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사진과 영화 ‘스윙키즈’
[대림칼럼]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사진과 영화 ‘스윙키즈’
  • 송향경 성신여자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 승인 2021.10.2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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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2007년 7월4일부터 8월24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매그넘 코리아전’에서 우리는 종군기자였던 베르너 비숍이 1952년 6.25 전쟁시기에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진에는 미국 뉴욕항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을 본뜬 여신상을 배경으로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얼굴에 가면을 쓴 포로들이 미국의 민속춤을 추는 장면이 포착돼 있다. 이 사진은 곧 다음의 세 작품의 모티브가 된다. 시간의 순서대로 보면, 첫 번째는 2014년에 발표한 최수철의 소설 「거제, 포로들의 춤」으로 비숍의 사진이 삽화로 들어가 있다. 두 번째는 2015년에 초연한 뮤지컬 <로기수>로 홍보 글에 비숍의 사진이 모티브라고 소개돼 있다. 세 번째는 뮤지컬 <로기수>를 원작으로, 비숍의 사진을 모티브로 한 2018년에 상영된 강형철 감독의 영화 <스윙키즈>이다.

2010년대에 창작된 위의 세 작품은 기존의 한국전쟁 관련 작품, 특히 포로 관련 서사의 창작 방식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6.25전쟁은 한반도 국민 전체가 체험한 전쟁으로 그 직후부터 쏟아져 나온 포로 서사는 전쟁체험 세대들의 체험과 증언을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위의 세 작품은 현장체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현장을 담은 사진에서 출발했다. 앞전 시기에 발표된 체험 서사를 일종의 사회적인 집합기억으로 본다면, 수용소 현장 사진의 재해석과 창조는 그 집합기억들에 대한 오늘날의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영화 <스윙키즈>는 거제포로수용소에 수감 중인 북한군, 중국군, 민간인 그리고 수용소 근처에 사는 민간인 여성 등 4명이 댄서 출신 흑인 미군 잭슨과 함께 댄서팀을 구성하여 크리스마스이브 공연무대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고 있다. 물론 이 댄서팀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수용소 소장이 ‘자유 진영의 진보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목적에 있고 참여자들 역시 각자의 이유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같이 수감된 포로들의 갑작스런 죽음들만 제외한다면 영화가 그리는 수용소 현실은 여러 증언과 선행 연구들에서 모두 입을 모아 ‘지옥’이라고 했던 실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영화는 춤에 초점을 두고 이념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주인공 로기수를 비롯한 청년들이 서로에 대한 적의를 점차 내려놓고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우정을 쌓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들은 열심히 준비한 크리스마스 공연과 가까워지면서 영화도 서서히 결말을 향해 다가간다.

행사 당일 무대에서 멋진 공연을 보여준 포로 댄서들은 관객석에 앉은 미군과 외신기자들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행복을 참으로 짧았다. 사실 댄서팀 리더 로기수는 이 공연 전에 수용소 소장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공연을 마친 로기수가 무대 뒤로 총을 가지러 가려던 순간, 그의 형 로기진이 그 총을 들고 관중석을 향해서 사격했다. 이때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자신의 암살이 계획됨을 알아차린 수용소 소장은 댄서팀 포로들을 즉시 처분하라고 명령한다. 영화 내내 참혹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뜨거운 열정과 젊음의 순수함을 보여줬던 주인공들은 그의 명령 한마디에 일제히 총살된다. 그들의 대장이기도 한 로기수는 팀원들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고 다리에 기관총을 맞는 장면으로 화면은 바뀐다. 다리는 짤렸으나 고향으로 돌아간 「수난이대」(하근찬, 1955)의 진수와는 달리 그 자리에서 죽었다, 혹은 죽어야만 했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다리의 훼손은 앞서 영화에 여러 번 등장한다. 중학교 시절 로기수와 함께 무용단에 선발돼 소련 유학을 다녀온 광국은 전쟁터에서 다리를 잃은 채 포로로 잡혀 왔다. 그런가 하면 처단된 ‘미온 분자’ 시체의 부러지고 훼손된 다리를 로기수는 매우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지어 노인이 된 잭슨의 다리 역시 불편하다. 훼손된 다리에 관해서는 한국전쟁이 상징하는 분단 결과로서의 이동권의 제한이나 정신분석학의 관점에 기대어 상징적 거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로기수의 댄서라는 신분에 집중해 본다면 ‘just dance’, 즉 춤이 전부였던 댄서가 다리를 잃는 것은 본연의 정체성이기도 한 무용수 인생에 대한 박탈로써 그 자체가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국전쟁과 무용수의 죽음 그리고 영화가 만들어진 2010년대를 함께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다.

로기수는 소년 시절에 무용단에 뽑힐 정도로 촉망받는 무용천재였고 당시 북한 무용수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교육기회 즉 소련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전쟁통에 그의 재능은 빛을 보지 못했고 다만 ‘인민 영웅’ 로기진의 동생으로 포로수용소에서 ‘친공’ 포로들의 높은 대우를 받게 된다. 댄서팀 여성 팀원 양판례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4개 국어를 할 줄 아는 데다가 춤과 노래에도 능한 양판례이지만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양공주가 되는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두 젊은이가 지니고 있는 재능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훌륭한 ‘스펙’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나중에 좋은 세상이 오면 미국의 카네기 극장에서 ‘코쟁이’들과 댄스 배틀을 하겠다는 로기수, 지금은 포로로 ‘패자’가 된 그는 탑 댄스를 시작으로 패자부활을 꿈꿔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로기수를 비롯한 팀원들에게 크리스마스 무대는 패자부활전의 기회였고 포로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세계로 나가는 ‘데뷔무대’였다. 그 순간만을 위해 갈등하고 화해하고 실력을 닦으면서 달려오던 주인공들은 그들이 가장 기대하고 행복한 ‘데뷔무대’에서 살해당하게 된다. 유명 한류 스타 아이돌 그룹 맴버가 로기수의 역을 맡게 된 설정은 위와 같은 상상력의 현실감을 증폭시킨다. 다시말하면 <스윙키즈>가 표현한 한국전쟁이란 탄탄한 실력과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들의 미래를 순식간에 빼앗고 패자부활전마저 불가능하게 하면서 그들을 죽여버린 전쟁이다. 6.25전쟁에 대한 이와 같은 재현은 누구보다 공정의 훼손에 분노하고 기회의 균등을 바라는 201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 젊은이들이 느끼는 진행형 분노의 기원에 가장 가까운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스윙키즈>에서 내내 환상의 콤비를 보여줬던 댄스팀 구성원들의 성격은 그야말로 ‘츤데레’들에 가깝다. “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말”인 신조어 ‘츤데레’처럼 처음 다가갈 때는 이념과 국적을 달리한 청년 댄서들은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더 다가가서 알고 나면 더없이 다정한 친구로 된다. 로기수의 친구들은 암살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전쟁은 ‘나’의 기회를 송두리째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이념과 국적을 초월하는 ‘위대한’ 우정을 나눈 친구들을 이유없이 무자비하게 죽인 것이다. 영화를 통하여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는 ‘츤데레’ 친구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통하여 재기억된다. 친구의 죽음 앞에 젊은 관객들은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체험하지 못한 전쟁에 대한 새로운 공통기억을 만들어 간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71년이 되는 해이다. 전쟁에 대한 표상이 1950년대의 국제전에서 1960년대의 내전, 그리고 90년대 냉전체제 이후로 오면 대리전 등 개념에서 오가는 사이 전쟁의 체험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지는 현실에 마주하게 되었다. 전쟁의 비극은 이와 같은 세대교체의 시점에서 기회의 찬탈이라는 오늘날 사회 분노의 뿌리로, 그리고 생사 이별을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청년들이 가장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친구를 잃는 슬픔으로 다시 표상되고 기억된다.

필자소개
송향경 성신여자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
중앙민족대학과 대외경제무역대학을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한중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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