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해외기고]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10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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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시기를 지내는 이 계절은 경건한 마음이 들 만큼 투명한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인다. 파란색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떠 있는 풍경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을 설레게 하며 신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손가락 하나 뻗어서 그 푸름을 툭하니 찔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사는 이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아름다운 호주의 자연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매년 부활시기가 되면 낯선 곳으로 찾아가고 싶은 방랑벽이 생긴다.

역병이 돌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외국의 어느 낯선 거리를 걸어 다니며 새롭게 접하는 문화 체험에 감동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문화는 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며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런 설렘은 삶의 지혜와 내게 다가오는 또 다른 시간을 맡기 위한 준비를 시켜주는 힘이 되어준다. 여행지의 새로운 장소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늘 신비롭고 신선하며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새로운 체험을 찾아 나서는 여행은 낯선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인생의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한동안 하늘길이 막혀있으니 해외여행은 꿈처럼 그리워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름대로 부딪히는 새로운 문화체험은 지역사회 내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민족들로 이루어진 이민사회인만큼 각 커뮤니티에서 벌이는 축제에 참석하며 떠나지 못하는 여행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면 어떨까 싶다. 호주에서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런 것을 문화적인 차이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나의 개인적인 성격 탓이라고 해야 할지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나의 친한 호주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은 반가움에 나를 끌어안으며 뺨에 입을 맞춘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 역병으로 인해서 그런 강한 반가움의 표현을 절제하고는 있다. 난 지금껏 한 번도 호주친구들의 뺨에 입을 맞추는 인사를 해본 적이 없다. 적응이 잘 안 되는 애정표현을 되돌려 해주기엔 낯선 문화에 익숙지 않은 성장 배경의 탓이라고 변명하면 될는지.

또 하나의 낯선 문화, 다른 나라의 전통음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경험이 있다. 나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을 맛보고 싶어서 맛집 투어를 즐기는 편이다. 오래전에 딸과 함께 정통인디언 식당에 간 적이 있다. 강한 카레 냄새를 풍기며 노란색의 긴 쌀밥이 멋진 접시에 담겨 나왔다. 식당에서 수저를 제공해주지 않는 식사를 받아본 적은 아마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식사를 시작한 식객들은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밥을 꾹꾹 눌러서 둥글게 만들어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리고는 열 손가락을 쪼~옥 쪽 소리 나게 빨아먹는데 나의 식욕은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각 나라의 음식문화에는 그 나름대로 먹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는 되었지만 제대로 따라 하지는 못했다. 세련되지 못했던 낯선 문화 속의 식사여행을 어설프게 경험해본 일로 기억하고 있다.

지난 주말, 투움바(Toowoomba)에 하루 여행을 다녀왔다. 브리즈번에서 서쪽으로 13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9월이 되면 꽃 축제가 열리는 전원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아침 일찍 출발할 때 따뜻했던 기온이 2시간을 조금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갔을 뿐인데 스웨터를 걸칠 만큼 쌀쌀한 날씨를 보여주었다. 지리학적으로 투움바는 분지지역이라서 계절별 기온 차가 심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그 집 가족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집주인은 전직변호사이며 은퇴 후에는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보였다. 가벼운 점심 모임이었는데 이혼한 전부인과 재혼한 현재의 부인 그리고 자녀들이 함께 있어서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불편한 자리였다. 성장한 자녀들은 새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편안한 일상의 가족처럼 친숙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인 가정의 배경이라면 과연 그런 만남이 가능하기는 했을까. 아직도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한국아줌마라서 그런 것인지 그런 분위기에 편하게 적응이 되지는 않았다. 나의 갈등은 식사를 하는 동안 가족 분위기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변화되어가는 현대 가족사회의 한 단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겠지만 적응을 하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플로마 과정의 언어과목 교과과정에는 5가지 핵심토픽이 있는데 그중에 ‘글로벌 이슈’라는 주제가 있다. 거기에는 기후변화, 문화와 예술, 자연환경, 인종차별 등 다양한 소주제들이 포함된다. 글로벌 이슈는 현대인들에게 직면한 심각한 현실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주제 중의 하나로 문화와 관련된 주제로 학생과 토론을 해보았다. “한국인으로서 다른 문화권에 사는 것이 우리들의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요?”

12학년인 한 여학생의 답변이다. “우리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호주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으며, 문화적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민족, 다문화 사회인 호주에서 한국커뮤니티도 역시 한 그룹에 속하지만 다른 공동체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민족들의 문화를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나가 되는 공동체, 즉 조화로운 다민족 공동체를 이루어야 민족의식이 아닌 애국심이 성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바로 그런 점이 저의 세계관에 미친 영향이 아닐까요?”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으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의 답을 제대로 이끌어낸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의문에 빠져든다. 인간의 잔인함이 자연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반격의 서막을 올리는 코비드 세상이 되어서 그런 것일까. 미래의 세상을 예측하기 힘든 사회에서 익숙하든, 익숙하지 않던 전통문화라는 말이 과연 살아남을 수는 있을는지 의구심마저 생기는 요즘의 나날들이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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