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종이꽃을 만드는 삶
[해외기고] 종이꽃을 만드는 삶
  • 황현숙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0.08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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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2번째인 호주한국영화제가 9월16일부터 19일까지 브리스번에 있는 엘리자베스 픽처 시어터(Elizabeth Picture Theatre)에서 개최됐다. 첫 영화제에 참석한 이후로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하는 마음이 든다. 다른 도시에 비해서 8편이라는 적은 수의 작품이 상영되기에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그중에서 첫날의 첫 상영작인 ‘종이꽃’을 먼저 선택해서 보았다. 이 작품은 2020년 10월에 한국에서 처음 개봉된 영화로서 제53회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백금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국민배우로 잘 알려진 배우 안성기가 장의사 역할로 나온다. 예고편을 보면서 왠지 턱~하니 가슴을 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첫 번째 영화로 낙점을 찍었다.

줄거리는 ‘종이꽃’을 접으며 죽은 이들의 넋을 기리는 장의사를 평생의 직업으로 살아온 윤성길(안성기 역)과 의대에 재학 중,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하반신 불구가 된 아들 윤지혁, 그리고 어느 날 앞집으로 이사 온 싱글 맘인 은숙과 초등학생인 딸 노을이 서로 얽히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사고 후에 삶의 의지를 잃은 지혁은 몇 번의 자살을 시도하지만, 간병인으로 고용된 은숙의 도움으로 서서히 삶의 희망을 찾아간다.

은숙은 천성이 밝고 명랑하며 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성품을 지닌 사람이다. 그녀의 불행했던 과거는 그녀의 얼굴과 몸에 지울 수 없는 칼자국의 상흔을 남겼지만, 항상 웃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혁에게 “넌,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의지를 심어준다. 결국 혼신을 다한 연습으로 혼자서 휠체어에 앉을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며, 서로의 삶에 위안이 되어주는 순간이 찾아온다. 남편 살해범으로 재판을 받은 은숙은 정당방위로 풀려나서 딸 노을과 함께 살고 싶어서 이사를 자주 다녔지만, 법원 판결에 따라서 딸을 지키지 못하고 재활 요양원에 감금된다. 마지막으로, 은숙은 요양원에서 윤성길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에 마음을 움직인 그는 시청공무원의 방해와 조폭들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약자를 돕는 장례식을 정성껏 치러준다.

종이꽃은 장의사의 시선으로 한국사회의 변화와 숨어있는 사회적인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비교, 가정폭력 그리고 아직도 다 밝혀내지 못한 광주 민중항쟁의 어두운 역사를 마치 뒷골목을 비춰주듯이 조금씩 들춰내서 보여주었다. 윤성길은 왜 종이꽃을 만들어서 장식하느냐는 노을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꽃이 귀하던 시절,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구별 없이 누구나의 상여에 마지막으로 달았던 종이꽃이었으며, 그 안에 담긴 뜻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평등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고귀함”이라고. 그래서 종이꽃은 가장 인간다운 꽃,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가장 마지막 순간에 누구에게나 피는 꽃이라는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문득 장엄했던 친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생각났다. 고향의 유지였던 아버지 덕분에 상여는 온통 화려한 종이꽃으로 뒤덮였으며 100여개가 넘는 깃발로 인해서 긴 행렬을 이루었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던 길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참으로 마음에 와닿았던 영화장면의 대사가 기억난다. 노을이는 학교수업 중에 아이들의 장래의 꿈이 무엇인지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참으로 순진하고 밝게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밝힌다. “산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죽은 사람들을 위한 장의사가 되고 싶다고.”

죽은 사람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 주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 바로 장의사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삶에만 매달리는 우리는 인생의 마감을 맞이하는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산다는 뉘우침을 가지게 했다.

또한 “죽고 싶다는 소리는 살고 싶다는 외침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은숙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됐다.

나는 염습하는 모습을 이 영화를 통해서 평생 처음으로 보았다. 정성을 다해서 몸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모습이 마치 거룩한 의식을 치르듯 숭고해 보였다. 장의사 윤성길이 한때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 광주항쟁을 경험한 일이 있었다. 좁은 골목에서 총상을 당하고 쓰러져있던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지 못한 일, 그 아이의 애원하던 눈길을 외면했던 일이 평생 윤성길의 가슴 속에 상처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사회적인 약자들을 도우며 살다가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한 국숫집 장 사장의 장례를 진심으로 정성껏 돕기도 한다.

배우 안성기의 안정되고 무게 있는 중후한 연기는 보는 내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화를 즐겨보았던 나는 안성기가 중학생으로 나왔던 ‘얄개전’이라는 영화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한편의 좋은 영화는 교훈을 주고 나의 시간을 뒤돌아보며 반성하게도 만들고, 더 나은 삶의 시간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도 한다. ‘종이꽃’이 바로 그런 영화라는 울림을 받았다. 연출가는 삶이란,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겸손의 여정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황현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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