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건 서부플로리다한인회장 “탬파에서 한인낚시대회 열겠다”
최창건 서부플로리다한인회장 “탬파에서 한인낚시대회 열겠다”
  • 템파=이종환 기자
  • 승인 2021.07.0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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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건 서부플로리다한인회장
최창건 서부플로리다한인회장

(템파=월드코리안신문) 이종환 기자= 서부플로리다한인회는 플로리다 주도인 탬파와 세인트피터스버그, 클리어워터 등 인근의 한인사회로 이뤄져 있다. 교민수는 1만여명. 은퇴자들이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지면서 교민수도 해마다 늘고 있는 곳이다.

“그동안 한인회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플로리다연합회장 선거에 나가보려 합니다.” 플로리다 탬파에서 최창건 회장을 만났을 때 그는 플로리다연합회장으로 출마하려는 의욕을 내비쳤다.

플로리다는 주도인 탬파와 남부의 마이애미, 중부의 올랜도를 각기 1만명의 교민사회가 형성돼 있다. 그리고 북부 쪽의 잭슨빌과 군부대가 많은 북서부의 펜사콜라, 동부 해안의 데이토나비치, 플로리다주립대가 있는 게인스빌, 그리고 탬파 남쪽의 포토마이어 등에도 한인 커뮤니티들이 있으며, 한인회를 통해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고 있다.

“플로리다연합회는 해마다 연합체육대회를 치러왔습니다. 지난해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치르지를 못했습니다. 해마다 9월 첫째 주 노동절에 체육대회를 치릅니다.” 이렇게 소개하는 최 회장은 “체육대회 개최 고지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회장 선거는 관례적으로 9월 체육대회에 앞서 이뤄져 왔다는 게 최 회장의 설명. 3월 임시총회, 4월 선관위 구성, 7월 연합회장 선거를 하고, 체육대회에서 회장 이취임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플로리다연합체육대회에 세 번이나 참가했다”는 최 회장은 “팬데믹 직전에 세탁소 사업을 정리했다”면서, “연합회장을 맡으면 회장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욕을 과시했다.

“플로리다연합회장이 되면 전미 낚시대회를 탬파에서 열고 싶어요. 탬파에는 한인낚시회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낚싯배만 해도 십여 척에 이릅니다.” 탬파에서 낚시대회를 개최하면 바다낚시를 좋아하는 미주지역 전·현직 한인회장들과 가족들은 물론 해외에서도 낚시대회를 계기로 플로리다에 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탬파에 오면 디즈니랜드가 있는 올랜도와 쿠바행 크루즈가 떠는 마이애미, 멕시코만에 있는 키웨스트 등의 명소들도 방문할 수 있다. 또 탬파에서는 멕시코 칸쿤행 크루즈도 뜬다. 낚시와 크루즈여행, 플로리다 명소여행을 선택해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크루즈선과 깊은 인연이 있다. 미국으로 온 것도 크루즈선에 취업이 되면서다. 그는 1983년 1월9일 크루즈선에 고용되면서 탬파에 첫발을 내디뎠다.

“크루즈선 안의 세탁소에서 1년 반을 일했어요. 거기서 영어를 익히고는 이어서 ‘캐빈 보이’라고 부르는 객실 서비스를 맡았습니다. 18개의 객실 맡아서 침대를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을 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최 회장은 마치 어젯일처럼 또렷하게 날짜와 숫자를 기억해냈다. 그만큼 그에게는 뇌리에 깊은 이미지를 남긴 일이기 때문이다.

최창건 서부플로리다한인회장과 부인 최춘화씨
최창건 서부플로리다한인회장과 부인 최춘화씨

“1987년 5월 메모리얼 데이에 집사람을 만나 그해 12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최 회장은 이렇게 소개하며 옆에 앉은 부인 최춘화 여사를 쳐다봤다. 최 회장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부인의 내조가 불가결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의 인생역정은 결혼과 함께 새로운 격랑을 탔다.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였다.

보다 나은 미래를 구상하며 그는 일본식 스시를 배우기 위해 뉴욕에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일식당에 일자리가 나지 않아 생선가게에서 서너 달을 일하고는 내려왔다고 한다. 마침내 퀸즈의 아스토리아호텔에서 주방일을 제안받았으나 생선가게와의 의리 때문에 차마 합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후 그는 다시 탬파로 내려와 구두 수선 일을 시작했다. 수선기술을 2년간 배운 끝에 10여년간 이 일에 종사했다. 세탁소를 차릴 종잣돈을 모은 것도 구두 수선 일을 통해서였다. 악착같이 살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부인은 바느질을 하면서 가계에 보탬이 되려고 했다. 남편은 구두는 물론 우산도 고쳤고, 심지어 말 안장까지도 고쳤다. 수선해 달라고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고 한다.

그렇게 10여년이 흐른 후 마침 매물로 나온 세탁소를 보고 인수를 결심했다. 상당한 자본이 투입되는 사업이었다. 그는 세탁소를 인수할 때 선뜻 40만불을 도와준 지인을 지금까지 늘 잊지 못한다고 했다.

“세탁소를 인수해 12년을 운영했어요. 종업원이 20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다 펜데믹 1년 전에 인도인에게 세탁소를 넘겼어요.” 세탁업을 경영하면서 한인사회에 대한 봉사에도 눈을 돌렸다. 6년 전 서부플로리다한인회 회장으로 당선돼 한인커뮤니티에 대한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2년 임기의 회장을 내리 3번이나 연임했다. 그의 봉사가 평가받았다는 뜻일 것이다.

최창건 회장은 부인 최춘화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하나씩을 두었다. 딸은 변호사이고, 아들을 미 공군 중위로 복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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