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⑯] 에티오피아에서 봉제 산업의 미래를 발견하다 – 차민호 신티에스 대표
[아프로⑯] 에티오피아에서 봉제 산업의 미래를 발견하다 – 차민호 신티에스 대표
  • 차민호 신티에스 대표
  • 승인 2021.08.1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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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반도체 전문가였던 차민호 대표는 아내인 신금식 신티에스 대표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봉제 산업에 뛰어들었다.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전 세계 고급 브랜드로부터 러브콜을 받아온 신티에스는 베트남 소재의 공장에 이어 추가로 공장을 지을 새로운 지역을 물색하고 있었다. 베트남이 발전을 거듭하며 인건비가 오르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초기에 고생하더라도 인건비가 낮아 고정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제3의 지역을 개척할 필요를 느꼈다. 그 무렵, 차민호, 신금식 대표는 머리를 식힐 겸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에티오피아를 향했다.

그때만 해도 에티오피아를 새로운 공장 지역의 후보로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별 기대 없이 찾은 에티오피아에서 작은 가능성을 엿봤다. 전반적으로 인건비가 낮았으며,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에 제법 잘 정비된 공단이 자리해 있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는 너무 멀고 낯선 대륙이었다. 당시 차민호 대표는 에티오피아에 공장을 세우는 것에 확신이 없었던 반면, 신금식 대표는 에티오피아에 제2의 공장을 짓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차민호 대표는 고민 끝에 아내의 뜻을 따르되,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장을 지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 없이는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왜냐하면 그런 원대한 목표나 명분 없이 도전하기에는 과정이 무척 험난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봉제 공장을 꿈꾸다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에티오피아를 찾았을 때 우리 부부는 무척 가벼운 마음이었다. 우리 부부는 전 세계에 흩어진 바이어들을 만나기 위해 다양한 국가를 여행했다. 그중 유일하게 밟지 못한 대륙이 아프리카였다. 안전하게 에티오피아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일 듯하여 이 김에 아프리카 대륙을 밟아볼 겸 경제사절단에 동참했다. 사실 그때 신규 공장을 지을 새로운 지역을 물색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에티오피아를 후보로 염두에 두고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너무 멀고 낯선 대륙이었기 때문이다. 봉제업은 사실 인력 관리 사업이나 마찬가지다.

인건비를 제품에 체화하여 판매한다. 베트남 공장은 예나 지금이나 잘 운영되고 있으나 베트남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덩달아 인건비도 오르는 추세였다. 언젠가는 베트남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질지도 몰랐다. 우리는 그 상황에 대비하여 새로운 지역을 개척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방글라데시가 당시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공장부지로 높이 평가됐으나, 그때는 이미 진출하기에 늦은 감이 있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정부가 보여준 공단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입지가 좋고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 조성된 볼레레미(Bole Lemi) 공단이 바로 그것. 무엇보다도 베트남보다 5배가량 낮았던 에티오피아의 인건비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물론 에티오피아는 베트남과 달리 기존 봉제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한계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을 숙련하는 데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것으로 판단됐다. 또 공단이 잘 갖춰져 있다지만 그 외 기반 시설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 예를 들어 공단 가까이 주거 단지가 조성되어 있지 않으며, 공단과 주거 지역을 잇는 교통이 불편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멀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다.

볼레레미 공단이 무척 인상 깊었으나 에티오피아에 새로운 공장을 지어 기반을 닦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사실 내게는 굳이 그런 상상을 해볼 명분도 없었다. 그런데 대뜸 아내인 신금식 대표가 에티오피아에 공장을 짓자고 했다. 기독교인인 아내의 봉사 정신이 발동한 것이다. 나는 원래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주로 화학 회사에서 반도체 관련 일에 종사했다.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봉제 산업에 뛰어들게 된 이유는 의상학을 전공한 아내가 베트남에 지은 봉제 공장이 전소되면서 가족으로서 상황을 수습하는 데 일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잠시 관여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우리 부부는 돈이나 사업에 크게 욕심이 없었다. 문제는 서울 소재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생계를 걱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용기를 한번 내보기로 했다. 아내에게 세계적인 규모의 공장을 지어 신티에스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 각오로 임한다면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제안했다. 우리는 협의 끝에 에티오피아 볼레레미 공단에 3만 명 규모의 대단위 공장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기숙사도 짓기로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에티오피아를 다녀온 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아 계약을 맺기 위해 다시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했다. 볼레레미 공단 측에서는 우리가 대규모 공장과 함께 기숙사를 짓는다는 사실을 무척 반기고 환영했다. 우리는 기숙사를 짓고 직원들의 숙식을 해결하는 동시에 베트남에서 숙련된 직원들을 데려와 에티오피아 직원들을 교육하면 빠른 시간 내에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뿐 아니라 회사가 미래를 준비하는 데 큰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부지 매입비용을 애초에 약속한 금액에서 7배나 높게 부른 것이다. 이미 대단위 공장을 짓는 데 많은 비용을 투자한 이후여서 정부가 부르는 대로 지불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했다. 자국민들이 건강하게 먹고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기숙사를 짓겠다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훼방을 놓으니 말이다. 이미 공장은 완공하여 가동 중이었던 반면, 기숙사는 부지 가격을 협의하는 데만 꼬박 1년을 허비했고 공사는 지체됐다. 그로 인한 손해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막판에 에티오피아 총리가 이 사실을 알고 부지를 무료로 제공하라고 지시하면서 우리는 손해를 조금 만회할 수 있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때 당시에라도 기숙사를 지으면 공장을 정상궤도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현지의 건설업체를 만나 공사비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나는 사정상 급하게 한국으로 귀국해야 했기에 합의는 했지만 계약서에 서명을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보니 업체로부터 비용을 2배 올려 달라는 연락이 와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시 에티오피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에티오피아 화폐인 비르(Birr)의 가치가 그 사이 얼마나 폭락할지 모를 일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정부가 건설업체에 과도하게 세금을 물리는 경향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공사비를 50퍼센트 올려주는 방향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다시 돌아왔는데, 그 사이 또 건설비를 올려 달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는 힘들 듯하여 에티오피아 정부에 간곡하게 건의했다. 우리 공장을 증축하고 기숙사를 건립하는 일만큼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하게 해달라고. 정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우리는 건설 면허를 받고 포크레인, 펌프트럭 등 모든 기자재를 배에 싣고 가서야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현재는 공장을 2층으로 증축하고 900명 수용 가능한 기숙사 3동이 완공되었었으며, 1동이 지어지고 있다. 전체 10개 동이 완공되면 9,000명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에티오피아에서 봉제 분야보다 건설 분야에서 더 확실한 성과를 이뤘다.

우리가 기숙사에 집착한 이유

우리가 기숙사에 집착한 이유는 결근율과 이직률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능률을 올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아디스아바바는 물가가 무척 높다. 서울 못지않다. 나는 비 오는 날 직원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매번 안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출근하면 하루치 월급과 한 달간 결근을 하지 않은 대가로 만근수당을 받지만, 만약 비오는 날 출근하면서 감기에 걸린다면? 감기약 값이 이 둘을 합친 금액보다 훨씬 더 비싸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비오는 날엔 결근하는 것이 정답일지 모른다.

회사 전경

주거환경은 또 어떤가. 물가가 비싸고 과밀하다 보니 아디스아바바의 주거 환경은 대체로 나쁜 편이다. 특히 우리 직원들은 쪽방이나 마찬가지인 좁고 열악한 집에서 살며 월급의 절반을 집세로 낸다. 그럼 월급의 반절에 해당하는 돈으로 생활을 해야하는데, 면세라는 개념이 없는 에티오피아에서 각종 세금을 내고 나면 한화로 3만원도 되지 않는 돈이 남는다. 점심은 회사에서 제공하니 주중의 아침, 저녁과 주말 세끼를 이 돈으로 해결하려면 한 끼에 할애할 수 있는 금액이 800원이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그것도 여분의 돈을 모두 끼니에 투자할 수 있을 때의 일이다. 그러니 아침, 저녁을 대체로 굶거나 최대한 간편하게 먹을 수밖에 없다. 상상해보라. 아침을 굶다시피 해서 출근길에 나선다.

그런데 집에서 공장이 가깝지도 않다. 회사가 운영하는 출근 버스는 전 직원의 집으로부터 평균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출발한다. 평균 30분을 걸어 나와야 한다. 버스에 오른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1시간 30분 동안 사람으로 빽빽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그 상태에서 출근하면 이미 기운이 모두 소진되어 열심히 일할 수 없다. 우리는 큰 차이는 아니지만 공단 내 다른 공장보다는 월급을 더 많이 주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돈으로는 우리 직원들의 삶이 하루아침에 나아지지 못한다. 또 출퇴근하는 데 평균 4시간을 소요하는데 그 시간에 해당하는 월급은 받지 못하니 결근율과 이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수천 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우리 공장에서 일을 배운 후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공장으로 이직했다.

우리 회사는 그래도 다른 공장보다는 결근율이 현저히 낮은 편이지만, 잦은 이직으로 신입 직원의 비율이 높다 보니 여전히 직원들의 숙련도가 다소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의 결근은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특정한 날 한 라인에 속한 직원들의 결근율이 높을 경우 다른 라인의 직원을 데려다가 그 자리에 앉혀야 한다. 그런데 이때 높은 이직률로 직원들이 모든 직무를 수행할 능력을 미처 갖추지 못한 탓에 낯선 업무를 익히도록 교육하는 데에만 몇 시간이 소요된다. 또 교육을 받았더라도 그 상태로 투입되면 꼭 불량품이 나온다. 봉제 산업의 경우 하나를 생산하는 데 5분이 걸린다면, 불량품을 뜯고 다시 만드는 데에는 1시간이 걸린다.

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기숙사를 지어서 결근율과 이직률을 낮추는 동시에 생산성을 높여 월급을 획기적으로 올리는 길뿐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처음부터 공장과 함께 기숙사를 짓고자 한 이유다. 그런데 기숙사 부지를 매입하고 공사하는 과정이 지연되면서 적자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쌓였다. 앞서 언급했듯 봉제업은 인력 관리 사업이다. 인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그 회사를 다닌다는 자부심이 우선되어야 한다.

에티오피아 랄리벨라 암굴교회

회사를 향한 자부심, 애사심이 생기려면 무조건 월급이 높아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불천불역의 진리와 같은 공식을 베트남 공장을 운영하며 누구보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적자가 워낙 커 당장 시행하기 어려웠다. 2019년 10월, 비로소 기숙사를 완공하여 직원들이 입소하기 시작했다. 기숙사에서는 매일 세끼를 제공하고, 주거 환경도 쾌적하고 넓다. 뜨거운 물 샤워도 가능하다. 기숙사에 입소하기 시작하며 직원들의 만족도가 수직 상승했고 그 결과 결근율이 2퍼센트대로 뚝 떨어졌다. 참고로 공단 내 공장들의 평균 결근율은 15퍼센트에 해당한다.

순차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직률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제 우리만 잘하면 된다. 우리 회사는 전 세계에서 공정이 까다로운 특수복을 가장 잘 만드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하지만 기존의 베트남 공장과 에티오피아 공장은 취지부터 다르다. 베트남 공장은 꾸준히 직원이 6천 명 내외인 데 반해, 에티오피아 공장은 처음부터 3만 명의 직원을 둔 대단위 공장을 계획하며 시작했다. 우리가 여태껏 해온 고가의 다품종 소량 생산이 아닌 대량 생산 쪽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오랫동안 다품종 소량 생산 위주로 주문을 받다 보니 전 세계 의류 회사들이 우리가 그 큰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합당한 가공료를 받고 대량 주문을 받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재작년부터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주며 점점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대량 주문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본사가 영업을 잘하는 동시에 에티오피아 공장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면 처음에 우리가 계획한 규모의 공장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에티오피아와 우리나라가 동반 성장하는 길

봉제 산업은 한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투자비가 1인당 1천달러가 든다. 인당 투자비가 적으니 진출하기도 용이하며 그 비용을 회수하여 흑자로 전환하기도 쉽다. 봉제 산업을 장려하여 에티오피아 인구 중 5백만 명이 봉제 산업에 종사한다고 가정해보자. 1인당 평균 4인 가구의 생계를 책임진다고 생각했을 경우 2천만 명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 만약 실제로 에티오피아의 봉제 산업이 종사자 5백만 명 규모로 확대될 경우 자연스럽게 원단 공장이 따라올 것이다.

신티에스배 직원축구대회
신티에스배 직원축구대회

또 원단 공장이 따라오면 화학 공업과 기계 공업이 잇따라 발전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전 세계 패션브랜드와 연계된 바잉 오피스 즉, 중개업체들이 에티오피아에 자리 잡을 테다. 이때 중개업체들은 현지인을 고용할 것이고, 그중 실력 있는 현지인 직원 중 대한민국 1세대 기업인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같은 사람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도 에티오피아 국민 중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의 비중이 높은 만큼 더 가능성이 농후한 이야기다.

물론 전 세계 어느 나라가 세계적 흐름에 발맞추어 첨단 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고 싶지 않겠는가. 에티오피아 정부도 같은 생각을 품고 있을 터. 하지만 조금만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봉제산업 같이 많은 노동력을 창출할 수 있고 경제력을 높일 수 있는 노동집약적 산업이 지금 시점에서는 더 유리한 선택일지 모른다. 한편,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도 고민해볼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연구개발과 무역이 주된 경제 동력이다. 둘 다 제조업에 기반을 두지 않고는 성장이 불가능한 분야다.

이때 공장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연구개발에 투입할 역량이 커지는데, 국내는 제조업으로 승부하기에는 인건비가 너무 높다. 이것이 많은 기업들이 중국과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긴 이유다. 하지만 이 두 나라 모두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에 투자할 때이며, 현재 가장 좋은 투자처 중 하나가 에티오피아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 국민은 예부터 도전정신이 높은 편이다. 그 장점을 발휘하여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에티오피아와 함께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본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호의적인 점도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6·25 한국전쟁 때 참전한 에티오피아는 자신들이 도운 나라가 극적인 경제성장 과정을 거쳐 자신들을 돕는 존재로 일어섰다는 사실에 자못 자부심을 느낀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이런 환경적 조건들을 잘 활용하여 에티오피아와 손을 잡고 협력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궁극적으로 아프리카 대륙과 상생하는 길이고 동시에 우리가 살 길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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