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공예이야기] 오방낭에 희망을 담아
[규방공예이야기] 오방낭에 희망을 담아
  • 구본숙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13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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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경이 규방공예가

몇 년 전 잠시 침선을 배우고 혼자 취미 삼아 바느질을 하고 있다. 소품을 만들고 남은 작은 자투리 원단이라도 어디엔가 쓰일 것만 같은 생각에 모아 놓는다. 정작 모두 쓰이지 않지만, 일부라도 사용하게 되면 기쁘기 그지없다. 사소하지만 버리지 않고 모아두기를 잘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남은 원단으로 색감을 배치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품들을 재미 삼아 만들다가 올 초에 퀼트를 배우게 되었다. 공방이 집과 가까우니 노는 셈 치고 시작했는데 퀼트 선생님이 인품이 훌륭하고 친절한 분이셨다. 나 역시 의미 있는 배움의 시간을 보냈다. 꼼꼼하게 가르쳐주신 덕분에 마음대로 하던 바느질의 습관에서 벗어나 완성도 높은 소품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만들게 되는 것은 끈을 넣어 만드는 주머니이다. 이러한 주머니는 집안을 정리하고 잡동사니를 질서 정연히 모아놓는 큰 역할을 한다. 퀼트도 마찬가지로 원단이 조금씩 남게 되는데 색감을 고려하여 남은 원단을 이어 바느질을 하니 하나뿐인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이 매력에 본래 취지인 남는 원단을 활용하기보다 조각 원단을 사서 바느질에 집중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복주머니, 오방낭, 두루주머니처럼 비슷한 원리도 만드는 규방 공예 소품이 있다. 이 작은 소품들 역시 옷을 짓고 남은 원단으로 주로 제작한다. 한국에서도 원단을 이어 붙이는 방식의 바느질로 다채로운 색동이 나오기도 하고 전통적 주술의 의미를 담은 오방색을 모아 오방낭을 만들기도 했다. 자투리 원단을 활용한다는 점은 시· 공간을 초월한 공통적인 바느질 문화이다.

올여름 휴대폰 주머니를 만들어 평소 존경하는 선생님께 선물을 드렸다. 여성의 여름 원피스는 주머니가 없는 경우가 많아 휴대폰을 지니고 다닐 시 떨어뜨리거나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마침 선생님도 필요하다고 하셔서 부족한 솜씨로 용기 내서 만들어 보았다. 집에 재봉틀이 있지만 존경하는 분이니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손바느질로 일일이 만들었다. 휴대폰의 사이즈를 측정해 직접 디자인했고 혹여 직접 만든 것이 볼품없어 사용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안경집으로도 쓸 수 있도록 조금 더 길쭉하게 만들었다. 휴대폰이 부딪치더라도 안전하도록 압축 솜을 누볐으며 마무리 바느질도 두 번씩 했다.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완성된 작품을 선생님께 드렸는데 다행히 좋아하셨다. 다소 길쭉하게 만들어 필통이나 안경집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점에 큰 점수를 주신 듯하다. 타인을 위한 바느질을 하며 느낀 점은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는 점이다. 선생님이 잘 사용하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정성을 담고자 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옛 우리 선조들은 액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바라는 의미로 청, 적, 황, 백, 흑의 오색 비단으로 오방낭 주머니를 만들어 지니고 다녔다. 무언가를 담기도 했지만,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오늘날보다 과학기술과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 음양오행의 원리와 삶의 바람을 담아 지녔던 주머니였다. 오방낭을 바라보며 꼭 무언가를 넣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다소 무뎌지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결과적으로 목적에 맞는 주머니보다 더욱 자유로운 형상의 주머니를 바느질하게 되었다. 필자가 만드는 기상천외한 모양의 주머니를 보고 가족들은 의아해했지만, 나만의 주머니는 선조들이 희망을 담아 품속에 고이 지녔던 오방낭처럼 이루고 싶은 꿈과 행복을 담아 끝없는 바느질로 완성해 가는 우리네 삶과 닮아있음을 느꼈다.

필자소개
2018 계간문예 수필부문 등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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