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㉓] 음악의 기록 ‘악보’
[홍미희의 음악여행 ㉓] 음악의 기록 ‘악보’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1.06.2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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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월드코리안신문) 홍미희 기자= 인간은 언어를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다양한 생각들을 문자로 기록하고, 인간의 감정과 생각은 소리를 이용해 음악으로 표현하고 악보로 기록한다. 작곡자들은 어느 누가 연주를 하더라도 같은 음과 박으로 정확하게 연주하며 다음 세대의 사람들 역시 자신이 상상한 소리를 연주하고 들을 수 있기를 열망한다. 그리고 이러한 열망은 보표, 박자, 가락, 음표, 나타냄말 등을 통해 점점 정교화된 악보를 만들었다.

현재 기록으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악보는 1883년 터키 에페소스 근교이자 과거에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였던 트랄레스에서 발굴된 대리석의 원형 기둥에 새겨진 것이다. 이 기둥에는 “나는 묘비요 우상이다. 죽지 않는 기억의 상징으로서 세이킬로스가 나를 이곳에 세웠다”는 짧은 서문과 시로 이루어진 악보가 있었다. 그래서 이를 ‘세이킬로스의 비문’ 또는 ‘세이킬로스의 노래’라 부른다. 이 노래는 1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며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기를!
결코 슬퍼하지 말기를!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시간은 끝을 청할 테니.”

세이킬로스의 비문(왼쪽)과 악보 원문

이 비문이 악보라고 하는 이유는 가사 위에 C, Z와 같은 문자가 씌어있었기 때문이다. C, Z와 같은 문자를 이용해 음이름으로 표기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의 기보법이었다. 당시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들에 대한 찬양이나 희곡의 노래 등 다양한 음악들이 존재했다. 그리스 문자를 이용한 기보법은 기원전 3~4세기에 개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 기보법을 이용한 곡으로는 기원전 2세기 경 델포이 신전의 돌에 새겨진 2곡의 아폴로 찬가가 있다. 하지만 이 곡들의 경우 곡 전체가 보존돼 있지 못해 가장 오래된 악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오음보와 같은 보표, 쉽게 오선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 고대 그리스의 영화는 기원전 146년 고대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면서 막을 내린다. 로마의 음악은 그리스의 음악을 거의 승계해 사용했기 때문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후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5세기~15세기까지 천년의 중세시대가 시작된다. 흔히 중세는 암흑시대로 불리지만, 그 천년동안 음악은 무반주로 노래하는 단선율인 ‘그레고리오 성가’, 그 선율에 4도나 5도로 병행해서 노래하며 화음의 시작을 연 ‘오르가눔’, 다양한 화음의 2부 3부합창곡인 ‘모테트’가 만들어지며 단성음악에서 다성음악으로 나아갔다. 또한 악기가 다양해지면서 반주음악. 기악곡 등이 나타났고 이들을 기록하면서 기보법도 같이 발전했다.

중세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은 기독교다. 초기부터 10세기 정도에 이르기까지 수도원에서 부르던 노래가 ‘그레고리오 성가’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무반주 남성합창곡으로 화음 없이 하나의 선율로 부르는데 끝나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노래라기보다는 낭송에 가깝게 들린다. 곡이 끝나는 지점을 명확하게 느낄 수 없고 우리가 흔히 듣는 곡과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현대와 다른 선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선법은 6종류로 9세기 중반에 나타나는데 고대 그리스와 팔레스타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도원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아 탄생된다. 그래서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쓰이는 선법의 이름은 ‘도리안선법’, ‘리디안선법’ 등 그리스식의 이름을 가진다. 흔히 사용된 ‘리디안선법’의 경우 으뜸음이 레로 시작돼서 레로 끝나기 때문에 현대의 곡과는 확연히 다르게 들린다. 흔히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황 그레고리오1세가 작곡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 구전되던 성가를 모아 채보하고 정리한 사람이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이기 때문에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구전과 기억으로 전승되던 성가를 정리하고 채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기보법이었다. 당시 가장 많이 쓰인 기보법은 그리스어로 제스처 또는 기호라는 의미를 가진 ‘네우마’이다. 현존하는 최초의 ‘네우마’는 9세기에 나타나지만, 그전에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네우마’는 가사 위에 음의 길이와 억양 등을 묘사하는 기호를 높낮이를 두고 그려 넣어 음의 높이를 표시했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단선율이고 일반적인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성가였음을 생각하면 음의 높낮이 정도만 기록하는 ‘네우마’로도 어느 정도는 연주가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갈수도원에 보관된 초기 ‘네우마’(가사 위의 기호가 ‘네우마’로 음높이에 따라 기호의 위치가 다르게 쓰여 있다.)

그러나 점점 성가의 종류도 많아지고 단순한 병행화음인 ‘오르가눔’이 나타나면서 다성음악의 시대가 다가오자 ‘네우마’만으로는 정확한 음의 높이를 기보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선(Line)이다. 지금은 오선이지만 11세기경 처음 나타난 선은 1개였고 이 기준선을 중심으로 ‘네우마’를 배치함으로써 상대적 음정을 표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은 선을 1개, 2개 추가하면서 10개 이상까지도 늘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늘어난 선은 악곡의 음을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연주자가 악보를 읽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또 당시에는 악보가 종이가 아니라 양피지였기 때문에 노래 한 줄이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게 돼 경제적인 이유로도 실제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이러한 보표를 정리한 사람이 음악학자이자 교육자인 귀도 다레초(992~1050)이다. 교황 그레고리오1세와 더불어 이 시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보표를 중세시대의 표준법인 4선보로 정리했으며 계이름을 창시했다. F음은 붉은색, C음은 노란색으로 표기했고 이후 선과 칸을 이용해서 표기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또 ‘성 요한 찬미가’의 첫 음이 한 음씩 상행하는 음계의 여섯 음과 일치한다는 것에 착안해, 그 음으로 시작하는 가사의 첫 번째 여섯 음절을 따서 ‘ut, re, mi, fa, sol, la’를 계이름으로 정했다. 여기에서 ut가 do로 바뀌고 si가 첨가돼 우리가 아는 ‘도레미파솔라시’의 형태를 갖춘 것은 이후 17세기의 일이다. 또 손가락 마디마다 계이름을 적고 이를 짚어나가면서 노래를 익히도록 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귀도의 손’이다. ‘귀도의 손’은 계이름뿐 아니라 선법까지 담겨있어 이전에 10년 걸렸던 성가공부가 1년 안에 끝날 수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귀도의 손(왼쪽)과 4선보표(앞에 f, a, c, e의 음이름, 네우마로 음 표시)
귀도의 손(왼쪽)과 4선보표(앞에 f, a, c, e의 음이름, 네우마로 음 표시)

수적으로 늘어난 보표선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음자리표가 있었다. 음자리표를 사용함으로써 여성과 남성의 음높이, 악기별로 다른 음의 높낮이를 4선 또는 5선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12세기에는 그림처럼 왼쪽 줄 앞에 f, a, c, e처럼 줄 앞에 음의 이름을 써넣었다. 이렇게 줄의 음을 규정하는 방식이 오늘날에 와서 음자리표로 발전한다. 그래서 높은음자리표는 G의 음을 정하는 G Clef, 가온음자리표는 C의 음을 정하는 C Clef, 낮은 음자리표는 F의 음을 정하는 F Clef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이 들어올 때 일본에서 번역한 것들을 그대로 따라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됐다.

이후 기호로 표시됐던 ‘네우마’의 모양이 사각형으로 바뀌면서 현대에 사용하는 음표 즉. 흔히 표현하는 콩나물 모양과 비슷한 모습을 갖춘다. 13세기에는 2부나 3부의 다양한 화음을 노래하는 ‘모테트’가 나타나면서 음표는 ‘롱가’(긴박, 검은 사각형의 오른쪽에 기둥을 세워서 표시) ‘브레비스’(짧은박, 검은 사각형으로 표시)등을 사용하게 된다. 이 검은 사각형기호를 사용함으로써 4선보에 음의 높이를 정확하게 그려 넣을 수 있게 됐지만, 음의 길이를 미세하게 표기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꼬리다. 음표에서 꼬리는 박자 뿐 아니라 리듬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테트’의 등장은 당시 사람들이 종교적인 가사뿐 아니라 점점 세속적인 가사를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감정의 세밀한 표현을 더욱 필요로 했던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후 15세기가 되면서 음표는 흰색으로 변했고 쉼표와 점음표까지 나타난다. 4선은 5선으로 발전하고 바로크시대에 와서는 마디가 첨가되고 음표의 모양이 둥글게 바뀌었다. 고전파 시대를 지나 낭만파 시대에는 많은 음악용어와 나타냄말들이 출현하면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악보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

모테트(영국왕 헨리8세를 위해 만든 Celeste beneficium)

중세시대 천년 동안 기호에서 알파벳. 네모 모양의 음표, 기둥, 검은음표, 흰음표, 꼬리. 점음표에 이르기까지 일견 단순해 보이는 기보법은 천년동안 서서히 그러나 숨 가쁘게 발전해 왔다. 그래서 지시어가 없었던 시대의 곡들은 연주자나 음악학자에 따라 해석에 많은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작곡자의 마음을 찾아가는 다양한 길이기도 하다. 현대의 작곡자들은 본인이 만든 곡을 연주자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표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양한 지시어를 새로 만들기도 하고 기존의 악기에는 없는 연주법을 써넣기도 한다. 악보는 작곡자의 정신을 담고 있지만, 그것을 소리로 현실화시키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기 때문에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곡이 되기도 한다. 작곡자의 정교하고 계획된 지시가 좋은 음악을 만들까, 아니면 연주자에게 가능성과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 좋은 음악을 만들까?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악보는 작곡자의 의도를 전달하고 연주자에게는 현실적인 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호와 부호로서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며 음악의 발전을 기록해온 좋은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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