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신비로운 경험
[해외기고] 신비로운 경험
  • 황현숙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1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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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딸이 출산을 하면서 나에게도 새로운 호칭이 하나 더 붙게 됐다. 한국 지인들은 “이제 공식적인 할머니 대열에 들었네요”, 호주 지인들은 “드디어 그랜마가 됐네요”라면서 축하인사를 보내주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공식호칭에 주눅이 들었지만, 아기를 안아보던 그 순간은 경이로움과 신비라는 말 외에는 어떤 표현도 할 수가 없다.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조그만 몸뚱이는 거대한 힘으로 나를 지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꼼지락거리는 열 개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만져보는데 미소가 절로 베어 나왔다. 아마도 이런 마음을 손녀 바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아기 하나로 인해서 집안의 기운이 달라지고 왠지 세대교체가 일어났다는 현실을 직감한다. 이제부터 아기의 양육과 교육은 부모가 알아서 하겠지만 그저 튼튼하고 지혜롭게 자라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이 될 뿐이다.

얼마 전에 브리즈번이 2032년에 올림픽 개최도시로 발표됐을 때 옆에 있던 사위가 “와, 우리아기와 함께 올림픽 구경 가야겠다”면서 환호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내의 부른 배를 만지며 지레 호들갑을 떠는 그 모습이 밉게 만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림 속에서 예정일보다 빨리 세상에 나온 손녀가 건강하고 밝은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앞날에 대한 호기심 또한 생겨난다.

교육자라는 나의 직업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별히 해외유학생을 관리하고 지도하면서 청소년들의 성장배경이나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연관 지어서 생각하게 된다. 성적이 부진하거나 홈스테이 가정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자유 갈망형의 학생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해외에 있는 부모와 연락해서 대화를 나누면 학생의 유아적인 성격을 형성시킨 성장배경을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부모들은 사춘기 자녀를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하소연하며 그저 부탁한다, 잘 지켜달라는 말만을 반복해서 한다. 한 자녀를 가진 가정의 부모들은 자녀를 응석받이로 길러서 아이들의 유학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숨은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자녀교육이라면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의 자녀교육법이 잘 알려져 있다. 유대인 자녀교육의 핵심은 하브루타 대화법으로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아이들 스스로가 깨우치게 하는 교육방법이다. 유대인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네 생각은 어때?” “왜 그렇게 생각하니?” 이런 질문은 아이 스스로가 생각하게 만드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을 바꾸는 것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브루타 대화법은 부모가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아이의 행동이 저절로 바뀌는 대화법이라는 소개를 해준다. 좋은 질문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가르침을 알려주기도 한다. 질문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나타낸다는 것을 나는 이미 학생들을 통해서 많이 체험하고 있다. 학생과 상담을 하면서 “왜 그렇게 했니?”라고 야단을 치기 전에 먼저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다. 특히 고학년들의 수업방식은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에게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주면서 스스로 깨우치고 답을 말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강요하고 머릿속에 집어넣는 교육이 아닌 창의적인 교육이 아이를 발전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적과 스펙이 뛰어난 한국학생과 그보다는 뒤떨어지는 유대인 학생 두 명이 하버드대학교에 지원했다. 그런데 면접에서 한국학생은 떨어졌고 유대인 학생은 대학교에 합격을 했다. 그 이유는 유대인 학생은 일상적으로 아버지와 하브루타 대화를 하면서 대화의 기술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하브루타 대화법은 서로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생각을 나누는 유대인의 전통 토론 법을 말한다.

그러면 조선시대에는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켰을까? 유교문화의 배경 속에서 태교와 유아교육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자녀들의 인성교육과도 연관되는 문제이다. 스승의 십년 가르침보다 어머니의 뱃속 열 달 가르침이 중요하고, 어머니의 열 달 가르침보다 아버지의 하루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태교란 임신 중 임산부가 주의해야 할 사항 정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을 준비하는 시간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적극적인 교육적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딸도 태교를 한다고 좋은 음악도 즐겨듣고 건축디자인에 더 열심히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별히 학교건물을 디자인하면서 학생들이 꿈을 가질 수 있고, 편안하게 공부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혁신적인 공간을 창조해내었다. 디자인은 그 사람만이 가진 내 안의 독창적인 생각이 눈앞에 실제로 나타나게 만드는 어려운 작업이다. 아이도 엄마의 그런 기운을 받아들여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조금은 가져 봐도 되지 않을까.

조선시대 명문 종가들은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자녀들의 교육을 중요시했는데, 평생 책 읽는 아이로 만들어라, 자긍심 있는 아이로 키워라, 스스로 재능을 발견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라고 가르쳤다. 다산 정약용가에서는 아버지가 자녀교육의 ‘매니저'로 직접 나서라고까지 강조하고 있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며칠 되지 않는 손녀를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교육에 간섭하지 않는 쿨한 할머니가 되기, 그리고 경이로운 신비를 경험했던 첫 마음을 잊지 않는 다정한 친구 같은 그랜마가 되어 보려 한다.

황현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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