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재롱이 똘 장군
[Essay Garden] 재롱이 똘 장군
  •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21.04.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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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검둥이와 누렁이가 왔다. 가든 그로브에 사는 동생은 개를 좋아하지만 세를 들어 사니 종종 한국인들이 포기하는 개들을 데려와 우리에게 기르라고 했다. 16년 전 이 녀석이 우리가족에게 왔을 때의 이름은 이쁜이었다. 아니 사내 녀석 이름이? 마침 고국에서 잠시 와 있던 딸아이가 또 한 번 좋은 일을 하시면 어떻겠느냐며 나에게 사정했다. 왜냐하면 3년 전, 간질병을 앓아 매일 약을 먹이며 키웠던 라사압소 종인 눈망울이 큰 미녀, 쿠키가 떠나고 모처럼 나는 자유시간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와 적응상태를 보려고 거실에서 두 마리랑 장난치며 놀던 남편은 뜻밖에 다 기르면 좋겠다고 했다. 강아지를 돌보는 일은 나의 일인데, 딸이 통사정하여 할 수 없이 나도 훌쩍거리며 녀석을 내 품안으로 맞이했다. 애교장이 검둥이는 이웃에게 드리고, 나는 이빨이 날카롭게 생긴 녀석이 혹시 제명을 못살고 갈까봐 누렁이를 택했다. 얼마 전 이웃의 개가 주인을 물었다고 주사를 맞고 죽었던 이야기가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도사견도 아니고 영리한 골든 리트리버가 잠깐의 실수로 주인을 물었을 텐데, 까다로운 법 때문에 개가 죽게 된 것이 난 측은했다.

한번은 아침에 깨어나 보니 인형 같은 조그마한 강아지가 내 베개를 나란히 베고 옆으로 누워있지 않는가. 놀랍고, 어이가 없었다. 또 화장실까지 따라와 내 무릎 위로 훌쩍 뛰어 올라와 앉았다. 한시도 사람 곁을 떠나지 않았다. 돌아보니 오래전 한국 정부의 산아제한으로 아기를 더 낳지 않았는데, 혹시 이 녀석이 내 자식으로 환생했나. 묘한 인연이다. 지난날 휴가 때 나타나 다시 떠나버리는 딸이 자신을 입양해준 은혜를 아는지, 목소리를 들으려고 전화기로 매번 달려오는 것도 신기했다.

가지가지 모양으로 귀를 세워 우리말에 기우리는 모습이며. 훈련시킨 대로 악수하자, 딩굴어라, 손바닥을 마주치자, 댄스하자 등등 묘기도 잘 부렸다. 함께 웃다보니 스트레스가 확 날아갔다. 손님들에게도 웃음보따리 선물했다. 꼬리뿐만이 아니라 슬프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도 자기감정을 말해준다. 자기의사가 뚜렷해 가끔 사나움으로 대어들 대면 누가 주인인지 모를 정도이다. 다만 사회성이 부족해 다른 개들과는 으르렁대는 게 골치이다.

한 살박이 때다. 내가 첫 번째 수필집을 준비하느라 컴퓨터 글 작업 하는 동안엔 방석의 모서리를 갉아서, 등에 업고 키웠다. 이빨이 가려워 품에 안고 있는 동안도 내 웃옷 단추를 박살내곤 했다. 산책을 가자고 하면 벌써 현관으로 가 목줄을 메라며 재촉한다. 어릴 적부터 시간을 맞추어 자주 데리고 나갔더니 큰 것은 앞문으로, 작은 것은 뒷문 앞으로 가 말해준다. 멀리 산책할수록 두 번째 세 번째 볼일을 보니 대장 청소도 된다. 배설물의 상태로 나는 건강도 관찰하며 음식을 준비한다. 계란 크기보다도 작은 두뇌이건만, 그의 사고력은 대단하다. 절대로 주인에게 미움 받을 짓은 안한다. 외출 시에 데리고 가지 않는다고 지난번 쿠기처럼 남편의 방에다 똥을 싸는 화풀이도 안했다. 자기 방석이 따끈해질 정도로 망부석이 되어 대문만 바라보며 외출나간 우리를 기다리는 충신이다. 내 바지자락을 물어서라도 무엇인가 의사표시를 했다. 밥을 먹을 때는 한 개 한 개 씹어 먹는 우리 양반 강아지.

여러 마리를 키워보니 개의 지능지수도 사람처럼 각각이다. 집안일을 하는 나를 졸졸 따라다녀서인지 다음에 내가 가서 앉을 장소를 예견할 정도이다. 짖어대는 늠름함과 우렁찬 목소리가 좋아 나는 똘 장군이라고 부른다. 길에 나가면 몸집에 비해 귀가 덜렁하게 커서 사람들은 당나귀의 귀 같다며 하하 웃는다. 대화를 자주하는 내 이웃의 집들을 강아지는 다 기억했다. 힘든 일은 돌아가신 분들의 집 앞에서 한동안 머뭇거리며 정든 이웃을 강아지랑 함께 그리워하는 일이다. 이별은 항상 슬프다.

젊을 때는 발바닥이 벗겨질 정도로 테니스장에서 우리랑 뛰었는데, 이젠 한눈이 백내장이니 장난감도 소용없다. 이빨도 하나둘 흔들거린다. 생로병사의 길을 가는 인간과 다를 게 없다. 지난해 겨울 괴상한 기침을 해서 코로나 감기가 슬며시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입맛을 잃어가니 나는 생강과 레몬 꿀물로 정성들인다. 지혜로운 노견을 모시면서 강청화 스님께서 대부분 아버지가 죽어 개가 되어 온다는 말씀을 그냥 흘릴 수가 없다. 개를 기르며 나는 우리가 먹는 동물의 살덩이에 연민을 보낼 줄 아는 사람도 되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서로 인연을 잘 만나면 상팔자의 복이 터진다. 호령하던 남편의 큰소리를 무서워했는데 지금은 무릎에서 애교를 부린다. 이런 사랑의 보약으로 똘장군은 17살에 진입했다.

컴퓨터라는 괴물의 빅테크 주인들이 언론을 검열하며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던 1월. 정말 슬프다 세상이. 정의가 사라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우울했던 경자년, 2020년을 우리 강아지에게나마 위안을 받으며 새 봄을 맞이했다. 이웃집 개처럼 기저귀를 차거나 암이랑 치매도 없이 건강한 희망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우리 사랑, 이 세상에 절대로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배우면서. 

필자소개
경북 사범대 화학과 졸업
월간 ‘피플 오브 샌디에이고’ 주필 역임,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 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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