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생기사귀
[이영승의 붓을 따라] 생기사귀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1.04.01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 중 하나가 말과 언어의 사용이라고 한다. 옛사람들이 남긴 말 중에서 현재까지 귀중하게 사용되는 말을 성어(成語)라 하며, 그중에서 옛날 실제로 있었던 일에서 유래된 것을 고사성어(故事成語)라고 한다. 고사성어에는 선인들의 지혜와 기지가 가득하여 그 의미와 유래를 알고 사용하면 일상의 언어생활을 풍부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참으로 유익하다.

고사성어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거의가 사자성어(四字成語)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것만도 무려 270여 가지나 되며 주로 중국의 역사·고전·시가(詩歌) 등에서 나온 말들로 70여 문헌과 200명 정도의 인물이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서양의 고사성어 또한 신화나 종교에서 나온 말이 많으며 이 중에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와 같이 금언이나 격언으로 높임을 받는 것들도 있다.

그 많은 성어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생기사귀(生寄死歸)를 들고 싶다. 이 네 글자는 처음 듣는 순간부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으며 지금까지도 뇌리 속 깊이 잠재되어 있다. 생기사귀의 사전적 의미는 ‘이생의 삶은 잠시요 죽음이란 본래(本來)로 돌아가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내 나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생의 삶은 영원한 생명의 바다에서 이탈해 나온 순간이며, 생과 사는 달걀에서 닭이 부화하는 것과 같아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죽는다는 것은 내 본래로 돌아가는 것이니 결코 두려워할 바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매일 같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를 스포츠 중계하듯 발표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참으로 나약하고 허망한 것이 사람의 목숨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만약 내가 어느 날 이생을 마감하고 죽음 앞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 불안과 두려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고심해본 적이 있다. 누군가가 “평생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독실한 종교적 믿음도 없으니 “하나님, 저를 거두어주소서”라든가 “부처님께 귀의하나이다”하고 의지할 곳도 없는 형편이다.

물론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이 다 같지는 않다. 불의의 사고로 한순간에 절명하는 경우도 있고, 시름시름 장기간 앓다가 운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전자는 불안할 시간도 없겠으나 후자의 경우는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생(來生)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천당을 갈 수 있을 정도로 선업(善業)을 쌓지 못한 것 같으니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그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는 대안을 하나 찾았다. 다름 아니라 그동안 내 뇌리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생기사귀 네 자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절박하고 불안한 상황에 직면해 ‘생기사귀’를 반복 뇌면서 ‘내 본래로 돌아간다’는 의미에 몰입한다면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평안하게 요단강을 건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머리에 떠올랐다. 비록 종교적 믿음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와 같은 무아의 경지로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찾았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서경, 홍범 편⌟에 인생의 오복(五福)으로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과 더불어 고종명(考終命)을 들고 있다. 여기서 고종명은 명대로 살다가 객지가 아닌 집에서 편안하게 죽는다는 뜻이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삶의 마무리를 이토록 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에만 몰두했지 어떻게 마감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은 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살았다. 그 언젠가를 위해서 생기사귀 네 자를 가슴속에 더 소중히 간직하리라.

* 생기사귀(生寄死歸)의 출전(出典): 회남자(淮南子)
- 회남자(淮南子):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책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 (한신잠실코아)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