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주말부부의 외식
[이영승의 붓을 따라] 주말부부의 외식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1.09.14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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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부로 산 지 1년9개월째다. 아내가 외손녀를 돌봐주기 위해 매주 지방에 사는 딸아이 집을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아내는 일요일 밤에 내려갔다가 금요일 밤에 올라온다. 딸에게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 1년만 키워주기로 계약서까지 썼으나 매정하게 떨칠 수 없어 1년을 더 연장했다.

처음에는 이 나이에 주말부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한 주 두 주 살다보니 이제는 웬만큼 적응되었다. 주말부부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아내의 잔소리를 적게 들으니 좋고, 더운 여름에는 팬티만 입고 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편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적으니 부부싸움도 줄어들었다. 마음에 거슬리는 일이 있어도 내일이면 또 헤어질 텐데 생각하며 서로가 참기 때문이다. 그 외에 주말마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외식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외식 때마다 누군가가 “오늘은 정말 비싸고 맛있는 것으로 먹읍시다”라고 말하며 상대도 이에 동의한다. 출발 전에 아내가 “오늘은 어디 가서 무엇을 먹을까요?” 하고 묻는다. 내 대답은 항상 일정하다. “나는 아무거나 좋으니 당신이 정해요.” 문제는 둘이서 아무리 고심해도 특별히 생각나는 음식이 없으며 가고 싶은 식당도 생각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갔던 집을 다시 가게 되며 메뉴도 거의 일정하다. 어떤 때는 그것이 싫어 식당 앞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릴 때도 있다. 그때 아내가 가자고 하는 곳은 동네 마트이며, 장바구니에는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나 문어 등이 담겨있다. 아내가 직접 만든 요리는 비록 단품이지만 식당의 비싼 음식보다 더 맛이 좋다. 43년째 입에 맛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외식이 예전처럼 맛있고 즐겁지 않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삼십 수 년 전 아이들과 함께 외식하던 추억이 새롭다. 당시 내 나이는 30대 후반이었으며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가족 단위 외식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 서울로 올라왔을 때 우리는 월계동에 살았다. 아이들이 졸라 어쩌다 외식을 하게 되면 태릉 돼지갈비집을 찾았다. 당시 아이들이 성장기라 먹새가 만만치 않았으며 우리 부부도 한창 시절이다. 그래서 고기를 주문할 때마다 몇 인분을 시킬 것인가 문제로 종종 실랑이를 벌였다. 나는 4인분으로 부족하니 아예 6인분을 시키자 하고, 아내는 일단 먹어보고 추가로 시키자며 언제나 4인분만 시켰다. 가능하면 추가를 1인분이라도 적게 시키려는 아내의 속셈을 내 모를 리 없다. 내가 화나는 이유는 양이 부족하면 결국 몇 점 먹지 못하고 손해 보는 사람은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몰라주는 아내가 야속해 마음이 상하곤 했다.

외식 때마다 돼지갈비만 먹기가 좀 그래서 하루는 큰맘 먹고 “오늘은 소고기를 한 번 먹자”고 했다. 아내는 돼지고기가 더 맛있다며 끝내 내 성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또한 맛 때문이 아니라 값이 서너 배나 차이나기 때문임을 식구들은 다 알고 있다. 아이들은 “와!” 하고 좋아했다가 아내의 독단적인 결정에 시큰둥해졌으며, 나 또한 모처럼 체면을 세워보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날도 돼지갈비는 정말 꿀맛이었으며 아이들도 전혀 불만은 없었다.

지금 형편에서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당시의 우리 형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자식 남매 대도시에서 교육시켜보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이해관계 따지지 않고 서울로 발령받아 올라왔을 즈음이다. 두 아이들 학원비도 만만치 않았으며 ‘우리 집 마련의 꿈’은 요원하게만 느껴지던 때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는 아내의 마음을 내 어찌 몰랐겠는가.

거리에 나가면 골목마다 고급 식당이 즐비하다. 주말부부라 외식을 자주하게 되지만 예전 같이 맛있는 음식은 없다. 자식들은 내가 지갑을 열어 식사자리를 만들려 해도 바쁘다고 반기지 않으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모이라 할 수도 없다. 아이들과 옹기종기 둘러앉아 예전처럼 맛있는 외식을 할 수는 정녕 없을까? 품질보다 가격부터 따지며 양을 통제하던 그 시절의 외식이 너무 그립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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