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일 과거사 문제, 못풀면 국제법으로 넘겨라
[기고] 한일 과거사 문제, 못풀면 국제법으로 넘겨라
  • 신맹호 전 주캐다나대사
  • 승인 2021.07.16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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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가’로는 도움 안 돼··· 도덕적 우위가 관건
신맹호 전 캐나다대사, 국제안보대사
신맹호 전 캐나다대사, 국제안보대사

외교부 국제법률국장으로 재임할 때 위안부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2011년에서 2012년의 일이다. 당시 회의에서 만난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현 더불어민주당 의원)한테 “위안부단체가 건들기 어려운 성역이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비판적 어조를 띈 말이었다. 하지만 당시 윤미향 대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일 과거사는 민감한 문제다. 당시 외교부 국제법률국 차원에서 양국이 모두 수용할 만한 내용으로 위안부 문제 합의문을 작성해 초안을 위안부단체 인사들과 학자 몇 명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반응은 괜찮았다. “그 정도면 해결방안이 될 만하다”는 얘기들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분들에게 다시 제안했다. “아무리 괜찮은 안이라고 해도 정부 간에 합의하면 비판이 나올 테니 한일 민간인사들이 합의문을 만들어 양국 정부에 건의하는 방식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두 손사래를 쳤다. “사람 잡을 일 있느냐”는 반응이었다.

그 후 나온 2015년의 위안부 합의문도 비판에 시달리다 사문화됐다. 2018년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일본의 수출규제가 나오면서 한일관계는 얼어붙었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의 ‘죽창가’도 한몫을 했다. 그러면서 한일 과거사 문제는 건들기 어려운 ‘성역’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제는 학자들조차 친일파로 몰릴까 봐 학술대회조차 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2019.7.30. 중앙일보).

그 후 한일관계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정부 핵심에서 ‘죽창가’까지 나온 마당에 누구도 해결책을 강구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 때문에 문재인 정부도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일본 정부의 교과서 왜곡에 강경하게 대응하면서도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당부를 했다. “두 나라 국민 사이에 불신과 증오의 감정을 키우면 또다시 엄청난 불행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어느 정도의 감정표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절제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감정을 자극하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는 특히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느리다 싶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시사점이 많은 말이다.

한일관계만 나오면 흥분부터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그러나 한일 양국은 공유하는 이익이 너무 많다. 망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해보자.

첫째, ‘죽창가’ 등 자극적인 언사는 삼가야 한다. 일시적으로 감정 해소는 될지 몰라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걸핏하면 쓰는 ‘친일파’ 표현도 시대착오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처럼 한 템포 늦춰 느리다 싶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외관계를 지지층 집결 등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국익에 장기적으로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국민들이 과잉대응하지 않도록 다독이는 역할을 해야 마땅하다.

둘째, 과거사 문제는 법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정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 해법을 먼저 제시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최종합의 사항에 대해 엄격하게 동일한 표현으로 대응토록 약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양측 모두 체면을 손상하지 않는다.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우리 정부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 측으로부터 상징적으로 일부 받을 수도 있으나, 한일관계에서는 도덕적 우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셋째, 정치적 해결이 부담스러우면 국제법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한일 청구권협정에는 양국 간 분쟁은 먼저 외교상 경로를 통해 해결하되, 어려울 경우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여 해결토록 하고 있다. 우리 위안부단체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법적인 접근을 하는 만큼, 국제법적 해결방안이 깔끔할 수가 있다.

그러나 패소하면 국내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퇴임하는 문재인 정부는 중재위 구성 정도에서 멈추고, 다음 정부에서 진척시키는 것이 책임분산 방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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