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피는 모습, 지는 모습
[Essay Garden] 피는 모습, 지는 모습
  • 최미자 재미수필가
  • 승인 2021.08.30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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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시댁 큰 누님의 조카가 말기 암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부부가 한 때 사랑했던 조카여서 지난 세월 그의 복잡한 삶을 돌아보며 쓸쓸하고 아픈 요즈음이다. 게다가 날마다 눈을 뜨면 우리가 사는 세상까지 뒤숭숭하여 내가 왜 밥을 먹고 살아가는지. 올바른 세상이 존재하도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조차 하다. 우울증까지 겹쳐 삶에 지쳐 눕는다. 그래도 누군가가 반드시 정의롭게 우리가 만들어 낸 평화로운 세상을 지켜낼 것이라며 희망을 건다.

오늘은 뜰에 나가 호스를 들고 물을 주려고 뜰의 가족들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살갗을 태우려는 듯 뜨거운 열기에도 꽃들이 피어있다. 대부분 힘없이 반짝 화려하게 피었다 다음날 메말라 죽어가는 꽃들이다. 그 연한 꽃잎을 화사하게 피운 칸나의 우아한 자태와 아기 얼굴만한 버터수콰시 호박꽃은 나를 미소짓게 해준다. 마음이 복덩이 같은 호박꽃들이지만 다음날은 볼품없이 쪼그라져 꽃이 진다.

한번 피곤 나면 지저분한 쓰레기로 변한 추한 꽃들을 일일이 따내는 일을 나는 하면서 우리 인간들이 대부분 살다가는 모습이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얼마 전 한 선인장 꽃이 곱게 핀 후에 신기하게도 너무 곱게 마무리 지는 모습을 보았다. 피기 전의 꽃봉오리처럼 지는 꽃봉오리의 모습도 어쩜 똑같은 모양이란 말인가. 신기했다. 해마다 한 송이 두 송이 그리고 올해엔 네 송이가 피었다. 기둥처럼 생긴 나무의 지름이 내 손 한 뼘 크기의 두께인데 십여 년은 자랐다.

자주 이메일과 카톡으로 소식을 보내주는 선배 문인이 있는데 나는 게을러 답을 잘 못해 드린다. 오랜만에 육성이 듣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6월에 부군이 별세하셨다고 했다. 너무 놀랐다. 남편인 그 어른은 나의 대학 선배여서 연말 동문행사 때면 종종 뵙던 분이었다. 색소폰도 잘 불고 바리톤 같은 저음으로 노래도 잘하시어 늘 초청가수였다. 지난날 문인 행사 때마다 시인인 아내를 태워다주고 자신은 다른 일을 보고 끝나는 시간에 다시 들려 아내를 태우곤 하는 운전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의 근교여서 한인 타운과 가깝지도 않는 거리지만 여러 행사마다 빠짐없이 기부도 하며 아내를 보살펴 난 늘 감동했다. 그리고 늘 천진난만한 소년 같은 얼굴과 인자한 눈매,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에도 반했다.

갑작스럽게 응급실로 가기 전날에도 길 건너 이웃집에 가서 “아내가 주유소에서 집에 못 오고 있다며 지갑을 열어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알고 보니 처음으로 치매증상을 보였던 것이다. 그 후, 호텔 스윗룸 같은 방의 병원에서 가족과 친척들이 모이는 그날 하루 지나고 다음날 운명하셨단다. “고맙다. 행복하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다오. 시신을 기증해다오.” 등등 인사말을 남겼다고. 그는 곱고 여성스러운 아내보다 키가 자그마한 체격이건만 늘 핸드백을 들어주는 자상한 남편 그리고 참 기독교인이었다.

내가 날마다 정리하는 뜰이건만 지저분해 보이는 우리정원도 어쩜 인간들의 추잡스러운 세상처럼 보이곤 한다. 살아온 업들이 모두 달라서일까. 피고 지는 꽃들의 모습도 각각이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아기들이 태어나는 복과 장소도 각각이다. 인간들이 살다가 마무리하는 모습도 정말 가지각색이다. 살려고 악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박시인의 부군처럼 할 일을 다 했다며 곱게 웃는 얼굴로 떠나는 분도 있다. 그분의 주검 모습도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단다. 박영곤 선배님, 구십이 되도록 운전을 멋지게 하셨고 요상한 세상에 사년을 더 보시면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잉꼬부부로 좋은 본을 보여주시어 스승의 삶을 저희에게 보여주셨네요. 저는 오늘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책을 다시 펼치려고 합니다

필자소개
미주 한인언론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 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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