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⑳] 아프리카 음식을 통해 청년 창업을 도모하다 – 엄소희 키자미테이블 대표
[아프로⑳] 아프리카 음식을 통해 청년 창업을 도모하다 – 엄소희 키자미테이블 대표
  • 엄소희 키자미테이블 대표
  • 승인 2021.11.1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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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엄소희 대표는 공정무역을 통해 국제개발협력 분야를 처음 접했다. 공정무역의 홍보담당자로서 그 당위성을 주장하려면 개발도상국의 실상을 직접 보고 스스로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직장을 과감히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향했다. 많은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아프리카국가를 선택한 것은 ‘이 기회에 가장 멀고 가장 모르는 나라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케냐와 카메룬을 옮겨 다니며 3년간 봉사 활동을 전개할수록 엄 대표는 아프리카의 속도에 맞추어 공생하는 삶이 자신에게 의미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크게 깨달았다. 특히 아프리카 청년들의 실업 문제에 공감했다. 그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소할 단서를 찾기 위해 국내의 한 창업 교육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가 그곳에서 운명처럼 르완다에서 봉사 경험이 있는 류현정 대표를 만났다. 셰프 출신의 류 대표와 엄 대표는 둘의 뜻을 모아 르완다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나갔다. 스와힐리어로 ‘사회적’을 뜻하는 단어 ‘키자미kijamii’에 영어 단어 ‘테이블table’을 결합한 ‘키자미테이블’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특히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춘 르완다 음식 전문 레스토랑이라는, 기존에 없던 형태의 서비스를 통해 르완다 사람들의 문화 자긍심을 높이는 한편 청년들에게 고용과 자립을 위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케냐, 꿈을 찾아 떠나다

오랜 시간 언론인을 꿈꿨다. 부모님이 작은 가게를 운영해 가계를 꾸리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한편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세상 이야기들은 그들의 고단한 삶과 어쩐지 동떨어져 보였다. 부모님을 위로하거나 대변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렸지만 우리 부모님과 같은 소시민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이를 사회에 전하는 언론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자연스럽게 작은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언론인이 되는 꿈을 품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대학에 진학하며 신문방송학과를 지망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언론 고시를 준비하며 보다 시야가 넓은 기자가 되기 위해 다양한 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중 하나가 ‘아름다운가게’의 공정무역 관련한 활동이었다. 당시 아름다운가게는 국내 최초로 공정무역의 개념을 소개했다. 내게도 무척 생소한 분야였다. 아름다운가게에서 봉사하며 처음으로 국경 밖 소외된 이들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키자미테이블 메뉴

회사로부터 뜻밖에 정식 입사를 제안받았을 때 나는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그늘진 곳에 빛을 비추는 일이 꼭 기자만의 영역이 아님을 처음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오랜 다짐을 깨고 더 많은 관심을 요하지만 우리가 더 무관심할 수도 있는 개발도상국의 소외계층을 조명하는 공정무역 단체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한 3년을 숨 고를 틈 없이 바삐 일했다. 그러던 중 두려운 마음이 엄습했다. 국내에서 공정무역 시장을 선도하는 아름다운가게의 홍보담당자로서 내가 뱉은 언어들이 공신력을 갖는 일이 돌연 무서워졌다. 사회 초년생에 이제 막 공정무역에 눈떴을 뿐인데 말이다.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았고, 개발도상국의 실상을 직접 봐야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덜컥 회사를 그만두고 봉사 활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때마침 대학 선배 중 한 명이 국내 NGO에서 케냐로 파견되어 일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그 선배가 있는 케냐로 향했다.

케냐에서 주어진 시간은 1년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도맡았다. 주로 아이들이 교과목으로 배우지 못하는 노래나 연극 등의 예체능을 놀이하듯 가르치며 정서적으로 교감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문해교육이나 마을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한 모임도 학교에서 열리곤 했다. 여러 활동 중 하나가 마을 여성들이 소모임 형태로 구슬공예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공정무역 일을 한 경험이 있는 내게 그 일이 떨어졌다. 그들이 만든 수공예품이 사업으로 성장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고 부족한 요소를 채울 수 있도록 독려했다. 선생님을 모셔와 마을 부녀자들의 수공예 기술을 한층 향상시키기도 하고 지역 여성들과 함께 시장 조사를 하고 판로를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스스로 되어 있는지 혹은 공정무역 분야로 돌아갈지를 홀로 치열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이 다 되도록 확신이 서지 않았다. 수조원에 달하는 공적개발원조 기금이 현장에서 잘 쓰이는지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채비를 갖추어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케냐와 분위기가 사뭇 다른 서아프리카 카메룬을 목적지로 삼았다. 케냐에서 1년을 보낸 덕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고, 카메룬에서 보낸 2년 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의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자부할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아프리카의 속도에 발맞추어 공생하며 살아가는 삶이 내게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앞으로도 이 일에 매진할 수 있는 동력을 찾은 셈이다.

키자미테이블 직원 워크샵

카메룬, 꿈을 활짝 펼치다

내가 카메룬에서 지내면서 관심을 쏟은 것은 아프리카국가들을 포함해 개발도상국을 향한 편견을 깨는 일이었다. 지난 수년간 주변에서 그들과 협업하며 진척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면 그 원인을 그들의 국민성에서 찾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는 그때마다 그들을 우리의 잣대로 평가하고 그들이 우리처럼 일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여겼다.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우리와 같을 수 없다. 살아온 역사와 사회적 배경, 문화가 다르니. 현지의 상황 안에서 서로의 기대치를 맞춰 나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진다면 그 속에서 진정한 협력이 이뤄질 거라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처한 상황과 배경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알 필요가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카메룬에서 전개한 활동은 내게 무엇보다 의미 있었다.

나는 카메룬의 한 지역에 위치한 주민교육센터에 파견됐다. 한국으로 치면 농촌진흥원의 지역 사무소에 가까웠으며, 센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룹 역시 농민들이었다. 처음에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소녀들을 교육했으나, 농민들이 주된 그룹인 만큼 그들을 위해서도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이 크고 농사 전문 지식이 부족하여 선뜻 나서지 못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방도를 찾던 중 하루는 무작정 그 지역에 소재한 대학을 찾아갔다. 카메룬의 영어권 지역에서 가장 명망 높은 부에아대학교(University of Buea)였다. 학생들에게 내 소개를 하고 내가 속한 센터의 기능과 앞으로 전개하고 싶은 사업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내 열의가 그들에게 와 닿았던 것일까. 불쑥 찾아온 낯선 이방인임에도 학생들은 내 이야기를 귀담아들었고 실제로 그중 15명이 센터를 찾아왔다.

당시 한국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였다. 학생과 농민의 흥미를 끌어 참여율을 높이고자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쟁 구도를 차용했다. 농민들을 15팀으로 나눠 학생과 짝을 지은 후 농가 소득 혹은 농촌 생활의 질을 높일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공모 발표회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외교부 산하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 직원과 비영리단체 담당자를 부르고 상금과 상품을 내세워 오디션의 구색을 제법 갖췄다. 학생과 농민들이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과정을 조력하며 “나는 2년 후 떠날 사람이니 여러분들끼리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고 참여하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에게 제안서 쓰는 법 등 다양한 비즈니스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1등한 팀에게는 제시한 아이디어를 구현할 기회를 제공하고 모니터링했다. 또 프로젝트를 완료한 후 참여한 사람들과 조촐한 성과 공유회도 가졌다. 모두가 꽤나 만족한 프로젝트였으나, 특히 내 스스로 크나큰 성취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청년활동 쪽으로 관심이 기울었다. 지역에서 친한 친구 15명이 생기니 듣는 이야기가 훨씬 더 풍성하고 다채로워졌다. 그들과 대화하면 내 말문이 막힐 정도로 관심사나 지식이 폭넓었다. 언어도 기본 4개 국어 이상 구사했다. 그 이상 영민할 수 없는데 취업이 되지 않았다. 일자리가 없으니 대부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단순 직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었다. 안타까운 광경을 지켜보며 그들의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서라도 해소해주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 글로벌 소셜벤처 창업 교육을 들은 것도 아프리카 청년들이 스스로 창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묘책이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서였다.

생각을 행동으로, 가치를 현실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글로벌분야 소셜벤처 창업과정을 찾은 다른 동기들과 달리 나는 직접 창업할 생각이 없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아프리카 청년들의 실업 문제를 해소할 단서를 찾고자 지원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학생들끼리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내가 케냐와 카메룬에서 봉사 활동을 한 이력을 읊자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자신은 르완다에 있었다며 반가운 기색을 드러낸 이가 바로 훗날 키자미테이블을 함께 창업한 류현정 대표였다. 반가운 감정을 넘어 놀라웠다. 일상에서 아프리카 봉사 경험을 지닌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심지어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기간 동안 아프리카에 있었다.

셰프 출신의 류현정 대표가 글로벌 소셜벤처 창업 교육에 지원한 이유는 아프리카에 레스토랑을 차려 현지 청년들의 고용 문제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평소에 미식을 즐기고 아프리카 음식을 좋아해도 요식업은 나와 거리가 먼 분야였다. 나는 아프리카 청년들이 창업하여 자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하고자 머릿속으로 여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는 길이 다르다고 여겼기에 서로를 응원했지만, 대화를 거듭할수록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여겨졌다. 우리 둘 모두 아프리카 청년들이 훈련과 고용을 거쳐 궁극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그 분야가 요식업인 셈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이상과 가치를 잘 결합하여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나갔다.

키자미테이블 직원

레스토랑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세우자 다음 수순으로 어떤 음식을 할지 고민해야 했다. 한식은 익숙하고 양식은 이미 아프리카에서 검증된 사업 아이템이었다. 한식과 양식은 여러모로 이국에서 처음으로 사업에 도전하는 우리에게 안전한 선택에 속했다. 하지만 내심 현지식을 하길 바랐다. 아프리카 음식이어야 현지 청년들이 쉽게 기술을 익히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아쉬움도 한몫 했다. 케냐와 카메룬에 머무르는 동안 현지 친구들의 집에 여러 차례 초대받으며 아프리카 음식이 충분히 맛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프리카 음식에 애정을 가지며 현지식당에도 드나들기 시작했으나, 대부분 시설이 열악하여 외국인들이 선뜻 도전하기 어려웠다. 아프리카 음식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하려면 나처럼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아야 했으나 여행자에게 그런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현지식당들은 자국민이 빠르고 손쉽게 끼니를 때우는 차원에 머물러야 했고, 그 과정에서 현지식당과 양식당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며 식문화를 통한 교류 또한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의아했다. 누구나 낯선 곳에 가면 그 지역의 음식을 맛보고 싶은 심리를 가지고 있는데 외국인 여행자의 눈높이에 맞는 현지식당이 부재하니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양식당을 찾는 일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이는 수요가 없으니 아프리카 현지식을 전문으로 하는 고급 레스토랑이 생기지 않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만약 아프리카에 소재한 양식당처럼 쾌적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현지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이 생기면 어떨까. 여행자들도 한번쯤 방문하지 않을까. 우리는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는 마음으로 현지식을 하기로 결론 지었다.

다음 과제는 어느 국가를 거점으로 삼느냐였다.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기준으로 아프리카대륙에 55개국이 있으니 모두를 후보군에 둘 수 없는 노릇. 류 대표와 나는 서로의 경험 안에서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류 대표는 자신이 3년간 머무른 르완다의 장점과 강점, 기회로 작용할 만한 요소를, 나는 케냐, 카메룬에 대해 설명했다. 둘의 공통된 경험상 대부분이 불어권인 서부 아프리카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곳으로서는 우선 제외했다. 이에 카메룬은 자연스럽게 후보에서 밀려났다. 우리의 경험과 더불어서 국가 규모, 시장 가능성, 확장성, 사업 환경상의 안정성 등을 다방면으로 문헌 조사를 한 결과 후보를 케냐와 르완다, 에티오피아로 좁힐 수 있었다. 이제 직접 가서 판단해야 할 차례였다.

키자미테이블 가족 초청의 날

때마침 사회적 기업가 육성 과정에 합격하여 그 지원금으로 후보 지역 세 곳을 직접 둘러보며 시장 조사를 하는 기회를 얻었다. 한 달 정도 시간을 두고 현장을 관찰한 결과 르완다가 최종 선택됐다. 외국인이 법인을 설립하고 사업 토대를 갖추는 데 있어 정부 정책이 잘 뒷받침되어 있으며, 현지 청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르완다를 방문하여 시장조사를 하면서 법인 설립 절차에 대해 알아봤고, 웹사이트에 기재된 정보에 따르면 르완다는 온라인으로도 법인 설립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놀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 버튼을 눌렀다가 한 시간 후 승인이 떠 또 한 차례 놀라고 말았다. 여담이지만 르완다로 넘어가 실제로 레스토랑을 연 후 1년치 법인세 체납 고지서를 받는 바람에 재차 놀라기도 했다. 그만큼 르완다가 기업 친화적이면서 정부의 전자 체계가 잘 구축돼 있다는 이야기다.

직원을 고용하는 일은 수월했다. 모집 공고를 내지 않았음에도 레스토랑 공사 현장으로 100명 넘는 사람들이 이력서를 들고 왔다. 그중 우리는 탄탄한 경력을 지닌 사람들을 오히려 배제했다. 이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면 우리가 아니더라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태껏 취업의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사회 경험이 없는 초년생 위주로 뽑았다. 대신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교육하고 훈련했다. 물론 실무 교육을 우선했다. 평소에 요리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레시피를 숙지하게끔 하고 홀 서비스를 일일이 가르쳤다.

여기서부터 류 대표와 나의 역할 분담이 빛을 발했다. 셰프 출신의 류 대표가 주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교육을 도맡고, 나는 홍보마케팅 업무를 보는 동시에 홀 서비스를 가르쳤다. 메뉴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끔 했다. 현재 키자미테이블의 많은 메뉴들이 직원들이 낸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실무 능력을 어느 정도 체화하면 다음 단계로 경영 교육에 돌입한다. 시장 분석, 경쟁사 조사부터 회계 업무까지 훗날 스스로 사업장을 운영할 때 필요한 모든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려고 한다. 한편 세계시민교육, 지속가능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등 보다 더 포괄적인 교육도 실시한다. 특히 르완다 제노사이드 추모 기간에 속하는 4월에는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집중적으로 교육한다.

키자미테이블 아동 도시락 지원

다행히 직원들이 교육 과정에 열의를 보인다. 2018년 9월, 창립 1주년을 맞아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육과 관련해 만족도가 특히 높게 나타났다. 키자미테이블의 일원이 된 후 스스로 의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깨를 짓누르던 피로가 눈 녹 듯 사그라지는 듯했다. 사실 낯선 곳에서 편견에 맞서 기존에 없던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인식을 제고하는 일을 꾀하는 데 어찌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특히 원활한 사업을 위해 7시간 시차를 넘어 한국과 르완다 모두에 생체 리듬을 맞추다 보니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우리의 노력에 부응하니 이보다 기쁜 일이 없었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한 직원이 월급을 모아 소를 샀을 때였다.

우리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동시에 한 재단의 공모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받은 활동비로 취약계층에 속한 아이들에게 영양 도시락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재료비 등은 지원받지만 그만큼 직원들의 업무가 늘어난 게 사실이다. 혹여 불만이 생길까 우려했으나 오히려 직원들이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존재가 됐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더 열심이다. 그 직원이 월급으로 소를 산 이유도 우유를 짜서 지역 아이들과 나누기 위해서였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나와 류 대표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키자미테이블 과일잼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하나 유럽과 미대륙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음식 전문 레스토랑이 점점 생기는 추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전 세계의 관심이 아프리카에 쏠리는 만큼 언젠가는 아프리카 음식도 재조명될 것이다. 우리는 그때가 오길 차분히 기다리며 자료를 모으고 연구를 거쳐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중이다. 특히 오랜 기간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터라 문화적 측면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인식이 많은 부분 위축된 경향이 있다. 우리는 아프리카 음식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현지 사람들에게 일깨우고자 특히 스토리 발굴에 힘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자국의 문화에 자긍심을 가지길 희망한다. 현재 키자미테이블에서 일하는 직원은 17명이다. 더 많은 청년들에게 고용과 교육의 기회를 안기고 싶으나 레스토랑으로는 구조상 한계가 있다. 그리하여 식품 가공품을 제작하는 사업을 구상 중이다. 실제로 현지 식재료를 활용한 잼을 개발해 시장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발목이 잡혀 르완다로 돌아가지 못한 지 수 개월이 흘렀다. 직원들이 사무치듯 그립다. 몸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소셜미디어로 긴밀히 소통하며 음성과 영상을 통해 교육 과정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직원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훈련을 하는 기회라고 여기며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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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2021-11-11 14:35:55
이렇게 아프리카를 위해 청년창업을 도모하시는 모습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 이렇게 아프리카도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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