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마지막 결승점 통과 준비
[이영승의 붓을 따라] 마지막 결승점 통과 준비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1.07.20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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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세상 살면서 수많은 준비(準備)를 한다. 세수하고, 밥 먹고, 잠자는 일상의 모두가 준비 아닌 것이 없다. 그동안 크고 작은 준비 많이도 했으며, 준비하기에 따라 그 결과의 성패가 좌우되기도 했다. 인생은 생(生)으로 시작해 사(死)로 끝난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결국 죽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닌가 싶다.

우연히 죽음에 대한 유튜브를 듣게 되었다. 나이 탓인지 호기심이 발동했으며, 내친김에 ‘죽음학’ 책도 한 권 사서 읽었다. 마지막 인생길이 그토록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입에 담기조차 기피하던 죽음이란 말이 거북하지 않게 들렸으며, 생을 품위 있고 존엄하게 마감하는 웰다잉(well-dying)에도 관심이 끌리기 시작했다.

황혼기에 접어들어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 준비를 ‘자기 사후 가족들 간에 유산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처리하고, 자식들에게 유언장 하나 남기면 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도 온전치 못한 상태로 장기간 연명하다가 가족들에게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떠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하는 일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事前延命醫療意向書)란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치료에 대해 자기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문서를 말한다. 나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데만 관심 있었지 애지중지 살아온 내 인생의 마무리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었으며,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연명은 회복 불가능한 환자가 목숨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는 환자 자신뿐만 아니라 남은 가족들에게도 정신적 경제적으로 차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한 개인의 사망 전 한 달 의료비가 평생 지출한 의료비를 능가한다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우리는 병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죽음도 치료를 해야만 하는 질병’으로 둔갑해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의사가 중환자를 두고 ‘수술하면 생존 확률이 10%’라고 말한다면 이는 살 확률이 거의 없다는 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누가 의사라 해도 달리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인공호흡기를 착용해 의미 없는 생명을 연장시키고, 그로 인해 가족들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인공호흡기는 착용하기는 쉬우나 제거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병원에 실려 갔을 때는 이미 자기 의사를 관철하기 때가 늦다. 이것이 바로 정신이 맑을 때 미리 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해야 하는 이유다.

사고가 아닌 이상 임종에 이르기까지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4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걸을 수 없어 외출을 못 하는 단계, 일어설 수 없어 병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단계, 스스로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는 단계, 의식이 온전치 못한 단계이다. 이에 대한 변화는 전문 의사가 아니더라도 관심 있게 관찰하면 누구나 인지할 수 있다. 이는 마지막 떠날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 원하던 대로 임종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떠난다.

아내와 의료의향서에 대해 의논하니 나보다 더 적극적이다. 차일피일하다가는 언제 실행에 옮길지 모를 것 같아 내가 먼저 등록키로 결심했다. 통계를 보니 4년 전 시행된 제도인데 벌써 등록 인원 100만 명을 넘었다. 건강보험공단을 찾아가 등록을 마치고 나니 무슨 큰일이나 한 듯 가슴이 뿌듯하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흐뭇한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한마디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지만 내 인생도 어언 반환점을 돌았으며, 저 멀리 결승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무사히 완주하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준비를 했으나 이번처럼 의미 있는 준비를 한 적은 없다. 지난 세월 뒤돌아보니 참으로 굴곡도 많았던 인생길이다.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결승점을 통과하기 위한 준비’기 때문이리라.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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