교측의 강경제지로 나서지 못했다. 이 날 시위 장면은 부산에서의 첫 번째 거사였기 때문에 중앙지를 비롯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마산3.15의거를 조사하기 위해서 내려왔던 국회조사단이 학생들의 오해로 돌팔매를 맞는 해프닝도 있었다. 부산고 학생들의 3.24시위는 준비과정의 치밀함과 규모면에서 전국을 자극했으며 그 뒤 전북대 4.4시위와 고려대 4.18시위로 번지며 4.19혁명의 전초전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산고시위는 4.19역사에 길이 빛나는 의거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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