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만주⑥] 국민부 본부터: 남만지역의 통합 임시정부로서 한인들의 자치를 실현하다
[아! 만주⑥] 국민부 본부터: 남만지역의 통합 임시정부로서 한인들의 자치를 실현하다
  • 안상경(한중문화콘텐츠연구소장)
  • 승인 2021.11.1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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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삼성으로 불리는 중국 만주에는 우리 독립운동 사적지가 곳곳에 있다. 의병운동, 민족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 독립지사들이 고민과 피가 어린 곳들이 도처에 있다. 이들 사적지를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주)

국민부 본부 터: 요녕성 무순시 신빈만족자치현 왕청문진 조선족향
국민부 본부 터: 요녕성 무순시 신빈만족자치현 왕청문진 조선족향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정부(政府)’ 또는 ‘군정부(軍政府)’를 표방한 조직이 상당수 있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 이외, 고종의 밀명으로 국내에서 결성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 이상설이 연해주에서 설립한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 만주지역에서 명멸했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참의부(參議府), 정의부(正義府), 신민부(新民府) 등도 일종의 자치정부 또는 군정부로서 역할을 수행하던 조직이었다.

이들 조직은 국가의 구성 요소, 즉 국민과 영토와 주권을 합법적으로 보유하지 못했지만, 국내외 각 지역에서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수행하며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문제는 엄격하고 체계적인 규범에 의해 결성하고 운영한 것이 아니라 시기별이나 지역별로 당대 상황에 맞게 조직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하는 병폐였다. 1920~1930년대, 만주지역에서도 100만명의 한인을 기반으로 개별적인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이 절실한 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러던 중 1922년 8월에 출범한 대한통의부가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을 이끈 결실이었다. 대한통의부를 결성한 이후, 1925년까지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은 참의부(1923.08), 정의부(1924.10), 신민부(1925.03)로 정립했다. 만주지역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독립운동단체들의 역량을 일정 정도 집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조직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즉 하나의 정당이 국정을 운영하는 이른바 ‘以黨治國’의 원칙 하에 관련 단체들의 통합을 조속히 실현해야 했다.

정의부 본부 터: 길림성 통화시 유하현[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부 본부 터: 길림성 통화시 유하현[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더구나 1925년 6월에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三矢宮松)와 만주 군벌 장쭤린(張作霖)이 비밀리에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골자는 ‘한국 독립운동가를 체포하면 일본 영사관에 인계할 것, 그러면 그 대가로 포상금을 지불하되 일부를 체포한 관리에게 줄 것’이었다. 당연히 만주 군벌은 한국 독립운동가 적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농민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만주지역의 독립운동단체들은 혈연이나 지연 등 기존의 파벌을 극복하고, 일제와 만주 군벌에 조직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 조직을 도모했다.

먼저 정의부가 나섰다. 1928년 5월에 정의부는 길림성 반석현에서 전민족유일당(全民族唯一黨) 조직 촉성대회를 15일간 개최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참의부 대표는 중·일 관헌의 단속으로 도중에 귀환했고, 신민부 대표는 회의가 끝난 후에야 도착했다. 두 단체가 빠진 회의였지만, 정의부를 비롯한 북만청년총동맹, 남만청년총동맹, 다물단 등 18개 단체의 대표는 유일당 결성이라는 거시적인 목표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미시적인 실천 강령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결국 협의회(協議會)와 촉성회(促成會)로 양분되고 말았다.

협의회는 단체 중심의 조직론을 주장하며 정의부를 비롯한 11개 단체의 대표들이 모여 전민족유일당조직협의회(全民族唯一黨組織協議會)를 조직했다. 반면 촉성회는 개별 본위의 조직론을 주장하며 남만청년총동맹을 비롯한 7개 단체의 대표들이 모여 전민족유일당조직촉성회(全民族唯一黨組織促成會)를 조직했다. 또한 1928년 10월에는 협의회를 주도하던 정의부가 3부만의 통합을 목표로 길림에서 회합을 가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은 점점 어려워져 갔다.

화흥중학교 교사, 학생 단체 촬영: 1930. 6. 1[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화흥중학교 교사, 학생 단체 촬영: 1930. 6. 1[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이에 협의회와 촉성회는 독자적인 방향을 모색했다. 우선 1928년 12월에 촉성회 편에 섰던 신민부의 김좌진 계열, 참의부의 김희산 계열, 정의부의 김동삼, 이청천 등이 혁신의회(革新議會)를 조직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명의로 신민부와 참의부의 해체를 선언하는 한편, 군정부의 건립을 목적으로 김동삼을 임시 의장으로 선출했다. 혁신의회는 새로운 기구를 탄생시키기 위한 한시적인 단체였지만, 1929년 해체될 때까지 자치 실현, 한인 보호, 친일파 숙청을 목표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한편 1929년 3월에 협의회 편에 섰던 정의부의 현익철 계열, 참의부의 심용준 계열, 신민부의 이교원 등이 회합하여 군정부 설립을 논의했다. 그리고 1929년 4월1일에 국민부(國民府)를 건립했다. 국민부는 본부를 요녕성 신빈현(新賓縣)에 설치하고, 동년 9월27일에 제1회 중앙의회를 개최하여 군정과 민정을 분리시켰다. 국민부가 만주지역의 임시정부로서 재만한인의 자치를 위한 독립 기구로 탄생한 것이었다. 반면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은 새로이 조직한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과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을 중심으로 추진키로 했다.

난항을 거쳐 어렵사리 조직한 단체이니만큼 국민부의 결의는 대단했다. 조선혁명군을 통해 한·중 항일연합투쟁을 전개하여 영릉가전투(永陵街戰鬪), 흥경성전투(興京城戰鬪), 노구대전투(老溝臺戰鬪)에서 승리했으며, 통화현의 선민부(鮮民府)를 기습하여 친일파를 와해시켰다. 농민들의 계몽을 위해 『농민독본』을 편찬하고 매월 1회 통신교육과 순회문고를 운영했으며, 교육 사업에도 노력을 기울여 마을마다 서당을 세우는가 하면, 화흥중학교(化興中學校)를 설립하여 청년 인재를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조선혁명군의 영릉가전투 전적지: 요녕성 무순시 신빈만족자치현 상협하
조선혁명군의 영릉가전투 전적지: 요녕성 무순시 신빈만족자치현 상협하

이렇게 국민부는 스스로 ‘정부’임을 자임했고, 3권분립에 의한 근대 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했다. 물론 자체적인 문제와 시대적인 한계를 내포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전반기에 상해임시정부가 명분상의 정부에 머물렀다면, 국민부는 국정 기능을 실질적으로 수행한 준자치 정부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민부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과 상호 관계를 맺으며 만주지역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최후까지 조선의 독립과 혁명을 기치로 투쟁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요녕성 무순시 신빈만족자치현 왕청문진 조선족향에 국민부 본부터가 남아 있다. 그곳은 광복 후에 개교했다가 2008년에 폐교된 왕청문 조선족 소학교의 옛 교정이기도 하다. 국민부 본부 자리에 조선족 학교를 설립함으로써 치열했던 항일의 정신을 기억하고자 한 것이었다. 또한 그곳에는 조선혁명군의 위대한 사령관, 양세봉 장군의 흉상이 서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공장(무순옥토과기개발유한공사)으로 변모하면서 그 모든 자취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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