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가족 간 거리와 감정
[대림칼럼] 가족 간 거리와 감정
  • 조은경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 승인 2021.07.0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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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미국, 2021년 3월 개봉)가 ‘떠난 자’들의 개척 서사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남매의 여름밤>(한국, 2020년 8월 개봉)은 ‘돌아온 자’의 개척 서사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조선족들에게 ‘떠난 자’와 ‘돌아온 자’의 개척 서사는 대도시로의 진출과 출·입국의 영향으로 한창 진행형이기 때문에 그리 낯설지 않다. <미나리>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오늘날 재한 조선족들의 이주나 생활상과의 차이 때문인지 몰라도 나에게는 큰 공감을 불러오지 못했다. 오히려 잔잔하다 못해 그렇다 할, 파국으로 치달을 정도의 갈등은 벌어지지 않는 <남매의 여름밤>이 더 인상 깊었다.

<남매의 여름밤>은 여름방학 동안에 아빠(병기)와 함께 철거예정인 집을 떠나(쫓겨나?) 할아버지(영묵)의 2층 양옥집에서 지내게 된 옥주(누나)와 동주(동생), 그리고 병기와 남편과의 불화로 아버지 집으로 들어온 미정(고모), 이렇게 두 남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가 좋았던 것은 주변에서 볼법한 노인부양의 해결방식과 죽음, 장성하여 가정을 이룬 어른 남매가 안고 사는 문제와 갈등, 학교 교육을 받는 어린 남매의 고민 등에 관한 이야기를 가족 간의 거리와 감정의 결에 따라 천연스럽게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묵과 병기는 부자지간이지만 왕래가 잦았던 건 아니었다.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동주는 아빠(병기)에게 할아버지 집이 크냐고 묻고 옥주는 할아버지한테 얘기한 게 맞느냐고 확인한다. 그런데 병기는 영묵에게 “아버지, 얘가 옥주구요, 얘가 동주예요. 많이 컸죠?”하고 인사를 시키는가 하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묵의 눈치를 보다가 “애들 방학 동안만이라도 여기서 지낼까 하고요. 아버지가 혼자 계시게 하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괜찮죠?”하고 그때야 집에서 지내도 되냐는 식의 동의를 구한다. 예전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최근에는 부자간의 관계가 소원해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묵은 오랜만에 손주들을 앞세워 찾아온 병기에게 ““응 그렇게 해”하고 흔쾌히 대답한다.

미정이 심심해하는 동주에게 할아버지한테 가서 말 걸어드리면 엄청 좋아하실 거라고 하자 동주는 할아버지랑 무슨 얘기를 해야 하냐고 물어본다. 미정은 “뭐 덥진 않으신지 아니면 동주 재밌었던 일 뭐든, 뭐든 좋아하실 거야”라며 가보라고 한다. 동주가 창문 너머로 마당에서 화초와 채소에 물을 주고 있는 할아버지를 부르며 웃어 보이자 할아버지도 동주를 향해 손을 저으며 환히 웃어준다. 동주와 영묵이 소소한 것으로부터 가까워지는 장면이다.

옥주는 어느 날 밤에 1층으로 내려가던 중 홀로 노래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는 할아버지를 발견하게 되며, 방해하지 않으려 도로 올라가다가 계단에 걸터앉아 함께 노래를 감상하기에 이른다. 할아버지와 옥주가 정서적으로 교감을 하는 중요한 장면으로 생각된다. 할아버지 생일에도 옥주는 더위 때문에 고생한 할아버지에게 모자를 선물하며 병기가 영묵의 집을 팔려고 할 때는 “할아버지 요양원 보내놓고 아빠 맘대로 집까지 파는 건 좀 심하잖아”하고 쏘아붙인다. 옥주가 할아버지에게 친밀감과 존중의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보아낼 수 있다.

옥주와 동주는 상극인 것 같지만 큰 갈등은 없다. 옥주는 엄마를 증오하지만 어린 동주는 엄마를 그리워한다. 혼자서 엄마를 만나고 돌아와 누나에게 엄마가 보낸 선물을 건네준 동주는 오히려 옥주에게 혼나고 맞기까지 한다. 나중에 옥주가 동주에게 때려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동주는 우리가 싸운 적이 있었냐며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한다. 이들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어린 남매다.

반면에 병기와 미정은 겉으로는 화합하는 것 같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갈등이 존재한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가시면 당분간 집에서 좀 지낼까 한다는 병기의 말에 미정은 “오빠, 이 집 오빠 거 아닌 건 알지?”하며 빈집으로 둘 수도 없으니 차라리 집을 파는 게 어떠냐고 한다. 이어서 그동안 쌓여온 설움을 드러낸다. “솔직히 내가 그동안 한 번도 얘기 안 했지만, 오빠 힘들 때마다 아빠 돈 쓸 동안 난 딸이고 둘째라서 그냥 다 알아서 했잖아. 그런데 이 집까지 갖겠다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하고 미정이 원망하듯 말하자 병기는“” “내가 언제 이 집 내가 갖겠다고 그랬냐? 그냥 당분간 좀 지낸다는 거지 뭐”하며 말끝을 흐린다. 그러자 미정은 “지금껏 내가 뭐 서운한 거 없어서 가만있었던 건 줄 알아? 오빠 힘든 거 아니까 그냥 가만있었던 거지”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리는데 그런 그녀의 마음도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들은 서로를 챙기고 쪽팔림을 감추고 싶어 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잇속을 채우고 싶은 욕망을 감추지 않는 어른 남매다.

옥주가 고모에게 아직도 할머니가 보고 싶으냐고 묻자 미정은 할머니는 만날 보고 싶다며 꿈에 나온다고 한다. 옥주가 신기하다고 하자 미정이 “그게 뭐가 신기해? 계속 보고 싶으니까 꿈에 나오는 거겠지”하고 말하고, 옥주는 난 꿈을 안 꾼다며 엄마에 대한 원망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연락하는 남자애가 자신이 연락을 안 하면 먼저 연락을 안 하는데 그러면 날 안 좋아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미정은 “모르겠네. 소심한 앤가. 나도 모르겠다”하고 애매하게 대답한다. 옥주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먼저 연락을 안 하는 남자친구나 꿈에조차 나타나지 않는 엄마가 자신을 관심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사실 여부였을 것이다. 그러나 옥주는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온 엄마와 함께 온 식구가 행복하게 식사하는 꿈을 꾸며, 실제로 동주에게서 엄마가 다녀갔다며 건네준 선물을 받는다. 옥주의 엄마에 대한 애증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서 왜 하필이면 남매이고 여름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자매나 형제보다는 남매를 등장시킴으로써 극단의 경쟁 혹은 폭력에서 자유로워진 한편 인간관계에서의 협동을 강조한 것 같다.

게다가 남매(오누이) 서사는 뿌리가 오래돼 우리에게 익숙하다.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해와 달의 이야기에도 남매가 등장하고 오누이가 힘겨루기를 하는 이야기에도 남매가 등장하고 여우누이가 부모를 잡아먹는 이야기에도 남매가 등장한다.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남매들은 지극히 극단적인 경향으로 나아가 파멸에 이르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시의 이데올로기로 인한 것이기에 깊게 파고들지는 않겠다.

여름밤은 덥지만 짧다. 미정은 더운 것보다는 추운 게 낫다고 하고 병기는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게 낫다고 한다. 이들은 기대와 아쉬움 속에서 각자 고통스럽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여름밤을 지나며 무엇이든 지나간다는 낙관론이나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안고 있던 고민과 문제들을 해결하고 조금은 단단해진 모습으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나가지 않을까 싶다.

필자소개
중국 화룡 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졸업. 한국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수필, 소설 수십편 발표, 수상 다수.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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