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㉘]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오케스트라 – 지휘자편
[홍미희의 음악여행 ㉘]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오케스트라 – 지휘자편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1.11.16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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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 모습[사진=위키커몬스]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 모습[사진=위키커몬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 중의 하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악보만 보고 연주하는데 왜 지휘자가 필요한가”이다. 그에 대해 나는 항상 이렇게 답한다. “필요하다. 심지어 매우 중요하다.” 지휘자는 단원의 선발, 곡의 선정과 분석, 공연장의 지정, 무대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결정한다.

내가 만난 첫 번째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임헌정 선생님과 합창의 유병무 선생님이다. 남산에 어린이 회관이 있던 시절 그곳에 서울소년소녀교향악단 연습실이 있었다. 우리를 지휘하던 임헌정 선생님은 지금은 원로가 되셨지만, 당시는 단발머리를 휘날리던 젊은 촉망받는 지휘자였다. 내가 처음 만난 곡은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였다. 총 14곡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짧으면서도 재미가 있어 모두가 좋아하는 곡이었다. 이 중 기억에 남는 곡은 11곡 피아니스트다.

임헌정 선생님께서 이 곡은 “아주 실력이 없는 피아니스트를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틀려야 한다”라고 하셔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서로 틀리게 들리도록 여러 번 연습했던 재미있는 기억이 있다. 유병무 선생님은 당시 선명회의 윤학원 선생님과 함께 합창계를 이끌어갔던 분이다. 중학교 1학년 당시 우리는 헨델의 메시아를 연습했는데 빨간색 표지로 되어있는 메시아 한 권을 들고 합창시간에 갈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중간에 가끔씩 불렀던 팝송이나 쉬운 곡들도 아름다웠다. 유병무 선생님께는 합창의 발성뿐 아니라 음악인의 매너, 마음씨 등 많은 것들을 배웠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성격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연주회를 할 때 의상도 오케스트라는 “이번에는 위, 아래 검정입니다. 위는 흰색, 아래는 검정입니다.” 정도로 통일한다. 그러나 합창의 경우는 다르다. 작은 합창단이라도 드레스를 맞춰 입는 것은 당연하고 어떤 지휘자는 머리는 이마를 드러내라, 목걸이와 귀걸이는 하지 마라, 악보를 들고 입장하는 경우 악보는 왼손에 들어라. 서 있을 때도 손의 위치는 이렇게 해라 까지도 주문한다. 물론 위에서 말한 두 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성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운명교향곡 스코어
운명교향곡 스코어

그렇다면 오케스트라는 합창에 비해서 훨씬 위계질서도 없고 분위기도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오케스트라의 진정한 질서는 자리에 있다. 그들이 앉아있는 순서는 수능식으로 말한다면 성적순이다. 지휘자가 볼 때 왼쪽, 앞줄이 우선이다. 만약 학교라면 첫째는 학년, 그다음이 성적순이다. 그래서 악보를 넘기는 것도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넘겨야 한다. 일반 오케스트라의 경우 중간에 낙하산처럼 내려온 사람이 별로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앞에 앉는다면 오케스트라의 내분을 조장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된다. 물론 그런 갈등을 조정하는 것도 지휘자의 몫이다. 이밖에도 지휘자는 연주회장과의 합의, 오케스트라의 배치, 연습일정, 협주곡의 경우 협연자의 선정, 리허설, 무대와 조명 등을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갖춰야 할 진정한 덕목은 악기에 대한 이해와 곡의 분석능력이다.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음역과 연주법 그리고 악기 소리의 개성과 문제점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 누가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귀가 필요하고 그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다음은 곡의 선정이다. 일반적으로 지휘자 개인의 오케스트라는 거의 없다. 재단이나 시, 단체의 지원 아래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지휘자가 연주하고 싶은 곡을 자유롭게 선정하여 연주하기보다는 운영하는 재단이나 시, 단체의 방향에 맞추어 선정하는 경우도 잦다. 재단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거나 시나 단체의 특별한 행사, 또는 유명한 작곡자의 서거 100주년 등 다양한 방향으로 주제를 설정한다. 이러한 협의과정을 통해 최소 1년 전에는 연주곡의 방향, 협연자 등이 정해진다.

그러나 곡의 선정 방향이 정해지더라도 단원들의 수준에 따라 곡은 또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휘자는 단원들이 곡을 얼마나 빨리, 정교하고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는지, 세게 약하게 등을 자유롭게 표현하여 곡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본인은 연주하고 싶지만 단원들의 실력이 부족하여 그 곡을 표현할 수 없다면 차라리 연주하지 않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곡을 정했다면 악보를 공부해야 한다. 오케스트라의 악보는 모든 악기가 한눈에 보이도록 그려져 있는데 이를 ‘스코어’라고 한다. 물론 지휘자만 스코어를 보고 단원들은 각자 자신의 파트가 그려진 악보를 보고 연주한다. 그리고 모든 악보에는 마디의 번호가 매겨져 있어서 중간에 틀렸거나 부분 연습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지휘자는 몇 번~ 하면서 시작점을 알린다. 스코어는 세로로 읽으면 각각의 악기들이 같은 순간에 어떤 음을 연주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이 소리가 한꺼번에 울릴 때 어떤 소리로 들릴지 예상할 수 있다. 물론 보통 악보처럼 가로로 읽으면 곡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악보는 같지만 지휘자에 따라 그 해석이 다르고 연주도 달라진다. 또, 지휘자는 가능한 악보를 다 외워서 연주하는 것이 좋은데 연주자보다 한 템포 빠르게 곡을 미리 예상하면서 예비박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휘자는 손이나 지휘봉을 이용하여 음악을 이끌어 나간다. 이러한 움직임은 18세기 말 발로 박자를 맞추거나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을 지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휘자는 박자뿐 아니라 곡을 해석하고, 표현을 지시하고, 소리의 성질을 바꾸고, 속도와 소리의 크기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이자 베를린필의 상임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작곡자가 작곡한 악보가 실제로 연주될 때 어떻게 들리게 할지 결정하고 이러한 것들을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휘할 때 자신의 몸짓이 바뀐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지휘자의 움직임이 작을수록 잘하는 지휘자이고 카리스마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휘자의 작은 몸짓 하나에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확 변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휘자의 몸짓이 크든 작든 지휘자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수없이 공부한 흔적이 담겨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클라우디오 아바도

오자와 세이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대담에서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를 연주할 때의 경험을 회고한다. “악보를 보고 피아노로 모두 치면서 곡을 분석했는데 막상 오케스트라와 연습을 시작해 보니 모르는 것이 줄줄이 나와 충격을 받고 처음부터 악보를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현대음악의 경우는 작곡자가 의도적으로 규칙과 하모니를 깨트리려고 하기 때문에 지휘자는 그 의도를 미리 짐작하기 어려워 더욱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한다. 우리도 학교 다닐 때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곡은 작곡과 애들이 작곡한 곡이다”라고 농담하기도 했었다. 특히 초연인 현대음악의 경우는 지휘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듣고 보고 있는 아름다운 선율은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이고 그 노력과 과정의 결정 중 많은 부분은 지휘자의 몫이다. 그러나 다 같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계획하고 생각했던 차원을 넘어 울림과 전율을 느끼는 순간은 지휘자뿐 아니라 연주자와 감상자도 공유하는 기쁨이다. 다음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작품형태, 연주자, 음반회사까지 지정해서 어린이들에게 들어보도록 추천한 40곡 중 일부이다. 여기에는 3개만 소개하지만, 아바도는 악기별로 피아노뿐 아니라 종, 작은북, 중주곡, 오페라, 오케스트라 곡까지 하나하나 성의 있게 추천했다. 좋은 지휘자나 연주자가 되는 것만큼 좋은 감상자가 되는 것도 음악의 좋은 친구가 되는 한 방법이다.

*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추천곡
1. 바흐 : 독주곡<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 작품번호 1004, 5곡 「샤콘느」, 아르튀르 그뤼미오<데카>
2. 드뷔시: 관현악곡, 오케스트라를 위한 <녹턴> 2곡 「축제」, 피에르 블레즈, 클리클랜드 오케스트라(DG)
3. 바흐: 합창곡, 마태수난곡 62곡 코랄 「나 언젠가 한 번은 작별해야 하리니」 존 엘리어트 가디너,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몬테베르디 합창단(아르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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