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④] 아프리카 개발협력에 마케팅을 더하다 – 김용빈 개발마케팅연구소장
[아프로④] 아프리카 개발협력에 마케팅을 더하다 – 김용빈 개발마케팅연구소장
  • 김용빈 개발마케팅연구소장
  • 승인 2021.05.2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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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개발마케팅연구소’의 김용빈 소장은 현재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 기관과 민간기업을 위한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십 수 년간 대기업에서 일하며 아프리카 국가와 지역에서 건설, 토목 외에도 농축수산업, 전자정부 등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고, 유상원조 실무 경험을 시작으로 국제개발협력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처럼 아프리카 다양한 지역에서 갈고 닦은 비즈니스 경력과 민관산학을 아우르는 정보망, 실무와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을 보유한 개발마케팅연구소의 김용빈 소장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개발협력사업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해결사다.

UN평화유지군으로 맺은 첫 인연, 앙골라

내 인생의 항로가 아프리카로 향한 것은 지난 1996년 국방일보에 실린 한 공고 덕이었다. ‘앙골라 파견 UN평화유지군 모집.’ 앙골라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포르투갈어를 쓰는 5개 나라 중 하나다. 대학에서 포르투갈어를 전공한 나에게 앙골라 파병은 하늘이 준 기회처럼 보였다. ‘드디어 어학연수를 갈 수 있겠구나.’ 한창 내전 중이었던 앙골라로 향했던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생전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땅에, 그것도 전쟁터 한복판으로 들어가는데도 어쩜 그리 단순했을까 싶다. 게다가 절실하기까지 했다. 아직 대위가 아니라 응시자격이 없다는 육군본부 담당 장교에게 전화를 걸어 애원하기까지 한 끝에 결국 7대 1의 경쟁을 뚫고 앙골라로 향했다. 오로지 어학연수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앙골라 땅을 밟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선입견이 자리 잡을 틈이 없었다.

부대원 198명 가운데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는 통역장교로서,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내가 소속된 공병부대의 주요 업무는 전쟁으로 파괴된 교량과 도로를 재건하는 일이었다. 어디를 가나 똑같이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초원이 펼쳐졌지만, 곳곳에 오랜 기간 이어진 전쟁의 흔적이 숨어 있었다. 우리 부대는 반군과 정부군의 지역을 오가며 지뢰를 제거하고 무너진 케베(Queve) 강 다리 등 6개의 교량을 재건했다.

이때 난생 처음 비정부기구(NGO)라는 존재를 알게 됐다. 완공된 케베강 교량의 개통식에는 해당 지역의 정부군과 반군 수장이 모두 참석했다. 삼엄한 경비 속에서 통역을 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땀이 날 정도다. UN군과 정부군, 반군, NGO, 정부부처를 오가며 커뮤니케이션하는 통역장교의 특성상 고유 업무 외에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바로 부대에서 부족한 물자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콘크리트용 자갈이 필요한 때에는 석산과 분쇄기만 보유한 채 발파능력이 없는 적십자사와 서로 가진 자원을 협력해 해결했고, 취사장에서 사용하는 LPG는 앙골라의 국영석유회사 소낭골(Sonangol)과의 거래를 통해 파견 기간 내내 무상 지원을 얻어냈다. 아마도 전시라는 특수 상황이라 가능했던 일들이었겠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수요와 공급을 파악해 사업을 시작하는 방식을 깨닫게 한 기회였다.

영업을 연구하는 영업연구자, 연구를 영업하는 연구영업자

2000년 삼성물산에 입사하며, 아프리카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가 됐다. 약 십 년간 많게는 일 년에 3분의 2가량을 아프리카에서 보냈으니 말이다. 삼성물산 입사 전에는 다른 기업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어느 날 삼성물산이 앙골라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는 신문기사를 접한 나는 직접 홈페이지를 찾아 웹마스터 이메일로 앙골라에서의 통역장교 경험과 경영대학원에서 쓴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 관련 논문 등을 언급하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낸 지 2시간 만에 만나자는 답변이 왔고 나는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내가 소속된 프로젝트 사업부는 해외에서 수주를 하거나 투자할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부서였다. 건설, 정유공장, 가스 충전소, 통신라인, 발전소 등 주로 인프라 사업 관련 프로젝트가 많았다. 문제는 내가 담당한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들이 돈이 없다는 것이다. 사업의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때 유럽 국가들이나 일본이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봤고, 대부분 차관을 이용한 유상원조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계기로 유상원조 사업개발에 눈을 돌렸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개발협력 일을 시작하게 된다.

회사에서 내 별명은 ‘영업 연구직’이었다. 항상 선례가 없던 일을 만드는 바람에 영업을 연구하듯이 한다고 동료들이 나를 이렇게 불렀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도전하고 싶었던 사업 분야는 ‘농축산업’이었다. 아프리카는 아직도 사실상 기아가 존재하는 대륙이다. 그곳 사람들이 원조에 기대지 않고 옥수수와 닭고기, 돼지고기, 생선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농업과 관련한 사업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 앙골라 면화 지대를 위한 관계수로 공사를 수주했을 때다. 한국에서 토목공사 팀을 불러 설계를 진행했는데, 공사를 진행하기 바로 직전 설계가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토목공사 팀이 현지의 토질과 생산 작물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농업기술자를 알게 되어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무사히 공사가 진행됐지만, 사업 실패로 이어질 뻔한 이 경험은 내게 뼈아픈 깨우침을 주었다.

결국 사업 분야에 있어 나 자신이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양계사업을 현대화하는 ‘육계계열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나는 꼬박 6개월간 공부에 매진했다. 사업성도 높았고 준비한 대로만 추진하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본사의 반대에 부딪혔다. 우리나라 유상원조사업 가운데 아직까지 축산사업을 한 사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업타당성검토 보고서를 작성할 외부 축산 컨설턴트를 고용할 예산을 주지 않았다.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마침 한국수출입은행에 사업준비지원(PPA) 제도가 생겼고, 그 제도를 활용해 700억짜리 육계계열화 사업을 추진했다. 보통 3~5년 정도 걸리는 사업개발 기간도 1년 2개월 만에 끝냈다.

물론 아프리카에서의 사업이 언제나 승승장구였던 것만은 아니다. 비즈니스 초반에 나를 애먹인 것은 말과 행동이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의 태도였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No Problem”이다. 눈에 문제가 떡하니 보이는 데도 말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나를 속였다고 생각해 화가 났다. 그러나 차츰 경험이 쌓이면서 어떤 지역의 사고방식과 일하는 시스템, 정치, 종교, 문화적 배경을 종합적으로 보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내일까지(tomorrow)’라는 기한은 ‘영원히(forever)’ 오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즈음 약속과 말이 아닌 상황을 통해 이해하는 노하우도 생겼다. 한편, 사업 수행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외교부 등 다양한 정부 부처들과 정보를 교류하는 과정은 아프리카 지역과 국가에 대한 지식을 한결 더 넓히는 기회가 됐다. 어떤 한 가지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이 들어 있는 정보들을 접하게 됐기 때문이다.

스스로 연구해오던 분야에 다양한 관점이 추가되며 보다 종합적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을 갖추게 됐다. 여러 분야에 걸쳐 누적된 경험과 지식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상황의 원인을 파악하고 위기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줬다.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곳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시장을 포기하는 게 이익일까? 그렇지 않다. 비즈니스 기회의 측면에서 아프리카는 엄청나게 큰 대륙이다. 55개의 나라에 저마다의 경제가 있다. 여전히 국제유가나 내전, 정치 등에 의해 변동이 많은 지역이지만, 과거에 비해 정치적 불안정성은 줄어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아프리카 시장이 뜨는 시기는 언제나 선진국 시장이 무너질 때다. 즉 우리와는 다른 의미지만, 아프리카 역시 세계시장과 상당히 밀접하다는 얘기다. 아프리카 시장을 주력 시장으로 삼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하더라도, 포트폴리오 전략 차원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시장인 것은 틀림없다. 2012년 12월17일, 나이지리아 남부지역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피랍됐을 때 나는 비교적 상황을 빠르게 분석하여 대응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 2006년 이후 이때까지 우리 기업이 겪은 납치사건의 경우 모든 사건이 1주일 안에 협상이 완료되고 인질이 풀려났다.

이 사건 당시 무장세력은 한국인 직원 4명과 현지직원 2명을 납치하고 그 중 현지직원 1명을 석방했는데, 이러한 정황을 나는 조직의 협상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했다. 석방된 직원에게 메신저 역할을 맡겼을 터. 또한 사고 발생지역은 북부 이슬람지역이 아닌 카톨릭이 우세한 기독교 지역인 바옐사(Bayelsa)주였다. 아마 무장세력의 수장은 이 건을 신속히 해결하여 필시 크리스마스 전 부하들에게 ‘명절 자금’을 풀어야 했을 것이다. 무장세력에게 크리스마스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종교는 곧 문화다.

실제로 납치됐던 직원들은 그 주의 주말이 되기 전 모두 풀려났다. 예상한 결말이었다. 평소에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 사고방식을 폭넓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한 올바른 분석이 있다면, 발생할 위기를 막을 수도, 최악의 상황에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개발협력에 마케팅을 더하라

십 수 년간 현장에서 ‘까를로스 김’으로 불리며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로 통했지만, 현장에는 비즈니스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아프리카에서 유상원조 사업을 개발해오면서도 늘 그 이론적 토대가 궁금했다. 회사가 극구 말리는 와중에도 경희대학교 국제개발협력학과 박사과정에 도전했던 이유다. 첫 수업에 참석한 순간, 그동안 현장에서 가졌던 궁금증에 대한 대답이 명확하게 다가왔다.

내가 벌인 원조사업들의 뒤에 있던 국제사회의 합의, 정부 간의 관계 등을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동시에 현장에서의 실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개발협력에서 보다 발전시켜야 할 영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개발협력 업계는 기업인들과의 접점이 적은 편이다. 대부분의 실무를 NGO나 공무원, 학자, 연구원 등이 맡고 있는데, 성공적인 개발협력을 위해서는 사업가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원조를 받는 수혜국 입장에서도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비즈니스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조직 생활로부터 독립할 기반을 다졌고, 2014년, 개발마케팅연구소를 차렸다. 개발협력과 관련해 사업을 만들고 수행하는 기업이나 정부기관을 위한 컨설팅 회사다. ‘개발협력에 마케팅을 더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그러나 내 사업에 대한 개발협력 업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업계에서는 연구소 이름과 캐치프레이즈를 불편하게 여겼다. 어려움에 처한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개발협력의 순수성을 상업적인 타이틀을 내걸어 훼손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직도 이러한 원리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며, ‘유상원조도 필요하다’는 주장에 여전히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개발협력 분야에서 다양한 차원과 관점의 논의가 있어야 하고, 꾸준히 기존의 방식에 대해 비판하고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블로그와 외부 기고를 통해 이처럼 개발협력 업계에 깊게 뿌리내린 편견과 관습, 비효율적인 운영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합리적이지 않은 정책이나 주장에 대해서는 정부기관이건 시민단체이건 모두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처럼 개발협력 업계에서 특이하고 파란만장한 이력 덕분에 컨설턴트로서의 내 포지셔닝은 항상 ‘중간자’에 가깝다. 항상 변화한다. 학계에서는 비즈니스맨이고 기업에서는 개발협력 연구자이며, 공무원 사이에서는 민간전문가, 시민단체를 컨설팅 할 때는 정부 정책의 대변인이 되기도 한다.

어느덧 개발마케팅연구소 문을 연 지 5년이 지났다. 조금 더 중장기적인 전략이 있으면 좋겠지만, 정부의 대아프리카 개발협력 정책도 조금씩 국제적 수준에 발맞춰 가고 있는 추세다. 일단 아프리카를 향한 원조 규모 자체가 꾸준히 늘고 있다. 다양하게 진행되는 원조사업들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보다 효율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지역에 대한 충분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사업이 성공하거나 실패했을 때 결과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성공하거나 실패하게 된 이유를 속속들이 분석해야 한다.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게 운에 의한 경우도 있지만, 많은 부분이 해당 지역의 역사, 지리, 문화 등 다양한 현지 사정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처음에 성공한 사업이 다음 번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는 모두 이러한 현지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업은 선한 의도와 믿음만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내가 항상 마음에 새기는 말 중 하나가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서생의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이다. 개발협력 분야는 특히 뜨거운 인류애와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그래왔듯, 개발마케팅연구소는 개발협력과 기업의 접점에서 그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연구하고 제안하며 협력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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