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법치와 덕치
[대림칼럼] 법치와 덕치
  • 우상렬 연변대학교 교수
  • 승인 2021.04.3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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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로 오면 올수록 법치가 더 고양되는 듯하다. 점점 더 법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이 되는 듯하다. 우리 중국 같은 경우를 보면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며 법치건설을 다그치고 있다. 따라서 법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일단 법치 자체의 공정성과 합리성이 문제가 될 때가 많다. 중국 고대 공자의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무섭다”는 한탄이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사실 법치란 중세기 봉건 말기 자산계급들이 역사에 등장하면서 봉건적인 등급제에 의한 무법천지를 겨냥하고 자신들의 이익관철을 위해 추구해온 것이다. 자산계급들은 진실로 법치면 다 되는 줄로 알았다.

1789년 프랑스 자산계급혁명 때 내건 슬로건 자유, 민주, 박애를 주요 내용으로 한 인권은 훗날 자산계급 법치의 바탕이 됐다. 그러나 원시자본축적단계의 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아름다운 약속을 배반하고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대가 위고는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에서 바로 이것을 고발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먹고살기 위해 생계형으로 빵 한 조각을 훔쳤는데 법은 인정사정없이 처벌을 가한다. 그래 이 아이에게 남는 것은 사회에 대한 적개심이고 보복심이다. 이 아이는 어른이 돼 출옥하게 되는데 정말 적개심과 보복심에 불탄다. 그런데 결국 그는 신부의 사랑에 의해 감화돼 그런 적개심과 보복심을 다 떨쳐버리고 사랑을 베푸는 천사가 된다.

한 사람을 만드는 데는 가혹한 법이 아니고 사랑이라는 것이다. 현 단계 아마도 미국이 세계인구의 전시장으로서 이른바 법이 가장 세밀하게 발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범죄율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고 한다. 오늘날 코로나 사태 후 아시아인을 향한 범죄가 심심찮게 발생하지 않던가. 현실적으로 우리 주변에 법적 처벌을 받아 감옥행을 한 친구들을 보아도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와서 별로 개과천선한 감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더 독하게 변한 감을 준다. 결론적으로 법치에 대해 심한 회의를 느끼게 한다.

그럼 덕치를 좀 보자. 물론 여기서 말하는 덕치는 봉건 임금의 인정(仁政)에 기초하여 덕을 베푸는 덕치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적 의미에서 인정을 베푸는 다스림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논리가 많이 통한다. 덕치는 긍정적인 인간성, 즉 인간은 착하다는 성선설에 기초하여 인간을 충분히 믿는다. 그래서 설복교육이 중심이다.

도리를 설명하여 깨닫게 하고 정감적으로 감복되게 한다. 그것은 내심으로부터 감화되고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누가 보나 안 보나, 언제 어디서나 성심성의껏 사람이 할 도리를 다해 나가는 것이다. 덕치는 인정사정을 본다. 생계형 범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처리하게 돼 있다. 그리고 건강상황으로 인한 보석 출옥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불기소 처리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여하튼 죄인에 대한 모든 인도주의적인 처사는 이런 덕치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정책으로 많이 추진된 ‘인간을 기본으로 하’는 슬로건도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덕치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준거를 상실한 체 고무줄 튕기기의 인치(人治)가 되기에 십상이다. 이런 인치는 장관 의지나 기분에 따라 놀아날 때가 많다. 그리고 인위적인 ‘엄하게 다스리는 기간(嚴打)’ 같은 캠페인 형식으로 열을 올려 도를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법치의식이 희박한 극좌정치노선시기에 중국에서 이런 형식의 인치가 많이 진행됐다.

전통적으로 볼 때 서양에서는 법치를 많이 강조해왔다.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악법도 법이라는 명언은 바로 법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한국 같은 동양에서는 유교사상의 인정에 기초한 덕치를 많이 강조해왔다. 중국에서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나라가 법치의 실패를 보여주면서 인정, 덕치는 더 강조돼 왔다. 그런데 법치도 좋고 덕치도 좋고 그것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법치와 덕치는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법치와 덕치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의 변증법적 관계로 완미한 인간세상의 질서를 이루기 때문이다. 인간은 악한 존재라는 성악설에 기초한 외재적인 강제성을 띤 법치와 인간은 착한 존재라는 성선설에 기초한 자율적인 유연성을 띤 덕치와 결합돼야 한다. 이럴 때만이 법치와 덕치는 자체의 역기능을 지양하고 순기능을 효과적인 윈윈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법치가 아버지, 덕치가 어머니인 만큼 결합될 때에만이 전반 사회가 한 가정처럼 돌아가며 이상적인 경지를 이루니 말이다. 이로부터 우리의 법관들은 재량권을 행사할 때도 이런 덕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한 죄인에 대해 그 죄는 미워할 수 있어도 그 사람에 대해서는 미워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런 법치와 덕치의 변증법적 관계 때문이다.

우리는 법치와 덕치의 변증법적 통일도 추구해야 하겠지만 일단 법치보다는 덕치를 더 지향해야 한다. 그것은 덕치가 매개 사람의 자율성에 바탕하면서 자각적으로 인간의 착한 인간성에 따라 살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놓고 볼 때 덕치는 법치보다 한 수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세상에 법치보다 덕치가 고양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오직 이럴 때 이 세상은 더 인간적인 살맛이 난다. 우리가 이른바 자주 말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사실 덕치에서 차원에서 노니는 사람들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은 덕치의 덕이 몸에 베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고도 즐겁게 이 덕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소개
연변대학조한문학원 비교문학연구소 소장‧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연변작가협회 이사. 재한동포문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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