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크리스마스가 있다면 한국에서는 부처님 탄생을 축하하는 불교행사로서 연등회가 있다. 등불을 켜고 불자들이 행진하면서, 가족과 친척, 이웃과 나라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연등회는 6세기 신라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진흥왕 12년(서기 551년) 봄에 서라벌에서 가장 큰 절이었던 황룡사에서 열렸는데, 이는 겨울에 열리는 팔관회와 쌍벽을 이루는 거국적인 행사였다. 팔관회 역시 처음에는 불교행사로 시작되었지만, 고려시대로 내려오면서 토속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무속 신앙적인 성격이 더해졌다.
봄밤에 여러 사람이 환한 등불을 들고 행진하는 연등회는 자연스럽게 젊은 남녀가 만나는 축제이기도 했는데, 여기서 눈이 맞아 남녀가 어울리는 스토리 중 하나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현과 호랑이’ 이야기다. 신라 원성왕 때의 화랑 김현이 흥륜사라는 절에서 탑을 둘러싸고 도는 탑돌이를 했는데, 문득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나 같이 탑을 돌았고, 그러다 보니 둘은 연인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여인은 사람이 아니라 호랑이였는데, 김현의 출셋길을 열어주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해 김현으로 하여금 “호랑이를 잡아 백성을 살린 영웅”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그 여인이 정말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처럼 무서운 도적이거나 귀족세력의 일원이었다고 해석한다.
통일신라에 이어 불교국가 고려에서도 연등회를 중요한 국가행사로 삼았는데, 태조 왕건의 유훈인 ‘훈요 10조’에도 연등회와 팔관회를 계속 이어가라는 당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제6대 성종 때, 유학자 최승로가‘시무 28조’를 올려 연등회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연등과 팔관으로 백성을 무리하게 동원하고, 그 노역을 심하게 시키니, 이를 줄여 백성이 힘을 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예산과 강제적 인력 동원이 컸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잠시 폐지되기도 했지만 8대 현종 때 다시 부활하였다. 현종 이후 『고려사』에 나타난 연등행사 기록은 모두 104번이나 된다.
일반에서뿐 아니라 궁중에서도 연등회가 열렸다. 고려 말 공민왕 때는 도성의 어린이들이 연등을 만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행사가 있기 한 달 전부터 종이를 오려 대나무에 깃발을 만들어 달고 도성 이곳저곳을 돌며 쌀을 구하러 다녔다고 한다. 공민왕도 두 번이나 어린이들에게 쌀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일을 ‘호기풍속’이라 하는데, 서양에서 할로윈(Halloween. 10월31일) 때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이나 과자를 달라는 풍속과 비슷하다.
고려가 무너지고 유교국가인 조선이 들어서면서 팔관회는 폐지됐고 연등회 역시 규모가 줄어들었다.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는“예전에 번성하던 것과 같지는 않다”고 되어있다. 물과 육지에 사는 수많은 영(靈)을 공양하는 의식인 ‘수륙재’가 연등회를 계승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19세기 말에 쓰여진 『임하필기』에는 연등회 때의 호기풍속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연등회의 전통은 1955년 서울 조계사 주변에서 제등행렬을 하면서 다시 이어지더니, 1996년부터 그 연등행렬 규모가 커지고, 여기에 여러 행사가 더해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봄철의 축제로 거듭났다. 2012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으며, 더 나아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예정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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