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봉철 회고록⑦] 결혼 그리고 미국행
[현봉철 회고록⑦] 결혼 그리고 미국행
  • 현봉철 민주평통 쿠웨이트지회장
  • 승인 2021.06.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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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직후 제주도에서 출생, 4.3사태 때 부친 실종, 홀어머니 밑에서 태권도에 전념해 전국체전 우승, 월남전 참전, 중동 건설 붐 때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활동, 쿠웨이트 한인회장과 민주평통 지회장으로 봉사··· 현봉철 회장의 생애는 이처럼 우리나라 현대사의 굴곡과 맥을 함께 하고 있다. 한국경제 발전사와도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 현봉철 회장의 삶을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주]

민주평통 쿠웨이트지회가 주최한 평화통일 기원 사막 트레킹.

현재는 장인이 되신 분이 내게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가 난관에 부딪힌 것을 알자 돈을 빌려주었다. 나는 꼬박꼬박 이자를 갚으면서 1년 만에 빌린 돈은 거의 갚았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 신분으로 있으면서도 상당한 돈을 벌었던 것이다. 순탄하게 일과 학업을 겸할 수 있었다. 졸업이 다가오자 진로가 여러 길로 나뉘었다.

요청이 있었다. 경장으로 특채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찰들에게 태권도를 지도하라는 것이다. 또 다른 선택사항은 이미 계획했던 편입이었다. 또 하나는 IFAE 국제협회를 통해 미국 연수를 가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여러 후진국 중진국에서 사람들을 선별해 연수를 제공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0년대 아닌가. 일반 시민의 출입국이 자유로운 시절이 아니었다. 미국 연수를 위해서는 국가공무원 3급 이상인 자의 연대보증이 있어야 하고 조금은 돈도 필요했다.

여러 사람한테 조언을 구한 결과 미국행을 택하는 것으로 했다. 그래서 한국협회의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 미국에서 생활하는 방법이며, 미국교육제도며, 연수 과정 커리큘럼이며, 보안교육이며 하는 것을 2달 정도 사전 교육을 받았다.

순조롭게,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미국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지금은 장인 되신 분에게서 전갈이 왔다. 약혼은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이었다. 나는 약혼을 하고 가겠다고 대답했다. 약혼 후 며칠 더 있으니 결혼을 하고 가라는 것이다. 나는 결혼은 하겠으나 당장은 신혼 살이 할 장소도 없고 여러모로 준비된 게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미국 가기까지 한두 달은 처가에서 생활하고 내가 미국에 간 후로도 처는 집에 있으면 된다고 하였다. 나는 결혼 비용과 패물은 돈으로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는 거로 동의를 했다.

현봉철 회장과 평통 자문위원들이 2018년 시리아 난민촌을 방문했다.

1975년도 10월12일에 결혼식을 치렀다. 예물은 간단하게 반지 하나 시계 하나 그리고 이불 정도였던 것 같다. 예식은 신촌예식장이었고 당시 태권도 관원의 아버지 격이었던 김인기 국회법사위원장이 주례를 서주셨다. 우리 집에는 조금도 자금 요청을 하지 않았고, 가족도 형님과 누님 매형만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변 친구들 150명 정도가 하객으로 와주었다. 나는 피로연도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고 준비도 못 했다. 그래서 축하하기 위해 오신 분들에게 많은 신세를 끼치게 됐다. 나중에 따로 보답하겠다고 했지만 지금도 너무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피로연도 못 할 만큼 바쁠 만한 사정이 있었다. 10월12일이 결혼인데 7일부터 15일까지 전국체육대회가 열린 것이다. 제주태권도협회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운동하는 사람들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내게 대구로 내려가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코치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거절할 수 없었다. 시합에서는 선수 뒤에 누가 앉아있는가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나는 태권도에서는 많이 성장해 있어서 중앙에 심판들도 많이 알고 있던 때라 내가 필요한 정황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래서 대구에서 후배들 시합을 지원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보고 10월10일 오후에 올라와서 우선 체육관을 살펴보고 단 하루 결혼 준비를 해서 예식에 참석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신랑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도 했다고 한다.

사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태권도장 모습.

결혼 후에도 나의 바쁜 생활이 계속됐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내가 미국에 가고 난 후 집사람 생활비, 체육관 운영 등을 미리 정리해놔야 했다.

미국 연수 준비를 마치고 우리나라 연수생 13명이 서울에서 일본을 거쳐 그곳 연수생 47명 들과 함께 미국 알래스카 공항으로 갔다. 그곳에서 입국 절차를 마치고 다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오리엔테이션이 2주 정도 있었고 각자 주어진 지역으로 흩어져 1년간의 연수 생활을 시작하도록 돼 있었다. 현지 오리엔테이션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새크라멘토 캘리포니아 주립대(California State University, Sacramento)에서 7일간 진행됐다. 27개국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연수 프로그램이었다.

하루는 캠퍼스 공원에서 일본인 연수단이 가라데 시범을 보인다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공원에 가보니 가라데 유니폼을 입고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패기가 발동해 우리나라 대표에게 일본인과 겨루기를 도전하고 싶으니 일본 대표와 협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 나니 안에 소문이 파다해졌다.

그 당시 우리는 일본인에 비해 위축되고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일본인들은 우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많았다. 혼자 나와서 연습하면서 너무 거들먹거리는 것이 눈에 거슬려 도전한 것이다. 나도 도복을 차려입고 공원으로 나가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데 일본인이 이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러 이유를 달면서 내 도전에 불응했다. 구경꾼이 이미 모여든 상황이고 해서 아무 준비도 없이 즉석에서 시범하는 것으로 대치했다. 한 번 그렇게 하고 나니 가는 곳마다 우리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우리 한국팀도 이 일로 힘을 받아 더 열심히 남은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수 있었다.

6개월 후에 요세미티 공원에서 가진 오리엔테이션 내용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생활신조로 삼고 있을 정도로 신선하게 다가온 교훈이었다. 바로 먼저 생각을 하고 일을 해라, 지혜롭게 일을 준비하고 실행하라는 말이었다. 이것이 후진국과 중진국 선진국의 차이라고 했다. 같은 1시간을 일하고도 후진국 사람과 중진국 사람, 선진국 사람이 받는 보수가 천지 차이가 나는 것도 여기에서 오는 차이라고 했다. 후에 H건설에서 근무할 때 현장에 이 표어를 붙이고 일을 했다.

미국 연수중 운전 면허증을 딴 것 기억도 새롭다. 당시 연수라고 하면 한편으로는 일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나라의 문화와 공중도덕, 규칙 등 현지의 삶을 체험하고,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는 것이 실질적인 교육이었다. 그런데 대화가 안 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저녁에는 랭귀지 스쿨(language school)의 문을 열심히 두드렸으나, 기초가 갖춰져 있지 않아서 언어소통은 쉽지 않았다.

나는 월남의 전쟁터에서 느낀 게 있다. 베트콩은 차량을 공격할 때 운전병을 먼저 저격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탑승자들을 포로가 삼든지 아니면 무참히 죽였다. 이런 일을 월남전에서 듣고 겪으면서 나중에 운전을 빨리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처럼 운전이 필수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에 와서 보니 사실이었다. 미국이란 나라는 차가 있어야 했고, 운전을 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먼저 캘리포니아에서 필기시험을 준비해 합격했다. 미국은 주마다 운전에 대한 규칙과 법이 다르다. 당시에도 캘리포니아에서는 한글 시험을 허용해서 나는 필기시험에 쉽게 합격 할 수 있었다. 실기시험 준비를 위해서 나는 150불을 주고 중고차를 샀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교통량도 적은 자정시간에 밖에 나가서 연습을 많이 했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나는 39일만에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현봉철 회장에게 국민포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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